[존재시간] 아주아주아주아주특별한날

자기소개
글 입력 2019.11.1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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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아주아주특별한날>,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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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상자

-note-

 

 

[2019.11.04]

 

 

계획에도 없던 작품이 정신 차리니 만들어졌다. 여름을 지나 겨울을 기다릴 때가 되어서야 모든 것이 가라앉은 소강상태에 이르러 내가 얻은 것이었다. 나는 모든 나를 바닥에 눕히고서야 아무것도 아닌 나를 얻어낼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감추던 자아는 모든 것이 절망에 이마를 박고 있을 때 태어났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별거 아닌 것으로.

 

나는 이번 작품을 통해 내가 얼마나 별 의미가 없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는 나를 보고 싶었다. 다 내려놓고 싶었고, 더이상 무엇인가를 잡을 힘도 없었다. 사람이 바닥까지 내려갔다는 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저에겐 슬럼프도 과분했고, 우울증도 과분했습니다. 제가 뭐 별거 있는 사람이라고 이런 걸 겪어야 하나 싶었습니다. 이겨내지도 못할 거 왜 겪고 있나, 라는 생각은 이제 이겨낼 자격도 없는 걸 왜 이겨내려고 하나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잡을 수 있는 건 잡을 수 없는 허공뿐이었다.

 

나를 향한 수많은 회의(懷疑) 끝에 내가 얻은 것은 어떤 대답이 아니었다. 

 

내가 사라졌다.

 

독백이다. 최근의 나에겐 “쓸모없는 나”를 예찬하는 처절한 독백만 남겨졌다. 머릿속에 웅얼거리다 대부분의 것들을 흘려보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몇 개는 구태여 기록을 남겨두었다. 제일 하찮은 기록은 지금의 나를 증명하는 어떤 것이 되었다. 그리고 얼기설기 나의 행동과 내가 있는 공간, 그리고 숨소리를 연결해주는 끈과 매듭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무심코 그날 하루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던져온 질문들, 머릿속에 감정의 상징으로 그리던 행위 몇 가지와 함께 그 위에 무성의에 가까운 방법으로 나의 독백을 올려야겠다고 결심한 것이었다. 내가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 해왔던 결정 중에 가장 슬픈 결정이었다. 모르겠다. 계속 그런 생각이 든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짧지만 겨우 힘냈던 과정들은 그렇게 우울한 단상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근거다. 작품은 당시의 나를 기억하는 증인이다.

 

그래도 작품이 하나의 합으로 완성이 되려면 그걸 완성할 의지를 가진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자아를 끌어낸다. 의자에 앉혀놓고 세상 힘없이 기어 다니는 자아가 말한다. “이번 작품을 위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거야.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란 걸 말하고 싶어. 이런 그림을 그린다 해서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오예찬이라 해서 특별한 사람도 아니라는 거. 그냥 무어라 집어서 말할 수 없는 사람, 쓸모없는 사람이란 걸 보여주고 싶어. 그렇게 나를 소개하려고 해”라고 말한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됐다.

 

내가 카메라를 켰지만 내가 찍힌 하루를 살펴본다. 그래도 다른 이들과 소통하려는 작품이니 흐름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일부 불편한 장면이나, 지나친 소리는 편집하고 시간의 흐름 따라 그대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남겨온 독백과 질문을 그대로 영상 위로 데려왔다. 기묘했다. 화면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겉모습의 ‘나’를, 자막은 내면에서 나만 알고 있었던 ‘나’를 말하고 있었다.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두 세계가 작품이라는 명분으로 뺨 맞대고 흘러가고 있었다. 꼭 하나였다는 듯이. 이게 나라는 사람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살고 있는 일상이었다. 더 정확히는 지금이라는 삶이었다.


나의 겉과 속을 눈앞에 두고 동시에 바라보는 건 나도 처음이었다. 마치 뽀얗고 동그란 모습만 보여주던 달걀이 순식간에 부서져 껍데기 조각들과 흰자와 노른자로 분리되어 나란히 서 있는 것 같았다. 흰자가 껍질을 품고 노른자가 그 허연 뒤틀린 덩어리를 품었다. 마치 그렇게 따로 있는 것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모인 모습이 낯설었다. 어떤 감정도 없이 덤덤하게 바라봤다. 외면과 내면이 제 위치에서 벗어나 동시에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풍경을.

 

 

*

  

<아주아주아주아주특별한날>은 아무런 수식어나 이름을 달지 않은 자기소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를 소개해보려는 소강상태에 이른 시선이다. 이름도 없이, 명함도 없이, 겉모습 없이, 특별한 행위 없이, 그렇게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를 소개하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라는 간단한 인사도 없이.

 

다른 문장으로 말한다면 [존재시간] 위에 놓인 작품으로서 앞으로 무엇인가를 그려나갈 ‘나’라는 사람의 소개며, 모든 것의 시작을 위해 다시 나를 바라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자기소개의 목적은 단순하지 않은가. 나는 곧 여러 가지 것들을 만들어낼 자아가 이런 사람이라고, 이런 온도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

 

아마 적어도 아무것도 아닌 나를 이야기하려면 아무런 계획이나 구상 없이 흘러가는 나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내가 나를 캡처하는 느낌이랄까. 나는 나를 촬영한 그 날 카메라를 들었다고 해서 무엇인가를 연출하려 하지 않았다. 독백들도 맞춤법이나 급하게 써서 꼬인 부분을 다시 풀어냈을 뿐, 그대로 작품 위로 올렸다. 화면은 평범하기 그지없고 독백은 덜 마른 듯이 축축하다. 남들은 모르는 나의 일부를 끌어 올리는 과정은 속으로는 온갖 저주를 자신에게 퍼부으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이상한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해가 내려주는 햇빛은 따스한데, 너의 한구석은 여전히시리구나. 따듯한 물에 들어가면 결국 소멸하여 없는 것처럼 될 얼음 같은 사람, 그래서 따듯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절대 내될 수 없겠지, 또 이런독백이나 남기네. 한결같긴.

 

 

*

 

작품의 시작과 끝에는 “버스정류장에서 울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계속 알 수 없을 어떤 울고 있는 사람에 대해 철없이 묻고 있는 독백이 있다. 이제 좀 끝났나 싶었는데 구구절절 일상을 지내다 갑자기 또 그 사람을 기억하냐고 묻는 독백.

 

울고 있는 사람은 ‘나’이며, 울고 있는 사람이 궁금하다며 철없이 구는 독백의 주인공도 ‘나’다. 역시 계획에 없었는데 작은 사건 하나로 이번 작품의 시작과 끝을 물게 되었다. 사소하기 짝이 없는 그 일을 굳이 또 기억하려 하지 않지만, 아무 사건도 없었던 날 늘 그런 생각을 끊지 못하다 스스로가 한심하고 답답해서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정류장에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졌던 밤이 있었다. 자기혐오. 속은 끔찍하지만 겉으로는 그뿐인 사건이다. 그런 일이 있었고, 나는 종종 나를 분리했고,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탄생했다. 자아지만 타자가 될 때도 있는 법, 특히 낯선 나를 발견했을 때는 더욱더. 나를 탓하고, 나를 이해할 수 없어 생채기를 낼 때는 더욱이나.

 

그리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나를 타자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또 있다. 작품을 보고 또 이 노트를 읽고 있을 많은 다른 사람들.


“버스정류장에서 울고 있는 사람” 이야기는 결국 [존재시간]이라는 맥락 위에 올려짐으로써 자아와 타자의 경계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 시처럼 노래하는 이야기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와 ‘나’ 뿐만 아니라 앞으로 [존재시간] 위에서 이뤄질 나와 작품 그리고 수많은 타자 사이에서 일어날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늘 향했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곳에서 - 어떤 우연이라 할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을 정도로- 몇 걸음 멀리서 발견한 울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을 둘러싼 감흥을 가질 수 없는 호기심, 어떤 무게인지 모를 스쳐 갈 시선들이 아마 내 작품을 우연히 마주치고 지나갈 수많은 타자의 상황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타자, 자신이 타야 할 버스가 늘 그랬듯이 오면 그곳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난 것과 상관없이 다시 일상을 지낼 타자들.


버스 안에서도 괜히 그 사람 왜 그랬을까, 라며 다시 질문을 꺼낼 수도 있다. 혹시 누가 아는가, 아무도 듣지 못했을 그 작은 관심이 그 울고 있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로 승화되어 전달되었을지. 혹시 누가 아는가, 그 질문이 다시 가장 가까이 있는 자신에게 향하게 될지. 누군가의 타자이기 이전에 우리는 이미 하나의 자아이며, 자아인 것에 동시에 우리는 공존하고 있다는 것에서 분명 수많은 누군가의 타자들이기 때문에. 

 

살면서 모든 호기심이 특별한 감흥을 가질 수 없고 모든 시선이 진지한 것으로 다뤄질 수 없다. 사실 그렇지 않은 것은 호기심이라고 혹은 시선이라고 불리지 않은 채 그냥 그랬던 것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나는 굳이 내 작품이 별거 아니란 주장을 ‘타자’라는 단어를 빌려 말을 돌려서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작품을 둘러싼 많은 일이 그런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노트에 남기게 된 것 같다. 내가 예상하는 [존재시간]의 풍경은 그런 모습이다. 그리고 앞으로 그 풍경이 어떻게 변할지, 나는 그것 역시 궁금하다. 아직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사람와 또 주변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그 모든 것이 나라는 걸 늘 인정하고 또 이해하려 한다. 그렇다면 어느 작은 것도 흘려보낼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거창하게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시작이라고 어떤 굳이 의미를 두고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나지막이 그냥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하고 싶었다. 나를 증명하는 건 이제 지친다. 나는 그냥 나를 소개하고 싶었다. 풀이 죽어 땅에 머리를 박고 있는 것도 나라며, 연약한 인간이 감히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빌려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이런 소개는 작품이라는 예술의 힘을 조금 빌려온 이름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런 나를 원하지 않지 않은가.


갑작스레 이야기가 너무 멀리 와버렸다. 마무리해야겠다. 

 

결국 버스정류장에서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며, 화면 너머로 나의 일부를 바라보고 있을 이들에게 건네는 부족한 창작자인 나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여기, 이런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고. 우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존재시간]에서 일어날 일들의 내 예상이 뒤집어져도 괜찮다. 혹은 그대로 흘러가도 괜찮다. 언젠가 모든 것이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보일 것이다. 창작물이 세상에 나와 작품이라 불리고 그것이 예술까지 이르는 과정 전체를 혼자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과정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잊지 않을 것이다.


 

[2019.11.06]

 

아마 이 작품을 올리면 아주아주아주아주특별한날이라는 제목이 궁금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다. 근데 사실 나도 궁금하다. 어쩌다 이런 제목이 나왔는지. 당장 제목을 지었던 당시의 나를 데려와 의자에 앉혀놓고 싶지만 이미 어디론가 스며들어 사라졌다.

 

그것만은 기억난다. 특별한 날을 줄곧 꿈꿔왔던 나를 향해 내가 내뱉었던 모진 말들을. 어차피 그것뿐인 너인데 어찌 그런 것을 바라느냐고. 특별한 날이라는 말이 괴로웠다. 특별하다는 말이 반짝이는 것뿐만 되는 것이 그럴 수 없는 나에겐 너무나 슬펐다. 그래서 아주 특별하다 했다. 그것은 여전히 빛나는 것 같았다. 아주아주특별하다 했다. 그것이 빛나다 못해 날뛰는 것 같았다. 아주아주아주특별하다 했다. 그 빛은 끝내 소실점의 정점으로 치닫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주아주아주아주특별하다 했다. 그 삼각형의 빛은 제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잔뜩 터져서 끝내 찢겨 흩어졌다. 삼각형의 의미를 상실한 빛의 헝겊들이 흩어져 아무런 힘 없이 내린다. 아주아주아주아주특별한날이었다. 처참하게 찢긴 헝겊들 사이에서 내가 태어났다. 나를 향한, 나의 반항의 아름다운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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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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