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인 '이백'의 시선으로 본 진정한 행복 [문화 전반]

오늘의 즐거움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글 입력 2019.11.13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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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술이 너무 마시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즉흥적으로 친구들에게 연락했지만, 가능한 친구가 없었다. 단지 술을 마시는 것이 나의 목적이었는데, 같이 마실 친구가 없으니 괜히 기분이 울적했다. 혼자 술을 마실까 하다가 문득 내가 처량해 보이는 기분이어서 그냥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거리에 형형색색 물든 단풍과 환한 달을 보니까 갑자기 수업 시간에 배운 중국 시인 이백의 시 한 수가 떠올랐다.

 

 

 

중국의 시인 '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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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은 중국 당나라 시기의 낭만주의 시인으로,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꼽히는 시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술과 매우 친했고, 달을 벗 삼았으며, 산수를 의지했고 신선을 동경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에는 술과 달, 자연이 많이 등장한다. 나는 이백의 시 중에서 ‘월하독작(月下獨酌) - 달 아래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제1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월하독작(月下獨酌) - 달 아래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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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화간일호주, 독작무상친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거배요명월, 대영성삼인

月旣不解飮, 影徒隨我身. 월기불해음, 영도수아신

暫伴月將影, 行樂須及春. 잠반월장영, 행락수급춘

我歌月徘徊, 我舞影零亂. 아가월배회, 아무영릉란

醒時同交歡, 醉後各分散. 성시동교환, 취후각분신

永結無情遊, 相期邈雲漢. 영결무정유, 상기막운한

 

꽃 사이에서 술 한 병 놓고 친한 이 없이 홀로 마신다

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니 그림자까지 세 사람이 되었네

달은 본래 술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그저 나를 따라 할 뿐이지만,

잠시 달과 벗하고 그림자 거느리고 이 봄을 마땅히 즐겨야 한다.

내가 노래하니 달이 서성이고 내가 춤추니 그림자가 어지럽게 오가는구나

깨어서는 함께 즐기고, 취한 후에는 제각기 흩어지는구나.

영원히 무정한 우정을 맺어, 아득히 먼 은하수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네.

 

이 시는 이백이 혼자 술을 마실 때, 달과 자신의 그림자를 벗 삼아서 봄을 즐기며 술을 마신다는 내용의 시다. 깨어서는 함께 즐기고, 취한 후에는 제각기 흩어지는 사람들과의 술자리와 다르게, 달과 그림자는 감정이 없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녀 세속의 욕망을 초월한 영원한 교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단지 이백이 홀로 술을 마시며 고독을 달래려 자연을 벗 삼아 즐기는 시로 보인다. 하지만 이 시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즐거움과 그로 인한 행복에 대한 그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현재의 즐거움을 미루지 말자.


  

그는 꽃이 만개한 봄의 풍경을 즐기기 위해 함께 마실 사람이 없음에 슬퍼하지 않고 홀로 술을 마신다. 오히려 달과 자신의 그림자를 벗 삼아 따스한 봄을 충분히 즐긴다.

 

반면에 나는, 술을 마시고 싶었지만, 슬퍼하며 현재의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봄이 오고 벚꽃이 아름답게 폈지만, 같이 벚꽃을 볼 사람이 없어서 구경하지 않고 내년으로 미루고 또 내후년으로 미뤘다. 그렇게 즐길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당시에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미루는 사이에 꽃은 지고 봄은 갔다.

 

우리의 인생은 일정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항상 변한다. 상황이 좋게 흘러갈 수도, 나쁘게 흘러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상황이 나쁘다고 해서 계절은 우리의 상황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백은 나와는 달랐다. 그는 봄을 같이 즐길 사람이 없어도, 함께 술을 마실 사람이 없어도, 술을 마셨고 봄을 즐겼다. 달과 자신의 그림자를 벗 삼아 자연을 즐기며 바로 그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을 온전히 누렸다. 누군가가 옆에 없어도, 자신의 처지가 좋지 않아도, 자신의 존재 자체에 의미가 있음을 알고 마땅히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충분히 즐겼다.

 

 

 

행복은 선택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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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행복의 이유를 찾는다. 뭐해서 행복하고, 뭐해서 행복하지 않고. 하지만 행복은 타고나는 것,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봄이 오면 그저 봄을 즐기고, 가을이 오면 가을을 즐긴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것을 즐기자. 즐길 수 있는 건 지금뿐이니까.

 

나는 지금까지 행복을 기다렸던 것 같다. 행복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지금 내가 즐길 수 있는 행복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오롯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 행복을 충분히 누리려고 한다. 나는 무엇을 해서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닌, 그저 존재하는 자체로 가치 있는 사람임을 알고, 나에게 주어진 삶을 온전히 즐겨보려고 한다.

 

어느덧 만연한 가을이다. 단풍이 활짝 피고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있다.  곧 겨울이 온다는 뜻이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겨울이 오면, 나뭇가지는 앙상해지고 단풍들은 한동안 만날 수 없다. 가을의 풍경을 마음에 충분히 담고 남은 가을을 온전히 느껴보는 건 어떨까? 요즘 날씨가 춥다고 집에만 있었는데, 오늘은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단풍 구경을 하며 산책을 해야겠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2019년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남은 2019년을 충분히 즐기며 다가오는 2020년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정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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