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단편, 너무 좋은데요? - 제1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를 보고 [영화]

글 입력 2019.11.0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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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과 장편, 무엇을 더 좋아하세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종종 듣는 질문이다. 개인마다 취향이 있겠지만 예전에는 6권이 넘어갈 정도의 장편 소설을 선호했다면, 요즘엔 이동하면서 틈틈이 읽을 수 있는 단편 소설을 좋아한다고 답한다.

 

하지만 쉽게 접할 수 있는 단편 소설들과 달리 단편 영화는 접할 기회가 적었다. 요새 상영 중인 영화들 중 다수는 러닝타임이 2시간 가까이 된다. 그만큼 하나의 이야기를 공들여 전달해준다고 볼 수도 있지만, 중간중간 '이 부분은 좀 지루한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번 제1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는 이러한 장편 영화와 달리 단편 영화는 어떤 매력과 한계점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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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1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는 10월 31을 개막하여 총 6일간 진행되었다. 광화문에 위치한 씨네큐브와 애무시네마에서 영화 상영 및 특별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는데 나는 이 중 11월 1일, 씨네큐브에서 상영되었던 <국제 경쟁 2> 부문을 관람하였다.

 

총 다섯 개의 영화를 연달아 본 후, 감독님 두 분과의 GV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그리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감독님들과 나누면서 생각하고 느낀 바를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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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프레 라가바르당 감독의 Bistro

 

 

<국제 경쟁 2>의 첫 작품으로는 낭프레 라가바르당 감독의 "Bistro"가 상영되었다. 바가 마감 준비를 할 야심한 시간, 한 여자가 무턱대고 들어와 물 한 잔만 달라고 청한다. 그러고는 옆 손님의 감자튀김을 자연스럽게 집어먹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다. 술 몇 잔이 오고 간 후, 그 순간 처음 본 사람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속 깊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여자는 강압적이고 이기적인 남자친구를 떠나고 싶지만 혼자가 되는 것보다는 지금의 삶이 나은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음을 털어놓는다.

 

영화는 바 안에서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시간의 흐름 그대로 보여주면서 여자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성실히 묘사한다. 자신감 없이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친구에게 매여있던 여자가 마지막에 구두를 벗어던지고는 뒷문을 향해 당당히 걸어갈 때의 쾌감이란. 영화는 13분의 짧은 시간 동안 한 사건을 다룬다. 하지만 그만큼 이야기가 확장될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해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한다. 사건 이후 변화한 여자의 삶으로, 그리고 비슷한 수많은 사람들의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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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북쪽에 사는 네네츠 족의 삶을 그린

줄리아 쿠쉬낸레코 감독의 작품 Terra

삶의 터전이 줄어들고 있는

소수민족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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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를 겪고 있는 유명작가가

배달부 소녀를 만나는 사건을 그린

훌리오 포트 감독의 애니메이션 Who Are You?

깔끔하고 단순하면서도 눈을 사로잡는 그림체와

종종 보이는 마드리드 풍경이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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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어머니의 장례를 위해

자동화된 장례회사를 이용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바질 뒤에멍 감독의 <분산>

고도로 발전한 기술과 자동화 시스템 속에서

퇴색된 죽음과 애도에 대해 위트있게 담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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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에 버려진

한 아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베르나베 리코 감독의 <나의 수호천사들>

 

 

<나의 수호천사들>은 이번 GV 때 감독님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었던 작품 중 하나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스포츠 가방에 담겨 공중전화 박스에 버려진 한 아이가 발견되어 살아남을 수 있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히 아이가 버려진 사건만을 담지 않았다. 아이가 발견되기까지 아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친다. 그리고 아이를 옮기는 과정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스페인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다. 한 나라의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언제나 경찰에게 체포되는 것을 걱정해야 하거나,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감독은 결국 마지막에 아기를 발견하는 것은 스페인의 기득권층이라고 볼 수 있는 '백인 스페인인'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그 과정에 참여했던 수많은 약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다고 한다. 이들 또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어떠한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바로 아기를 구출할 수 없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점에서 영화의 제목 또한 나의 수호천사'들'이라고 하지 않았나 싶다.

 

한 사건을 통해 또 다른 사회적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그 깊이감도 좋았으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이들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아기를 발견하고 엄청난 갈등 상황에 처한다. 불법이민자들은 아기를 경찰에게 신고해야 하지만 자신들의 처지로 인해 난처해하다 인기척이 나자 아이를 다시 두고 도망가버린다. 노숙자는 아이가 담긴 가방을 잘 보이지 않는 상자들 사이에 둔다. (이는 아이를 감추어버린 것인지, 추운 날 아이가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에 있게 한 것인지 그 의도는 사실 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쓰레기 트럭을 운영하던 사람은 가방 속에 담긴 아이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란 후, 백화점 앞 벤치에 아이를 두고 재빠르게 사라져버린다. 이들 중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사회적 장벽에 의해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딱히 그렇지 않아보이는 경우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오히려 이들을 무조건적으로 선한 사람들로 그리지 않은 점이 더욱 현실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체감하게 해주지 않았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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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장 당황스럽게 만든 마지막 작품,

요시나이 가오 감독의 <그랑드 부케>

 

 

가장 마지막 작품이었던 <그랑드 부케>는 나에게 가장 큰 혼란을 선사한 작품이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 스틸컷을 보고는 색채감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는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하기엔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어 당황스러웠다.

 

이 작품은 앞선 네 작품들과는 달리 사건 묘사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만큼 이해하기도 어려웠고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설명하기가 참 애매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했는지 GV에서도 <그랑드 부케>에 대한 질문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참여하셨던 감독님 또한 대부분의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 어떤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기 어려워한다는 점을 인정하셨다.

 

감독님이 무용을 하셨던 분이라 몸의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어떤 것인지,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바탕으로 했다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그 외에도 더 많은 상징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가 너무 모호해 혼란스러웠지만 그만큼 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생각이 나고, 나만의 상상력을 발휘해 해석해보게 한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감독님의 의도와 영화가 상징하는 바가 지금까지도 너무 궁금해서 검색도 해보았지만 아직 이에 대한 자료가 많이 없는 것 같다.)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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