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순응을 요구하는 시공간 안에서 살아남은 글자들 - '전쟁의 목격자'

정상성을 겨냥한 종군기자의 저항기.
글 입력 2019.10.13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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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공과 강박의 공존


 

도서를 수령하기 전에 이 전기의 주인공인 종군기자의 행보를 간략하게 검색한 바 있다. 그녀는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종군기자다. 일단 이 정보만으로도 그녀의 일생을 다룬 이 책이 여러 의미에서 쉽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저 당시에는 여성이 저널리스트로 활동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뿐더러 설사 그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남성 기자들처럼 활발하게 현장을 취재하고 기사를 송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당대의 언론은 전 세계를 막론하고 굉장히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장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 ‘저널리즘은 여성이 발 딛을 세계가 아니었다.’ 당대의 여성들이 사회를 겨냥한 글을 작성하고 공인된 신문과 뉴스에 실으리란 말 그대로 맨땅에 머리를 헤딩하는 일과 같았다.

 

세계대전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과 정치적 분쟁이 당대 사회를 휩쓸던 와중에서 저널리즘은 어떤 때보다도 ‘저널리즘다운’ 행보를 밟을 수 있었다. 취재거리는 넘쳐났고 혼란스러운 세계정세를 담아내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진영논리로 환원시켜 살펴보자면 ‘보수적인’ 관점에서 쓰이는 기사들도, ‘진보적인’ 관점에서 쓰이는 기사들도 맹렬히 나오던 시기였다. (나는 정치를 논할 때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로 진영을 이분시키는 경향을 싫어한다. 그러므로 특별히 따옴표를 사용하겠다.) 이런 면에서 이 시기의 저널리즘은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글들을 담아낼 수 있었지만 동시에 아주 폐쇄적이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여성인권을 수호하려는 움직임과 그것을 둘러싼 논의들이 생겨나고 있긴 했지만 여전히 사회 전반에서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잔인할 정도로 냉랭했고 이런 분위기는 언론도 예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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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했던 이데올로기가

모순에 불과했음을 깨닫는 순간의 절망감이란.

 

 

그런 와중에 종군기자, 그것도 여성 종군기자가 전쟁 속에 뛰어들어서 세계가 주목할 만한 기삿거리를 사냥하러 거침없이 몸을 누비다니. 오늘날에는 한 세기 전에 비해서는 표면적으로, “비교적으로” 직업적 자유, 사회진출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받고 있으니 지극히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겠지만. 저 당시의 분위기에서 매기의 행보는 상식의 반열에 맞아 떨어지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기성적인 사회 안에서 그녀는 이단아였다. 어디로 튈지 예측조차 불가능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굉장히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살아간 인생의 궤적을 책을 통해 좇아가면서 느낀 것은 저널리스트로서의 명예와 지위가 그녀에게 칼과 방패 두 가지 모두로 기능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커리어를 확고하게 수호하고 압도적인 실력을 발휘하는 마거리트 히긴스의 인생은 의심의 여지없이 모험적이다. 치열했던 그녀의 삶은 하나의 드라마로 각색되어도 손색없을 정도이지만 (실제로 영화화를 추진하고자 했으나 본인이 거절했다는 일화가 책 안에서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아주 고독하고 강박적이었다. 그녀조차도 그녀 자신의 자아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때가 많았을 것이다. 정말이지 강박이라는 단어가 정말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트리뷴의 동료 기자들이 특히 그녀에게 인간적인 동료애를 느끼지 못한 이유도, 일생동안 그녀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진정으로 경험하지 못한 이유도, 평생을 저항과 경쟁의 반열 안에서 보내온 이유도. 결국 매기 스스로가 지나치게 강박적이고 외롭도록 스스로를 고립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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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시감의 원인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한 저명한 신문사 중 한 곳의 대표자로서 그 신문의 전쟁 보도 범위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요컨대 개인으로서, 자기 일을 하는 기자로서 판단 받을 권리가 있었다. <트리뷴>의 기자로 일하게 된 아주 초기부터 그녀는 그 어떤 남자에게도 뒤지지 않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 왔다. 전선에 닿지 못하면 여성이라는 그녀의 성별이 장애물이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터였다.”

 

- <전쟁의 목격자>의 한 구절

 

 

책을 읽으면서 내내 체한 것 마냥 기분이 나쁘고 답답했다. 책의 내용이 형편없다거나 지루하다거나의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장을 넘기면서 어떤 기시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그녀가 대학 시절을 거쳐 컬럼비아대학의 저널리즘 스쿨에 입학하고, 졸업 후에 본격적으로 기자로서의 커리어를 밟아나가며 각종 내전과 전쟁의 현장에 뛰어드는 그 모든 과정동안. 심지어는 그녀가 열대성 질환을 얻어 갑작스레 죽음에 이르기까지. 내가 살아가는 인생의 형태는 그녀의 그것과 심히 다르고 심지어 나는 매기에 비해 무언가를 결단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무모함이라 칭하기도 하는)도 부족한 인간인데 이상하게도 그녀와 나의 인생이 동일한 냄새를 풍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에게 이 책은 남성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세계에 뛰어든 한 여성의 모험기라는, 성별과 관련된 논의를 중심으로 읽히기보다 사회 전반이 규정한 정상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순응하지 않으려는 한 인간의 저항기로 읽혔다. 매기는 평생을 틀 밖에서 살았고 이것에 대한 증거로 그녀는 살아가는 내내 글자를 곁에서 떨어뜨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존재했던 모든 순간을 글자로 남겼다. 수많은 기사와 칼럼, 단행본의 형태로 쉴 틈도 없이 되새기었다. 마거리트는 자신의 시간에 상식과 비상식,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기준을 들이밀며 개입하는 사회에 저돌적으로 반응했다. 내가 기시감을 느낀 이유는 이것이었다. 나도 그녀처럼 나를 둘러싼 온갖 속박의 굴레들에 염증이 날대로 났기 때문이고 이에 소극적이면서도 격렬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저항해왔기 때문이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아 외칠 때도 나는 펜과 교과서를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고 마침내 등수 표에서 내 위로 아무도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는 순간, 사람들은 나에게 독종이라고 손가락질했다. 나의 이름 옆에 적힌 등수의 정당성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경쟁해야만 했고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고 지탱하며 살아가야 했다. 전공으로 인문학을 선택할 때도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고 비난하던 사람들에게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했고 그것은 학업적인 면에서나 일적인 면에서나 과도한 도전으로 이어졌다. 참으로 마거리트가 자신을 갉아 먹어온 방식과 비슷하지 않은가. 특히 대학에 진학하고 신문부에 입사하여 동료들을 저버린 채 독자적으로 특종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그녀의 경쟁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대목을 읽으며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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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통찰력이 놀라웠다.

 

 

이런 느낌은 그녀가 본격적으로 ‘남성의 세계’라 불리는 실전 언론계에 뛰어들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차별을 마주할 때 절정에 치달았다. 단지 여성이라는 성별의 이유 때문에 차별받는 모습을 보며 화가 났을 뿐 아니라 보편적인 삶의 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정상성에 반하는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규정되었다고 느껴서다. 마거리트에게 ‘네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어투의 냉소적인 시선들이 가해질 때마다 나는 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겪어왔고 지금도 겪고 있는 정상성이 위시된 폭력을 한 세기 전의 그녀도 그대로 겪고 있었다. 그녀는 폭력에 노출되는 와중에도 스스로의 강인한 자아를 발판으로 삼아 자신에게 위해를 끼친 이들에게 그대로 되갚아준다. 그 모습은 참 통쾌하지만 어쩐지 안쓰럽게 와 닿는다. 폭력으로 인한 상처가 지워지는 건 아니니 말이다. 스스로를 갉아먹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역설적으로 지속적인 폭력에 노출됨으로써 그녀가 명성을 얻은 것은 자명하지만.

 

마지막까지 그녀는 세계에 저항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책의 서문에서도 써 놓았듯이 그녀는 오히려 노년을 맞이하는 결말까지 도달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그녀답게 죽은 것일지도 모른다. 마흔 여섯의 시간을 경유한 그녀는 결코 이른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다. 마거리트 히긴스라는 사람을 남기기에 46년의 세월은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 대목에서조차 기시감을 경험했다. 나도 항상 스스로가 오래 살 것이라 낙관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늘 육십 근처까지 살다가 생을 마감하겠다는 소리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다.) 이르다고 평가받는 그녀의 죽음에 어떤 동질감을 느껴서일까.


한때는 강력했던 열망 중 하나가 있다. 기자를 장래희망으로 지목했던 것. 지금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언론계에 입문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품고 산다. 그래서 한편으로 마거리트의 전기는 나에게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지침서 중 하나다. 그녀와 같이 불꽃같은 열정과 대단한 승부욕을 가져야만 험난한 언론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맥락의 조언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어떤 식으로 이 세계에 이미 정립된 정당성과 정상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견제할 것인지에 관한 예시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마거리트의 취재 대상으로 등장하는 사건들과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행동, 그리고 그녀 주변에 존재하는 동료 기자들까지도 그녀를 무너뜨리려는 기제로 호시탐탐 등장하기 때문이다. 갖가지 복잡한 정치 행각과 정치‘적인’ 술수들이 판을 치는 와중에 스스로의 논변을 어떻게 펼치고 꼿꼿이 서 있을 것인지. 어떻게 순응하지 않을 수 있는 지에 관한 고민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엄습했다. 순응에 불응하는 방법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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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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