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보여준다는 것은 그 뒤의 일을 잠시 잊어버리는 것 [영화]

글 입력 2019.10.0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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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이 어떨지 그렇게 걱정돼?’ 올리버가 엘리오에게 물었다. 엘리오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서 올리버와 엘리오가 서로의 감정이 무엇인지 확인하려는 장면이다.

 

좋아하는 감정, 그 감정은 꺼내놓기가 참 힘들다. 내게 익숙한 감정이 유지되길 바라는 성향인지 습관인지 모를 굳어져 버린 의미 없는 모습을 붙잡는다. 하루하루 해나가야 할 일정과 만들어온 관계의 모습에서 좋아하는 감정이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예기치 못한 손님이다. 고등학생, 대학생, 취준생이라는 사회에서 만들어낸 인습의 틀 속에 그런 감정은 욕심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견고했던 엘리오와 올리버의 삶이 충돌하는 시간을 보여준다. 시간적 공간인 여름은 두 사람의 만남을 이끌었다. 원작 안드래 애치먼의 ‘그해, 여름 손님’이라는 제목에서 보듯, 엘리오와 올리버는 서로에게 뜻밖의 손님이었다.

 

서로가 쌓아온 세월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기로 한 건, 엘리오가 올리버를 자신만의 비밀 장소인 어느 호숫가로 초대한 뒤부터다. 아들로서의 엘리오, 연인으로서의 엘리오, 손님들 앞에서의 엘리오가 아닌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충실하면서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엘리오로 있게 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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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무 일 없던 그곳에 올리버를 초대하면서 엘리오는 가볍게 행동한다. 편하게 올리버에게 장난을 치며 무엇에도 속박되어 있지 않는다. 올리버의 편한 모습을 보고 난 뒤, 엘리오는 확신한다. 올리버를 향한 감정이 사랑이며, 올리버 역시 그 사랑을 알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의 마음을 보인다는 것은 자신의 전부를 상대방에게 보이는 모험을 해야만 한다.

 

호숫가에 올리버를 초대할 때 엘리오의 마음은 성급했다.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확인해보고 싶었으며, 상대 역시 전부를 보이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말이다. 판단하는 수고는 골치 아팠으며, 이 여름이 끝나기 전에 얼른 알고 싶었다. 그리고 서로가 자신의 모습을 다 드러냈을 때 그들은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었던 편한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은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만들어졌다. 오직 자신만이 그곳으로 가는 길을 안다. 자신의 공간에 상대방을 초대했을 때 그 상대가 자연스레 숨을 쉬는 모습은 모두가 바라는 바다. 물론 그 모습은 올리버가 호숫가를 걸으며 파원을 일으킨 것처럼 자신의 틈을 깨는 일이다.

 

수많은 만남이 있다. 그 만남에 어떤 모습을 보일지 항상 선택해야 한다. 상대의 평을 두려워하는 건 내 모습이 거부당하기 때문이다. 살면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얘기하고 시간을 보낼 상대가 몇이 있을까, 만약 나에게 다시 그런 순간이 온다면 선택지에 주저함 외에 성급함도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한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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