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문학과 음악의 교차점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예술의 공통점에 대해서
글 입력 2019.10.0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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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이란 무엇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사건이나 생각 따위를 차례대로 말하거나 적는 행위를 말한다. 글로만 이야기를 서술할 수 있을까? 물론 주로 서술은 글로만 행해지긴 하지만 꼭 글에 한정되는 행위는 아니다.


김흥도의 ‘씨름’ 그림을 보면, 중앙에는 씨름꾼이 있고 그들을 구경하는 사람과 엿을 파는 장사꾼이 보인다. 한쪽 발을 들고 얼굴을 찡그린 씨름꾼도, 두 다리를 굳건히 바닥에 붙이고 상대를 넘기기 위해, 넘어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씨름꾼도 모두 역동적이다. 누가 이길지 아직은 모르지만, 모두의 시선이 씨름꾼들에게 몰린 것으로 보아 지금이 가장 긴장되는 순간 같다. 씨름을 구경하는 사람 중 일부는 웃고 있고 일부는 울상이 된 거로 보아 이 씨름판에 돈내기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모든 장면을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그림 안에서 읽어낼 수 있다. 이것이 그림의 서사이다. 이러한 서사를 그린 것을 바로 서술이라 한다.


음악도 무언가를 서술하고 있을까? 물론이다. 위 화는 음표로 이루어진 선율을 통해 음악은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말한다. 슈베르트의 마왕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달래는 장면은 부드럽고 잔잔하게 진행되다가, 아들이 마왕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긴박감 넘치고 웅장하기도 하다. 이런 변화를 통해 음악은 아들의 심리나 부정애를 표현하고, 사건을 이야기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소리의 높낮이가 길이나 리듬과 어울려 나타나는 음의 흐름을 선율이라고 정의한다. 문학에는 선율이 있을까? 표준국어대사전의 의미에서만 유추해본다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책에는 어떤 소리도 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 화는 문학 역시 선율이 있다고 말한다. 비록 소리가 나지는 않으나 문장의 리듬, 호흡, 길이가 각각의 선율을 만든다.


문장이 짧게 짧게 끊어지면 긴박감이 느껴진다. 반대로 길어질수록 다소 호흡이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시끄럽다. 새다. 쉼 없이 울부짖는다. 날갯짓을 한다. 날지 못한다. 계속 퍼덕거린다. 잠시 몸이 떠오르다 추락한다. 이처럼 쓰는 것과 다음처럼 쓰는 것은 차이가 있다. 아침에 자꾸만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깨고 보니 새가 창문 밖에서 쉼 없이 날개를 퍼덕거리고 있다. 가만히 지켜보니 날개를 수백 번 흔든 뒤에 겨우 몸이 1cm 정도 떠오르다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런 것을 문학의 선율이라고 말한다.



 

문학의선율 음악의서술 띠지 입체.jpg
 

 


설명하고 나니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얼추 보면 서로 받쳐주는 것이 뒤바뀐 거 같지만 틀린 말은 없다. 문학에는 호흡과 리듬이 있고 음악에는 이야기가 있다. 책의 이름에 충직하게, 위 화는 6년에 걸쳐 쓴 20편의 산문과 1편의 인터뷰를 통해 문학에 선율이 존재하고 음악에 서술이 있음을 증명한다. 주로 도서의 초반부는 문학에 대해, 후반부는 음악에 대해 말하고 있다.


위 화는 한국에 ‘허삼관 매혈기’라는 소설로 잘 알려졌다. 나 역시 ‘허삼관 매혈기’를 즐겁게 읽었었다. 문체는 유쾌하면서도 매우 담백하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형식은 붓글씨의 끝 부분처럼 걸걸한 느낌이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때의 기억이 강렬한 탓에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역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른바 문학과 음악계의 기초 개론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허삼관 매혈기’에서 느낄 수 없었던 유식함과 각종 비유로 이야기를 더욱 탄탄하게 풀어나간다.


차마 이 책의 모든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가 없다. 단백질이 가득하지만 다소 소화가 어려운 고기처럼 이 책도 유익한 내용으로 꽉 차 있어 소화하는 데 오래 걸린다. 나의 기초 상식이나 예술에 대한 안목이 부족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천천히 소화가 시작되면서 읽은 부분이 피와 살이 되어 내 안목을 높이고 문학과 음악에 대한 친근감을 높여줄 것이란 생각을 하며 몇 번이고 찬찬히 읽어보았다.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은 여타 문학 관련 책처럼 타 작가에 대한 설명이나 작품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 윌리엄 포크너, 후안 룰포, 가와바타 야스나리, 프란츠 카프카 등 수 많은 작가의 글을 서로 비교하고 장점을 이야기하며 감탄하거나 장점을 가져와 흡수하기 위해 애쓴다. 모든 작품을 알고 있지 않은 사람을 배려하여 몇 구절을 같이 실어두었는데, 그래서 더 책에 나온 작품을 찾아 읽어보고 싶은 욕구에 빠진다. 마치 친한 친구가 추천하는 영화를 찾아보고 싶은 기분과 유사하다.



내가 보기에 문학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무한한 부드러움의 상징이고 카프카는 극단적 날카로움의 상징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서술에서 응시를 통해 사물의 거리를 단축한다면 카프카는 절단으로 그 거리를 얿힌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육체의 미궁이라면 카프카는 심리의 지옥이며,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만개한 양귀비꽃처럼 혼곤한 잠으로 이끈다면 카프카는 혈관에 헤로인을 투입한 듯 강렬한 흥분을 일으킨다.


(40~41쪽)

 


본문에 나오는 말과 같이 카프카의 글은 날카롭고 심리적으로 압박하며 읽는 사람에게 흥분을 일으킨다. 한 번 읽게 되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책은 아직 읽어본 적이 없어 무한한 부드러움의 상징이라거나 서술에서 응시를 통해 사물의 거리를 단축한다는 의미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책 내부에서 설명을 해주는 것은 맛보기에 불과하다. 이렇게 하나의 책을 읽고 나면 또 다른 책을 읽기 위해 움직이게 된다. 도서 내부에서 설명하는, 독서로 이어지는 관계가 나에게도 벌써 이렇게 적용되고 만다.


책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열렬한 찬가를 늘어놓은 뒤에 서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깊이 있게 풀어낸다. ‘심리적 죽음’에 연결되는 내용이나 작품 속에서 서술자가 묘사하는 ‘어머니’의 이미지와 독자가 가진 ‘어머니’의 이미지의 차이에서 오는 충돌, 브루노 슐츠 작품 속 ‘아버지’는 어떤 식으로 등장해 의미를 나타내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작품의 후반부에서는 작가가 고전음악을 사랑하게 된 계기, 미친 영향과 어린 시절 작곡 경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는 브람스의 삶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270쪽 ‘클라이맥스’에서는 음악과 문학을 같이 두고 이야기를 한다.



음악에는 무슨 보수적 음악이나 급진적 음악이 존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음악은 각각의 시대와 다양한 국가 및 민족의 사람들, 다채로운 경력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이유와 다양한 인식에서 출발해 나름의 입장과 각양각색의 형식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똑같은 정성을 기울여 창조해왔다. 따라서 음악에는 서술의 존재만 있을 뿐 다른 존재는 없다.


(267~268쪽)



브람스의 삶과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며 작가는 이렇게 덧붙인다. 작가는 또 예전에는 보수적이라고 여겨지던 브람스 음악이 후대 시선에서는 미래를 내다본 위대한 특성으로 읽혔으며 당시에 급진주의자이자 음악 언어의 혁신가였던 바그너가 후대인의 속을 끓이지 못했다고 말하며 위 문장을 받쳐준다. 말 그대로, 음악뿐 아니라 모든 예술에 서술의 존재만 있을 뿐 다른 존재는 없다. 지금의 평가가 다음에는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일이다. ‘음악의 서술’ 마지막 문장처럼, 그들은 원하기만 하면 음악 속 모든 형식의 서술을 연주할 수 있지만, 그들 중 누구도 분쟁을 연주할 수는 없다.


생각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왜곡해 이해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공감되었다. 예술에 이름을 붙여두거나, 특징과 성향을 담는 것은 사람들이다. 언제나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바뀐다. 그러나 예술 그 자체는 그 이름에 따라 예술이 변화하거나 도태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위대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들에게 끌려 들어간다. 겁 많은 어린애처럼 조심스럽게 그들의 옷자락을 붙들고 그들의 걸음걸이를 따라 시간의 강을 천천히 걸어간다. 따스하면서 온갖 감정이 뒤섞이는 여정이다. 그들은 나를 이끌어준 뒤 돌아갈 때는 혼자 가라며 등을 떠민다. 돌아온 뒤에야 나는 그들이 영원히 나와 함께 있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56쪽)



책을 읽으며 가장 공감되었던 말은 이 부분이었다. 누구나 그 순간에 집중해 책에 푹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책을 덮고 난 순간에도 한참 자신을 뒤흔들어 어쩔 줄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런 책은 몇 년이 지나도 제목이 떠오르고 내용을 추억하게 된다. 다시 읽으면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종일 기분이 좋아 날아다닐 거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은 그런 책을 읽을 때의 흥분감은 덜하다. 문장에서 작가의 흥분을 느낄 수 있긴 하지만, 글을 읽는 내내 여러 번 곱씹고 다시 읽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잔잔하고 차분하게 문학과 음악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책을 덮고 나서는 혼자 생각에 잠길 수 있게 유도한다. 슬프게도 대부분은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가에 대한 자기 고찰에 관해서다. 이 책의 소화가 모두 끝난다면, 그래서 비로소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모조리 내 친구의 일상 이야기처럼 귀에 머리에 마음에 스며든다면, 위 화가 우리에게 건넨 이야기와 위 화에게 이야기를 건넨 작가의 작품은 모두 나의 곁에 영원히 머물 것이다.



*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 생生을 헐어 쓴 글의 힘 -


지은이 : 위화余華

옮긴이 : 문현선

출판사 : 푸른숲

쪽 수 : 404쪽

발행일
2019년 09월 02일

정가 : 16,800원





[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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