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화가의 그림은 본질이 없는 허상일 뿐이다? [문화 전반]

회화와 조각을 비판했던 플라톤에 대한 이야기
글 입력 2019.09.28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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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정말 똑같이 그렸다!”

 

현대에 이 말은 일반적으로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에게 하는 칭찬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똑같은 말을 고대에 했다면, 이 말은 아마 칭찬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대에는 닮게 잘 그린 회화와 잘 만든 조각들에 대해 ‘beautiful’(아름답다)이 아닌 ‘vulgar’(저속하다)라고 평가하며 부정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의 중심에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있었는데, 회화와 조각에 대한 플라톤의 부정적 견해는 그의 이원론적 세계관과, 이를 바탕으로 한 모방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부터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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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이란, 세계는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결합한 상태로 살아가는 ‘현상계’와 육체가 소멸한 뒤 영혼만이 살아가는 ‘이데아계’로 구분되어있다는 세계관이다. 플라톤은 이데아계만이 진정한 실체이며, 현상계는 실체의 그림자로서 이데아를 모방하여 생겨난다고 보았다. 플라톤에 따르면, 목수의 머릿속에 의자의 이데아가 실체로서 존재하고, 목수는 그 이데아를 보고 모방하여 의자를 만든다. 다시 말해, 플라톤에게 현상계의 의자는 이데아계 속 의자의 모방품일 뿐이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모방품일 뿐인’ 현상계의 의자를 보고 화가가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가가 조각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 회화와 조각은 목수가 만든 의자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목수의 의자는 머릿속에 있는 이데아를 모방하려고 한 것이지만 화가의 의자는 이데아에 대한 고려 없이 ‘이데아의 모방’인 목수의 의자에 대한 모방이기 때문이다. 즉, 회화와 조각은 모방품을 모방한 ‘모방의 모방’이다. 모방할 때마다 완전하고 불멸한 진리인 이데아에서 점점 멀어진다고 생각했던 플라톤에게 두 번의 모방을 거친 회화와 조각은 존재론적으로 굉장히 불완전한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회화와 조각은 플라톤에게 인식론적 차원으로도 굉장히 가치가 낮은 대상이었다. 플라톤은 목수가 어떤 사물을 만들려고 할 때는 그 사물의 이데아를 알고자 하며, 그 이데아를 실현하기 위한 기능, 조형의 원리 등을 파악하기 위해 애쓰면서 사물에 대한 지식을 축적해나간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플라톤에게 목수는 사물의 이데아에 관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데아를 물질에 실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노하우가 있는 사람이었다. 반면,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사물의 외양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 본질과 기능에 관심이 없으며, 사물에 대한 지식도 노하우도 없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회화와 조각은 존재론적으로도, 인식론적으로도 참되지 않은 허상일 뿐이라며 비판을 했던 플라톤. ‘미술’의 범위가 굉장히 넓어진 현대의 시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회화/조각에 대한 플라톤의 비판은 황당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렇게 아름답고 내 눈을 즐겁게 해주는 작품들을 보고 ‘본질이 없는 허상’이라고 표현을 했다니.

 

플라톤이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본질=이데아’라는 전제를 두고 미술에 대해 평가를 했으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작품을 보고 아름답다 아니다, 미(美)술이다 아니다 평가를 하는 기준은 우리가 각자 생각하는 세상의 본질에 기반을 두고 있어야할까. 어떤 작품에 대한 평가는 꼭 이성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일까.

 

현대에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미술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애호가의 입장에서, 어떤 작품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끼거나, 배움을 얻거나, 즐기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 작품은 미(美)술이 될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단순하게 한번 생각해본다.



[김태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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