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놉시스
이름 이찬란, 나이 23세.
엄마는 내가 한 평생 찬란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내 이름을 ‘찬란’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평범한 외모, 평범한 속도, 평범한 욕심을 가진 나는 특.별.히 가난한 관계로 일주일 내내 하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바쁜 스케줄로 가끔 비굴하게, 또 가끔은 고립된 느낌으로 대학 4년을 버티고 있다.
일찍 수업이 끝난 어느 날, 잘못 들어선 학교 건물에서 우연히 도래선배와 얽히게 되었다. 있는지도 몰랐던, 심지어 폐부위기에 놓인 연극부에 얼떨결에 가입하게 되었고, 또 다른 연극부원인 유, 시온선배, 혁진 언니와 함께 연극부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연극부는.. 아니 우리는 어떻게 될까..?

문득 인생에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는 글을 썼다. 답을 찾고 싶어서 적기 시작한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또 다른 질문만을 낳았다. 다 써 내려간 질문의 끝에 답은 없었다. 질문의 향연만이 이어질 뿐이었다.
질문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미래로, 그리고 다시 현재로. ‘나는 지금 괜찮을까?’ 어쩌면 그 답을 뱉고 싶었던 것 같다. 빙빙 돌려 답을 피해 질문했지만, 사실 하고 싶던 말은 “나 지금 안 괜찮아”. 깨닫는 순간, 주저앉아 버린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싫어서 대답하지 않았다. 누가 물어볼세라 “괜찮아, 괜찮아.” 입에 달고 살았다. 타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싫었지만, 더 싫은 건 내가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나의 “괜찮아.”는 늘 최면일 뿐 정말 괜찮았던 적은 아마도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모두 “괜찮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타인의 “괜찮지?”가 “괜찮다고 해.”로 들리는 순간들도 많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까. 나만 힘든 게 아니니까. 그래서 모두 입꼬리를 올리고, “괜찮아.”하고 말하는 연습을 한다. 괜찮지? 괜찮아야 해.
늘 그렇듯 괜찮아야 했던 어느 날, 오랜 친구가 웹툰 하나를 추천해줬다. 네이버 웹툰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였다. 웹툰을 좋아했던 나는 웬만한 웹툰은 전부 정주행을 마친 상태였고, 80화가량의 길지 않은 웹툰이었기에 밤 10시 정도에 1화를 보기 시작했다.
날이 밝았고, 나는 잠들지 못했다. 웹툰은 끝이 났고, 나는 한참 전부터 울고 있었다. 매일 밤 꼬리에 꼬리를 물던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너무도 듣고 싶었던 말.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가장 건네고 싶었던 말. 웹툰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 영화. 인생 드라마. 인생 맛집. 삶에 큰 영향을 주었거나, 인생에서 가장 큰 감명을 받은 대상 앞에 “인생”이란 단어를 붙인다. 웹툰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는 나의 “인생 웹툰”이다.
나는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를 다 본 후, 내가 나를 위로해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안아주지 않았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았던 건데. 뭐가 그렇게 두려워 나를 안아주지 못했을까?
힘이 들 때 힘들어하고, 아플 때 아프다고 하고, 괜찮지 않을 때는 괜찮지 않은 나로 있는 일. 우리가 생각보다 잘 못 하는 일들이다. 적어도 스스로를 속이면 안 되는데,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것보다 더 설렜던 이유가 있다. 연극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감동을 나눌 수 있다. 전자기기 스크린을 넘어, 극장 내에서는 우리의 호흡 역시 맞출 수 있다. 누구와 함께 볼까? 어떤 내용으로 소개할까? 누구에게 가장 큰 위로와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행복한 고민들이었다.

여전히 나는 힘이 들 때 웹툰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를 처음부터 다시 본다. 그 순간 현실의 시간이 멈추고 온전히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 된다. 나의 인생 웹툰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연극으로 만났을 때도 나를 위로해주기를 기대해본다. 그때도 나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말해주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