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폭력의 고리 - 킬롤로지

글 입력 2019.09.02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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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열전] 킬롤로지 티저 포스터.jpg
 

영화 <고백>을 본 적 있다.


제자는 자기 내부의 분노를 배설하고 싶어 담임선생의 딸을 죽인다. 제자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그럴만한 개연성이 있어 죽었을 뿐이다. 딸의 죽음에 관여한 건 맞지만 전적으로 내 탓은 아니라는 식이다. 선생은 복수한다. 그러면서 웃는다. 선생의 표정엔 기어코 응징했다는 성취감이 있다.


성취감과 더불어 일상을 영위할 때의 무감각함도 있다. 받은 것 이상의 수위로 보복했으니 후회나 자문할 필요 없다. 선생은 명료한 인간이다. <고백>의 주인공은 유약하지 않다. 그는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이것이 온당한지 되새기지 않는다. 대상에게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당한 만큼 돌려준다는 의식. 똑같은 폭력으로 되갚겠다는 다짐. 그것만 있다. 그래서 그냥 한다. 그리고 영화는 애써 이를 포장하지 않는다. 인과응보에 대한 쾌감은 있지만, 선생이나 제자가 한 행위는 똑같이 폭력이다. 부연을 붙여 동정을 유도하지 않는다. 배설이든 보복이든 응징이든 같은 차원의 폭력임을 보여준다.



킬롤로지 공연사진4.jpg
2018년 상연 당시 공연사진


<킬롤로지>는 그 대척점에 서 있는 작품 같다. 폭력의 구체적 인과를 다루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 시놉시스만 보면 선악 구도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인물들은 피해자나 가해자 같은 이분법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그들이 폭력의 고리에 휘말리는 건 온전한 자의가 아닐 거다.


각자의 사연이나 배경 때문일 테고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 묻는 건 정당하지 않다. 현실의 인간과 가장 유사할지도 모르겠다. 순전히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환경이나 구조 같은 것들이 개인의 선택에 분명 영향을 끼친다.


네가 선택한 거다, 자초한 거다, 따위의 언어가 비겁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건 문제의 원인 모두를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게리 오웬은 오랫동안 개인과 구조의 관계에 천착한 작가로 알고 있다. 내가 <킬롤로지>에서 가장 기대하는 것도 그런 맥락을 얼마나 잘 포착했는지다.


동시에 모든 책임을 구조나 여타 환경으로 돌리는 현상도 정당하지 않다.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으로 정의되는 건 아닐 거다. 익명성에 기댄 혐오발화와 조롱, 낙인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다. 위해가 폭력이고 그것들은 타인의 마음속에 해로운 인장을 남겨서 폭력이다. 그리고 거기 동참하는 이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난다. 당신도 나도 동참했거나 하는 중이다.


이 폭력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기원을 찾는 행위와 그것이 야기할 결과를 진단하는 건 무의미해 보인다. 모두가 대열에 서서 발화한다. 나뿐만 아니라 당신도 그렇게 하고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악순환은 물론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내가 받은 피해를 똑같이 전이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그럴듯하다.(김혜리,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어크로스, 2017, p107)


그러나 그 대열에서 이탈해 자문해 볼 수는 있다. 모두가 폭력을 집행하는데 왜 나는 거기 동참하면 안되냐는 변명이 정말 그럴듯한 변명으로 성립할 수 있는지 의심할 수 있다. 의심이 누적되면 문제의식으로 변모할거다. <킬롤로지>가 그걸 보여줬으면 좋겠다. 내가 받은 폭력의 피해를 되갚겠다는 의식은 악순환의 규모를 확장할 뿐이다.



킬롤로지 공연사진7.jpg
데이비를 연기한 배우 이주승


그리고 <킬롤로지>에서 기대하는 건 이주승의 얼굴이다. <썸남썸녀>에서는 점잖은 변태가 됐다가 <방황하는 칼날>에는 자기가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고 믿는 가해자의 얼굴을 보여준다.


가장 좋았던 건 <소셜포비아>였다. <소셜포비아>에서 그의 얼굴엔 수세 몰린 청년의 절박함이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다가가서 얘기를 들어주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했다. 타인의 처지를 헤아리려 노력하는 인간. 그 마음이 있기 때문에 모든 인물을 위화감 없이 연기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킬롤로지>에선 어떤 얼굴을 보여줄지 보고 싶다.

   

 


 


킬롤로지
- Killology -


일자 : 2019.08.31 ~ 2019.11.17

시간
평일 8시
주말 및 공휴일 3시, 6시 30분
월 공연 없음

*
9/12(목) 3시, 6시 30분
9/13(금) 4시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티켓가격
R석 55,000원
S석 40,000원

제작
(주)연극열전

관람연령
만 16세 이상

공연시간
125분 (인터미션 : 15분)


[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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