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도 뚜벅이인 당신에게 [사람]

하루 3시간 사용법에 관하여
글 입력 2019.08.27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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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올리는 지금도 나는 흔들리는 길 위에 서있다.


나의 하루는 항상 비슷하지만 다르다. 아르바이트를 가는 날도 있고 공부를 하러 도서관으로 가는 날도 있다. 학교를 가기도 하도 친구와 약속을 잡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알록달록한 날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느 날이든 적어도 한 시간에서 많아도 세 시간까지, 버스 그리고 지하철과 함께한다는 것. 이것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차 없는 경기도민이라면 당연하게 감수해야 할 부분으로. 나는 하루 중 세 시간은 길 위에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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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나 또한 잠을 자거나 멍을 때리거나, 의미 없이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는 데 이 시간을 썼다. 그렇지만 통학 2년차에 다다르면서 위의 것들은 금세 지루해졌고, 나는 새로운 시간 보내기 방법들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은 지하철에서 그리고 버스에서 내가 사용하는 ‘시간보내는 팁’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먼저 좌석버스를 예로 들어 보자. 좌석버스는 내 기준 가장 행복하고 편리한 수단인데, 40분 가량을 앉아서 가기 때문에 생산적인 활동을 할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처럼 1분마다 내려야 할 역에 대한 안내방송도 없이 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니 이 얼마나 쾌적한가. 책을 읽기에 더없이 좋다. 나는 주로 좌석버스에서 책을 읽는다.


대중교통에서 읽기 좋은 책은 ‘가벼운 책’이다. 그날의 목적지에 가는 시간동안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혹시나 책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하루 종일 들고 다니더라도 부담이 없을 만큼 가벼운 책. 내가 애용하는 책은 라이프매거진 컨셉진과 단편 소설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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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매거진 컨셉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잡지로, A6 사이즈로 아주 작아서 핸드백에도 넣고 다닐 수 있을 정도다. 잡지이기 때문에 인터뷰, 책과 음악 소개, 요리, 사진, 글 등등 다방면에 걸친 이야기를 한 권에 담고 있어서 짧은 시간 동안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또한 감각적인 디자인의 표지도 한 몫 해서 괜히 가방 속에 한 권 정도 넣어 두고 다니고 싶다.


단편 소설집도 좋다. 대중교통에서 읽다 보면 아무래도 읽다가 흐름이 끊기기가 쉬운데, 그래서 비교적 짧은 호흡을 가진 이야기들이 알맞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데이지의 인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10번도 넘게 읽었지만 종종 다시 가방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이미 줄거리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 읽을 때는 한 문장 한 문장을 꼭꼭 씹어 가며 읽곤 하는데, 예전에 읽을 적에는 놓쳤던 벅찬 문장들이 많아 새롭다. 이야기 사이사이에 들어가 있는 나리 요시토모의 몽환적인 일러스트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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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는 아무래도 책을 읽기는 어렵다. 일단 환승을 해야 해서 진득하게 한 노선을 타고 가는 일도 없고, 항상 사람이 많아 앉아 가는 경우도 적기 때문이다. 또한 잡상인, 안내 방송, 광고 등으로 북적북적한 환경이다. 그럴 땐 사람들을 관찰하여 이야기를 만들면 좋다. 예를 들면,



‘저 아저씨는 왜 뽀로로 우산을 들고 있을까? 어느새 아들이 훌쩍 커 버려서, 이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뽀로로 우산이 가엾다고 들고 나왔을지도 몰라. 아니면 어젯밤 회식이 끝나고 술에 취해 깜빡하고 우산을 두고 온 거지. 그리고 급하게 출근하면서 손에 집히는 대로 아무 우산이나 들고 나왔는데, 에구 보니까 우리 아들 거였네. 유치원 갈 때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뽀로로 우산이 없는 걸 보고 아이는 얼마나 속상할까? 저 아저씨,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아이에게 혼나겠다.’



이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들은 시간을 때우기에 아주 좋다. 이렇게 상상하며 보내는 시간은 특히나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들에게 연습용으로 제격이다. 우리는 각자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람들이 관심 있고 궁금해 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잘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항상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저 사람은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을까, 왜 오늘 저 옷을 입었을까 하나하나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은 어떻게 보면 글쓰기의 가장 기초인 것이다.






조금 더 뚜렷하게 생산적인 활동을 원한다면 작은 단어장을 들고 다니면 좋다. 또는 어플도 괜찮다. 최근에 나는 중국어 단어를 외우고 있는데, 다음 정거장에 도착할 때까지 한 단어만 계속해서 재생해 놓고 속으로 중얼중얼거리면, 일정한 시간이 반복된다는 리듬감이 생겨 효과적으로 암기할 수 있다. 출근할 때 외웠던 단어를 퇴근 시 복습한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된다. 평소 도서관보다 약간의 생활 소음이 있는 카페에서 공부하기를 선호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지하철은 나름 괜찮은 학습 공간이다.


여담으로, 가장 최근에 생긴 취미는 아트인사이트에 올릴 글의 주제를 선정하거나 개요를 짜는 것이다. 이렇게 항상 '글 쓰기'를 마음속에 염두해 두고 살아가면 삶이 조금 더 반짝이게 된다. 평소라면 스쳐 지나갈 풍경을 보아도 자꾸만 멈추어 서게 되기 때문이다. 이걸로 글을 써 볼까? 또는 이 이야기도 그 글에 넣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들. '글을 써야 한다'라는 생각을 꼭꼭 담아 두면 자꾸만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두리번거리며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하게 흘러갔을 삶의 조각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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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의 목적은 대부분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이지만, 모순적이게도 집에서 그곳까지 도달하는 과정 안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고독하다. 이 세 시간 동안 잠을 자든, 책을 읽든, 상상을 하든, 멍을 때리든,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든, 영어 단어 하나를 외우든 모두 당신의 선택이고 그 어느 누구도 이 선택에 뭐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즐기라고 말하고 싶다.


어딜 가나 사람들에게 부대끼고 끊임없이 방긋방긋 웃어야 하는 하루 속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틈에 뒤섞여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 시간. 그래서 오롯이 혼자 가꾸어 나갈 수 있는 시간. 그 속에서 멍을 때리든 핸드폰을 뒤적거리든 그런 행동을 통해서 당신이 편안함을 느끼고 위로를 얻는다면, 쪽잠을 자면서 조금이라도 피로가 풀린다면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오늘 3시간은 아주 알찬 시간이 된 것이다.


혹시나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길 위에 서 있다면, 나의 글이 당신의 3시간을 조금이라도 채워주었기를 바래본다.



[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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