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포항에서 느낀 마음 곱씹기, 2편 [여행]

2박 3일 꽉 채워 다녀 온 포항 여행
글 입력 2019.08.10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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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누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느낌에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엄마였다. 하루를 온전히 엄마와 함께 한 게 얼마 만인지 실감이 났다. 창문 밖에는 바다가 빛을 받아 흰색의 빛깔로 넘실넘실했다.



엄마는 어제와는 다르게 양 갈래로 디스코 머리를 땋아줬다. 더 이상 딸의 머리를 땋아주지 않아도 됐을 때, 더 이상 당신에게 머리를 맡기지 않고 아침마다 열심히 고데기로 머리를 동그랗게 마는 딸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씁쓸하고도 슬펐으려나 모르긴 몰라도 오랜만에 딸의 머리를 땋아주던 엄마는 기뻐 보였다. 머리카락 몇 올이 빠져나왔다고, 땋았던 머리를 풀고 다시 땋는 일에 완벽을 기울였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이, 손길이 무척이나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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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리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는 한 시간마다 한 대씩 온다. 30분 정도 남은 시간을 땡볕에서 보낼 수 없었기에 더위를 피하러 카페에 들어갔다. 무심코 들어간 카페에서 먹은 수박주스가 기억난다. 도시의 프랜차이즈에서 먹었던 인위적인 맛이 나는 수박 시럽이 잔뜩 들어간 혼합물이 아닌 100%의 수박으로 된 것 같은 수박 주스였다.


컵 위에는 그것을 증명하듯 수박 한 조각이 올려져 있었는데, 어떤 데코보다 마음에 들었다. 달달하고 시원하게 기억에 남을 수박주스였다. 한 입 먹고 와하는 감탄사가 나왔는데, 처음에는 의도한 게 아니었지만 사장님이 만족하며 웃으시는 걸 보고 어떤 사명감에 휩싸여 더 열심히 맛있다고 했다.


1시간 간격의 버스를 놓칠 새라, 버스가 오기로 한 시간의 15분 전부터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다. 내가 사는 지역은 버스의 간격이 아무리 길어도 10분이 채 안 되고 여차하면 다른 버스를 타면 되기에 고개를 푹 숙이고 핸드폰을 하다가 버스가 지나가 버려도 대수롭지 않게 다음 버스를 기다릴 수 있었는데, 오도리에서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주의 깊게 대로를 지켜봐야 했다.


저 멀리 버스의 앞머리가 보이자 반가움이 들었고, 버스가 지나가버리지 않게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마침내 버스에 타서 앉았을 때는 안도감까지 들었다. 모든 게 편리한 도시에 사는 나는 그래서 어쩌면 더 정신을 반쯤 놓고 사는 지도 몰랐다. 열쇠나 지갑, 이어폰 따위를 놓고 나와 다시 집에 갔다가 나와도 금방이고 와 줄 버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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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귀한 버스는 물회가 맛있다고 유명한 곳으로 향했다. 바다 앞에 위치한 그 물회 집은 하얀 종이 쪼가리를 들고 서 있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기다려서 먹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나는 확고한 기준이 있다. 예를 들어 1시간 이상이면 기다리지 않는다. 그 정도 기다려서 먹는 거면 맛없을 수가 없다는 나름의 이유이다.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보고 지레 겁먹고 사장님께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고 물었더니 30분이라고 하셔서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대기장소에는 얼음 물과 대왕 선풍기가 있었다. 30분간 더위를 달래며 기다렸더니 차례가 되었다. 30분간 기다렸다가 먹은 물회는 사람들의 입을 탄 만큼 맛있었다. 달콤하고 약간은 새콤한 육수를 살얼음과 함께 시원하게 들이켰다. 기다리면서 본 잔뜩 쌓인 배 상자가 육수 맛을 보증하는 듯했다. 특히나 우럭으로 추정되는 회가 무척이나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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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회를 먹고 나와 다음 숙소의 입실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그 앞의 해변에서 발을 담갔다. 하늘에는 꼭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과 꾸미기 당번 아이들이 교실 뒤편 환경 꾸미기 판에 잔뜩 붙여 놓은 솜처럼 구름 조각들이 떠 있었다. 시원한 바다와 풍부한 하늘. 여름이라는 계절이 주는 특권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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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들어와 짐을 놓고 엄마는 티비를 보다가 잠에 들고, 그 옆에 나는 어제 동안 찍은 사진들을 보다가 출출해진 탓에 엄마를 깨워 시장에 갔다. 포항이 고향인 친구에게 연락해 현지인 맛집을 물었더니 시장의 ‘할매 호떡’이 현지인들에게 인기라고 했다.


할매 호떡을 찾는 도중에 복숭아를 발견했다. 수레에 가득 담긴 탐실한 궁둥이같이 생긴 빨갛고 진분홍의 복숭아들은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모양의 복숭아였다. 다른 가판대에서 파는 복숭아들보다 조금 더 비싸서 나는 엄마의 옷깃을 뒤로 잡아당겼지만, 엄마는 만 원어치를 사고는 그곳을 벗어나 아저씨 팔 한 쪽이 불편하신 것 같더라며 거기서 사길 잘했다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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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복숭아는 수원에서 먹은 어떤 복숭아보다 맛있었다. 아니 내 취향이었다. 달지만 무른 복숭아보다 덜 달더라도 딱딱하고 속이 하얀 복숭아를 좋아하는데, 포항의 복숭아는 딱딱하면서 달았다. 큼직한 복숭아를 한 입 가득 물어도 입 옆으로 과육이 줄줄 흐르지 않았다. 열심히 찾아서 간 할매 호떡은 더워서 방학한다는 글을 뒤로 문이 닫혀 있었지만, 그 대신 큼직한 복숭아를 걸으면서 배불리, 달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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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개를 싫어한다. 정을 붙이면 잘 뗄 수가 없어서 애초에 정을 안주는 걸지도 모른다. 반면 나는 개를 좋아한다. 잘 뗄 자신도 없으면서 정을 준다. 떠돌이 개를 봤다. 그 애는 혼자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다른 애가 달려와서 그 애와 마주 보더니 코와 코를 맞댔다. 그리고는 같은 방향을 보며 걸었다. 괜히 내 코 끝이 찡했다. 많이 보고 싶은 친구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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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다와 야경을 보기 위해 영일대 해수욕장에 갔다. 카페 겸 술집에서 만들어 놓은 포라카이 조형물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해 사진을 찍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사진을 찍고 해변을 걷다가 또 바다에 발을 담갔다. 여기 모래는 앞에 갔던 두 바닷가의 모래보다 훨씬 부드러워서 물에 젖은 모래 위를 걷는 게 갯벌보다 부드럽고 찐득거리지 않는 찰흙을 밟는 것 같았다.


물이 빠질 때 즈음이라 앞으로 아무리 가도 내 발목까지 밖에 물이 안 와서 신나서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멀리 보이는 포스코 건물들은 빨간 불빛을 내뿜고 있어서 그것까지 절경이었다. 잔잔하게 치는 파도 내 마음에까지 닿았나 마음이 평온했다. 미워했던 마음, 용서하고 싶은 마음, 그리운 마음들을 꺼내어 그 바다에 놓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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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대 해수욕장의 모래는 신기하게 몸에 달라붙지 않고 잘 털렸다. 해수욕장에서 나에게 조개를 잡았다며 가져다주는 아이를 보며 이 전에 어느 힙한 카페에서 본 ‘모래 인간’이라는 곡의 가사가 생각이 났다. 그렇게 포항에서의 두 밤은 끝나고 나는 지금 포항 바다에서 차마 털어내지 못하고 붙여온 모래알들을 나눈다.

 


저 작고 조그만한 어린아이는

시간이 지나서 보면 뭐가 돼있을까

너의 부모의 눈 안은 따뜻해서

벗어난 적 없이 맑은 것만 보며

가슴 안에 담고 클걸

 

차디찬 얼음 안에 한숨을 가둬두고서

차가운 것을 적당히 거리를 두게 하며

견뎌낼 만큼의 모래가 흘러내릴 때쯤

어둠과 밝음에 대해 옳은 배움을 주실걸

넌 투명하게 알아가게 될 거야

그러다 보면 몸이 색을 띠게 될 거야

그러고 보니 우린 정말로 닮아있다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착각인가

 

영원한 건 없다고 생각해

난 부스러져 왔으니

오늘은 참 날이 좋아

내 모래알을 날리기

흩날려라 나의 마음도

생각과 내 목소리,가사도

누군가의 살에 닿도록

내 몸을 나누고 싶어


 Sicka J - 모래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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