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포항에서 느낀 마음 곱씹기, 1편 [여행]

2박 3일 꽉 채워 다녀 온 포항 여행
글 입력 2019.08.0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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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 다녀왔다. 뚜벅이(차가 없는 여행객)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여행할 수 있는 곳 중 안 가본 곳을 고르고, 또 그중에서도 바다가 있는 곳을 고르다 어쩌다 포항이 됐다. 이번 여행에서는 여행지 선정, 기차부터 숙소, 관광지까지 모든 계획을 내가 세우고 책임을 져야 했다. 약간의 심리적 압박감을 가지고 떠난 여행이었다.

역으로 가는 버스에서 뚱뚱한 배낭을 메고,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나는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방인이었다. 역으로 가니 나와 같은 복장을 한 사람들이 많아서 마음이 편해졌다.

수원에서 포항까지는 직행열차가 없어서 대전에서 내려서 갈아타야 했다. 갈아타는 건 언제나 무섭다. 내리는 역을 못 듣고 이상한 곳에 가버릴까 봐 무섭고 시간을 잘 못 안 거면 어쩌지, 혹시 다른 열차를 타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정신을 붙들고 있어야 했다. 대전에서 포항까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ktx를 탔다. 시간과 돈을 맞바꿀 때마다 시간이 금이라는 것을 항상 실감한다. Ktx는 조용하고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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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중교통을 탈 때 좋아하는 건 창문 자리이다. 가끔은 사람들이 너무 가깝다고 느껴진다.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멀어져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 온전히 내 안의 소리만 듣고 싶을 때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곤 한다.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이 가득한 하늘이 있었고 그 속에는 뭉게구름이 가득했다. 귀에 꼽아 놓은 이어폰에서는 담담한 목소리로 슬픈 말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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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갈 곳은 오도리 해수욕장. 숙소도 그 앞으로 잡았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엄마가 디스코 머리를 땋아줬다. 오랜만에 엄마의 손에 머리를 맡기고 있으니, 어렸을 때 생각이 났다. 머리를 잘 땋는 만큼 꾸미는 데 소질이 있던 엄마 덕에 나는 여자친구들과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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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곧바로 해수욕을 하러 갔다. 튜브를 빌려서 모래사장을 밟으니 비로소 내가 여행을 오긴 왔구나 했다. 튜브에 엉덩이를 끼고 누웠다. 해는 뜨겁고 바다는 차가워서 꼭 내가 아이스크림을 넣은 따뜻한 아인슈페너가 된 것 같았다. 따뜻하고 시원한 그 느낌이 무척이나 달콤했다.

어디를 봐도 파랬다. 바다도 파랗고 하늘도 파랗고 도시의 크고 작은 건물들에 가린 파란색들은 여기서 마음껏 빛을 뿜었다. 얼굴이 타든 말든 고개를 젖힐 대로 젖혀 햇빛을 받았다. 그렇게 하면 햇빛에 눈이 머는 것처럼 온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 필요가 없었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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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무척이나 차가워서 모래사장으로 나와서, 예쁜 조개껍질과 돌들을 줍고 다녔다. 조개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자연이 만든 모양은 인간이 만든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빛을 담고, 자연을 그리는 지도 몰랐다. 햇빛을 받아 제가 가진 색으로 반짝거리는 것들을 고심해서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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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쁜 것들을 줍는 동안 튜브가 떠내려갔다. 엄마가 라면을 샀다가 돌아와서는 자기 튜브가 없어진 걸 보고 황당해 했다. 나도 깜짝 놀라 헐! 하고 외치고 봤더니 안전 선 너머 저 멀리 노란색 튜브는 너무 멀어 점처럼 보였다. 튜브의 보증금은 만 원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죄인이 됐다. 조용히 라면을 먹어야 했다.

라면을 다 먹고 쉬려는 데, 보트를 모는 사람들이 보였다. 평소에 목소리를 크게 낼 일도 없을뿐더러 무던한 성격이라 웬만큼 손해 보는 일에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 튜브는 엄마 것이었다. 손을 높이 들고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튜브요!!!!! 저 희 거예요!!!!!

튜브를 구해주세요!!!!”



보트가 노란색 점을 향해 갔다가 나를 보고 돌아오는 것을 보며 웃음이 터졌다. 그제서야 창피했다. 너무 감사하고 따뜻했다. 많이 덜렁거리는데, 그 덕에 다정한 사람들을 많이 마주한다. 엄마가 되찾은 튜브를 타고 물속에서 도무지 나오려고 하지 않는 걸 보고 있자니 창피함 따위에 비할 필요 없이 무척 행복했다. 나는 물에 한 번 들어갔다 온 걸로 족해서 엄마가 물속에서 나올 때까지 모래사장에 앉아서 발만 담근 채로 노래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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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은 할 때는 좋지만 씻을 때는 곤혹이다. 온몸에 다 달라붙은 모래를 구석구석 씻겨 내려야 한다. 모래를 다 씻기고 젖은 머리를 말리고, 미리 찾아 놓은 카페로 가기 위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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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로 가는 길은 꽤나 험난했다. 카카오맵에서는 도보로 17분 정도 걸린다고 나와 있었지만, 17분간 언덕을 오르고 내리고 도로 대변을 걸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카페 또한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가는 길에 본 하늘이 마음을 채웠다.

19시 30분의 오도리 하늘은 내가 처음 본 빛깔을 가지고 있었다. 보라색이었다.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사진에도 그림에도 담길 수 없는 자연이 만드는 색을 볼 때 황홀하다고 느낀다. 내 곁에 황홀한 광경을 같이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나와 그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남겨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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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가는 길, 작은 동네 슈퍼에 들러 삼겹살과 쌈장, 같이 구워 먹을 소시지, 그리고 맥주 한 캔과 사이다를 샀다. 숙소에 돌아와서 엄마와 마주 보고 앉아 맥주 한 캔을 나누어 마시고, 엄마가 잘게 잘라 준 고기를 양껏 먹었다. 고기를 먹으면서 우리가 함께 걸어온 시간을 더듬어봤다.

분명 함께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모르는 엄마 혼자만의 시간들이 많았다. 그건 엄마가 내가 모르게 하려고 꽁꽁 숨겨 온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내가 모르는 시간들은 더 있을 터이다. 더 알고 싶기도 했고 모르고 싶기도 했다. 아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으니까.

그래도 고통을 공유하는 것은 애틋하다. 관계를 발전시키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서로의 상처를 덧나게 하지 않을 수 있다. 이모네 집에 놀러 갈 때마다 매번 똑같은 얘기를 하면서 매번 똑같이 서로 부둥켜안고 우는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엄마와 이모를 볼 때마다 이해가 안 됐었는데, 이제는 아무리 쏟아내도 남아있는 찌꺼기 같은 마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 걸까, 그걸 실감하게 되는 날이 올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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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누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느낌에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엄마였다. 하루를 온전히 엄마와 함께 한 게 얼마 만인지 실감이 났다. 창문 밖에는 바다가 빛을 받아 흰색의 빛깔로 넘실넘실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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