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사람은 누구나 이방인이다 - 로마 이야기

글 입력 2023.10.3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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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의 로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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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에 시린 바람이 걸리기 시작한다. 창밖의 풍경을 보며, 익숙한 거리를 걸으며 완연한 가을임을 느낀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 즈음이면 책이 생각난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란 말이 참 진부하게 느껴지면서도, 어쩐지 조금은 쓸쓸한 마음으로 지난날을 반추하게 되는 이런 계절에 책만큼 좋은 건 없다.

 

일상의 무거움을 덜 수 있는 글을 찾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길 바란다. 그러나 동시에 적당한 질문을 주고, 적당한 사색에 잠기게 하는 글을 기다린다. 그럴 때에는 짧은 호흡으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소설집이 좋다.

 

서점의 소설 코너를 서성인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 홀로 돋보기를 씌운 듯, 유독 크게 보이는 이름. 줌파 라히리의 신간 소설집이 찾아왔다.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이름, 줌파 라히리는 ‘단편소설의 대가’로 불리니 이만한 책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줌파 라히리는 첫 소설집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어 여러 소설집과 산문집으로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가는 4년 만에 신작 소설집 <로마 이야기>로 돌아왔다. 이탈리아 로마를 배경으로 한 아홉 편의 단편소설을 담았다.

 

독특한 점은 인도계 미국인인 그가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고, 작품의 영어 번역에도 직접 참여했다는 점이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바라본 로마는 어떤 세계일까?

 

 

 

이방인이라는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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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unsplash

 

 

<로마 이야기>는 로마라는 하나의 도시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아홉 편의 글이 담겼다. 배경은 같지만 등장하는 인물들, 그들의 관계, 그 사이 감정까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 속 하나의 감각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바로 ‘이방인이라는 감각’이다.

 

줌파 라히리는 인도계 미국인으로 태어나 ‘이방인’이라는 존재로 살아왔다.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경계와 폭력, 불편, 괴리는 작가가 창작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된다. 나아가 글을 쓰는 일을 넘어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감각하는 데 있어서도 핵심적인 부분이 된다.

 

이러한 이방인이라는 감각은 ‘로마’라는 도시에서 더욱 강화된다. 로마는 머나먼 고대 문명에서 시작된 긴 역사를 지닌다. 도시 곳곳에서 오래된 유적들을 만날 수 있는 지역, 깊은 역사를 지닌 공간에 새롭게 진입하는 타지인을 상상해 보게 된다. 그들만의 문화와 역사가 깊은 로마에 영원히 섞일 수 없다는 낯선 감각과 외로움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단편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이러한 이방인의 감정을 느낀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라는 외로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완전히 어울릴 수 없다는 감각,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차별들. 고향을 떠나 타 지역에서 지내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감정이다. 나와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 그런데 그들은 하나의 공통된 무언가를, 나는 갖고 있지 않은 그것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방인이라는 감각은 단지 지리적인 이유, 즉 공간의 차이로만 발생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익숙한 생활 반경에서도 이방인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미 돈독한 관계가 형성된 집단에 한발 늦게 들어섰을 때, 혹은 아주 가까운 이들 사이에서 문득 낯선 기운을 느끼기도 한다.

 

줌파 라히리는 이러한 인간의 특성과 정체성에 대해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정체성을 지닌다. 그런데 이 정체성이란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이며, 모든 인간이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누비는 이방인이라고 말한다.

 

 

 

눈을 감고 그리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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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unsplash

 

 

줌파 라히리의 글에서 또 하나 마음에 와닿은 것은 묘사이다. 무엇이든 영상화되고, 완성되어 그저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도록,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는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시대를 거슬러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모든 것을 그려내고 싶을 때가 있다.

 

줌파 라히리는 이러한 마음을 충족시켜 준다. 짧은 소설마다 아름다운 로마의 풍경을 그리게 한다. 매우 정교하고 복잡하게 풍경을 설명하진 않는다. 길지 않은 문장, 쉬운 표현으로 어렵지 않게 로마라는 도시, 그리고 그 안의 인물들을 상상하게 한다.

 

작가의 문장이 끝나면 그보다 더 먼 풍경, 그 너머는 어떠할지 자유롭게 그려보게 한다. 이방인이라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면서도 읽는 내내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이방인의 삶일지라도, 줌파 라히리의 책과 함께 조금 더 부드럽고 포근한 마음으로 나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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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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