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림 그리는 마음 -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 [도서]

글 입력 2019.07.25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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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나를 찾아간다’는 표현은, 매일 그림을 그리는 내게는 아주 솔직히, 조금 진부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나를 찾고 있는 거야… 그만 찾고 싶다!’ 진심 반, 절로 우스운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본 이유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관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진부해도 원론이 필요할 것 같았다. 너무 기초적인 내용이진 않을까 짐작하다가도,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한다는 직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상당히 고무적인 감정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림을 대하는 태도는 이제 새로울 게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그림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자만과는 멀다. 오히려 불안과 낙담에 가깝다. 좋아서 시작한 일은 흥미로만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는 어떤 목소리를 인정하고야 마는.


그러나 이 책이, 그 불안을 잠재웠다. 지겹게 그릴 그림이지만 아직도, 앞으로도 내게 그림은 새로울 수 있다고 차근차근 속삭였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내가' 그림에 어떻게 몰입해야 하는지. 아래 리뷰는 책에서 배운 방법을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하며 썼다.


*


책의 구성은 김 선생님-미스 홍의 대화와 독자가 직접 그림을 그리며 참여하는 지면이 반복되는 식이다. 특히 미스 홍의 뭘 모르는 것 같은 질문은, 김 선생님의 대답을 이끄는 장치로 기능하기 때문에 미스 홍의 때론 답답해하는 반응까지 충실히 따라가야 한다.


여기서 불특정 독자를 대표하는 미스 홍은 당연히 그림 관련 종사자가 아니고, 그림 그리는 일을 두려워한다. 홍과 닮은 독자는 김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 그림을 그리겠지만, 나의 경우는 달랐다. 선을 그어보거나 파스텔 색을 칠해보는 구간은 가볍게 해 보기도 했지만 대부분 소재는 익숙해서인지 최근 그렸던 그림이 떠오르곤 했다. 그 그림을 첨부했다.




방법 하나: 알아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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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은 홍에게, 대상을 똑같이 그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사실을 반복해 말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사실 이 그림을 그리는 내내 사진과 아주 똑같이 그려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런 생각으로 무장해도 결코, 똑같이 그려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살아온 방식은 나의 목표를 온 몸으로 거부할 것이다.



먼저 선을 처음 그을 때 내가 긋기 시작하는 것을 알아차려야 해.(19)


자신의 감정을 알아채고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예술이 필요한 이유이기 때문이야.(56)


내가 시작점을 알고 연필에 마음을 담아서 선을 그으면 돼.(88)


    

안다는 것, 알아차림 자체는 아주 쉽지 않다. 그림을 그리며 더욱 배우게 된 사실이다. 내가 무엇을 그리는지, 그리려는지 매 순간 깨어있지 않으면, 망한다. 어쩌면 스스로 속이는 인간에게 익숙한 습관인지도 모른다. 어쩌다 속아 넘어간 것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결과는 같으니.


아무튼,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손은 어디서 시작하는지, 무엇을 시작하려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이 아닌가 나만의 결론을 내려 보았다. 이 풀 그림들은, 시작과 끝을 아는 것만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어차피 선은 어긋난다. 심지어 선 하나 하나를 그을 때 숨을 참기까지 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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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건, 풀을 그리고 싶다는 감정을 알아채는 것, 그릴 선의 시작과 끝을 아는 것, 사진과 똑같지 않고 그나마 똑같아지려 노력한 연필 선 위를 과감히 벗어나는 펜 선을 그으면서도, 마음을 담으려는 노력.


 

 

방법 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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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4가역에 위치한 국립중앙의료원 앞을 지나며 어떤 꽃을 만났다. 이 날은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이 더운 날이었는데 마치 모형처럼 생긴 꽃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흩날리며 흐물거리는 식물은 많이 보았는데, 이 꽃은 유독 그런 자연물과 비교해 단단한 느낌이 들어 새로웠다.



내가 만난 나뭇잎을 그리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거야.(84)


홍이 그리려는 것은 나의 그림을 그리는 거지, 밖의 것과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야.(86)


내가 만난 대상이 존재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면 그 대상과 더 잘 만날 수 있어.(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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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꽃. 요즘 나의 그림은 형태에 집중돼있다. 그러니 이 꽃의 색깔과 명암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꽃을 묘사한 흔적을 지워야 했다. 나뭇잎의 잎맥도 필요 없었다. 나의 그림에는, 없어도 되는 요소니까. 그러나 이 꽃이 존재하는 방식은 그대로 지키려고 노력했다. 꽃이 선 각도, 줄기의 적당한 구간에 놓인 잎과, 교차하는 잎의 모양, 매달린 정도.

 


 

방법 셋: 공명,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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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색을 선택하는 것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기억으로 선택하는 거잖아. 그러니 지금 현재 내 몸의 떨림으로 빨간색을 선택해 보라는 거지.(48)


나는 언제나 대상을 봤을 때의 나의 떨림을 그대로 드러내라고 했는데.(164)

 


이 그림은 분명 내가 마트에 선 특정한 그 날의 느낌을 생생히 담았다고 자신한다.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가는 대형 마트, 몇 년이고 다닌 그 마트에서 이전까지는 아무 느낌이 없다가 딱 그날만 아주 인공적인 감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마트 안의 어떤 인공적인 특성과 공명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 공명은 꽤 오랜 시간을 들여 그림으로 남을 만큼 강렬했던 것이다.



그럴 때는 나의 몸으로 의식을 가지고 와야 해. 잠시 내 몸과 공간의 관계를 환기해봐. 그리고 다시 처음 시작했던 곳부터 하나씩 점검하듯이 그려 나가봐.(172)



떨림과 공명은 어디서든지 나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나의 그림’


 


홍이 그리려는 것은 나의 그림을 그리는 거지, 밖의 것과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야.


나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요? (86)



이 부분은 좀 오래, 읽었다. 버릇처럼 누군가에게 "앞으로 내 그림 그리고 싶어."라는 말을 무심코 했던 적이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내가 돌연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어딘가 마음이 아렸다.


그 때의 나는 절박했으나, 내가 절박하다는 사실을 몰랐고 단지 '내 그림'이란 단어만이 절박함을 온전히 안고 있던 것 같단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그림은 지금 어디까지 왔나, '나의 그림'은 어설픈 욕심만으로는 가질 수 없는 게 아닌데. 나는 아직도 원하나? 찰나에 든 뭉근한 감정을 비로소 지금 적어보고 있다.



나를 대상보다 더 존중하면 내가 대상을 읽을 수 있는 만큼 읽게 되고, 그것이 바로 나의 그림이라는 거지.(97)


나의 변화하는 시각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진짜 내가 보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거지.(116)


끝없이 모르는 세계로 나가길 바라.(137)



'나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대상과의 관계에서 나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혼란스럽다가 찾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여겨야(176)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지쳐 나가떨어질 것이다. 이 방법론 안에서, 끝없이 모르는 세계로 나가는 바람은 자연스럽게 성취되지 않을까.


*


이 책은 그림의 기본을 알려준다. 그림이란 수단으로 나를 찾고 싶은 사람에게도, 지겹도록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에게도. 단, ‘기본’에 담긴 의미가 여느 기본서들과 많이 다른 느낌이다. 여기서 기본은, 기술적인 측면이 아닌 ‘나의 그림’을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니 꽤 묵직한, 필수의 기본일 것이다.






선 긋기에서 현대 미술까지 그림 도전기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


저 자 : 김 은 진
규 격 : 신국판 변형(190×220)
쪽 수 : 210쪽
출간일 : 2019년 6월 27일
정 가 : 16,000원
ISBN : 979-11-85973-56-2(03180)
출판사 : 도서출판 따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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