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사람이 되는가?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문학과 지성사 2015

글 입력 2019.06.1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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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사람이 되는가?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문학과 지성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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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사람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는 사실에 반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라는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가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문학과 지성사 2015)는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 책이다. 작가는 이 의문을 구체화하기 위해 책의 첫 부분에서 샤미소의 소설 한 편을 언급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그림자를 잃어버렸기에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멸시받는다. 고통 받던 그는 결국 한 발자국에 70리를 걷는 장화를 획득하게 되고, 그 이후 세상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연구자의 삶을 살게 되며 평온을 얻는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그림자가 영혼의 비유이고, 그 상실은 소비사회 앞에서 현대인의 소외라는 기존의 해석에 반대한다. 그 근거로 악마는 주인공과 그림자를 거래한 이후, 또 한 번 영혼을 거래하자고 제안한다. 그림자와 영혼이 같다면, 소설 내의 이런 전개는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영혼은 비가시적이고 관념적이지만, 그림자는 실제로 볼 수 있고 심지어 육체적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아닌 실제로 만질 수 있고, 현실에 현상하는 실체이다. 그리고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지만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기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은 사회적으로 특정한 의미의 결여를 상징한다. 그래서 작가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그림자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한 어떠한 조건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이 사회적 멸시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던 조건이 자신이 사는 장소 혹은 사회를 이탈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는 점을 들어, 사람됨이라는 것이 장소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음을 주장한다. 작가는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육체와 영혼의 논의에서 배제되었던 사람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임을 선포하며, 논의를 진행시켜 나간다.

먼저 작가는 인간과 사람의 차이에 집중하며 어떤 종류의 존재가 인간이지만 사람이 아닌가에 대해 질문한다. 작가는 사회에서 인간이지만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 실례로 태아, 군인, 사형수, 노예를 들고 있다. 가장 먼저, 태아는 인간의 범주에 들어 있음은 분명하나 법적으로나 관습적으로 사람, 즉 우리 사회의 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태아의 상태 뿐만 아니라 일종의 통과의례를 거치지 못한 영유아에게 마저도 사람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었다. 세례나 돌 잔치와 같은 의례는 그들에게 사회 속에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의식으로, 그들이 그제서야 사람이 되었음을 인정하는 의식이다. 현대사회에서의 법 또한 태아가 모체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인격을 지닌 법적 주체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태아는 인간이지만 사람이 아니다. 이어서 작가는 현대적 총력전의 상황에서의 군인들이 같은 처지에 처해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같은 군인을 전쟁터에서 죽이는 것은 국제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다. 인권 담론은 모든 인간에게 인권이 있음을 엄숙히 선언하지만 교전상황에서만은 그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또한, 전쟁은 국가와 국가와의 충돌로 개인들의 위신과, 명예에 아무런 함의도 가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개인은 전쟁 중에 인간도 아니고, 시민도 아니며, 단지 병사로 전락한다. 노예의 경우에 그는 얼굴도, 이름도, 권리도, 의무도 가지지 못한다. 다른 말로 노예는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작가를 정확히 인용하자면 “그는 타인 앞에 현상할 수 없고 타인은 그의 앞에 현상하지 않는다.” 로마법에서 노예는 자기의 재산을 가질 수 도 없고, 결혼할 수 없으며, 소송을 걸 수도, 심지어 피고의 자격을 지닐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노예는 사회적으로 죽은 인간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사형수의 사례를 살펴보며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사형이 가능케 되는 것은 사형수를 더 이상 사회의 성원,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 사회에서의 사형은 그래서 성원권 박탈 의례와 항상 궤를 같이 했었다. 사형수도 그렇기에 우리 사회의 바깥에 존재한다.

이렇게 사람의 개념에 대해 살펴본 이후에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사람과 장소의 개념이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한다. 우리의 사회가 물질적, 객관적 실체가 아닌 타인들과의 상호작용으로 생성되는 일종의 지평이라고 글쓴이는 주장하며 사람으로서 인정된다는 것은 타인이 내 존재를 알아보고, 내가 타인의 존재를 알아보고 있다고 신호를 보내는 상호현상의 과정이 의례로써 확인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사람됨의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에 대해서 어떤 식의 존중을 보내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 제공하는 자리, 즉 장소라고 언급한다. 작가는 이 명제를 확인하기 위해 외국인의 사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간과하고 있는 인류학적 고찰, 오염과 ‘제 자리에 있지 않음’의 관계들에 대해서 살펴본다.

이어서 3장에서는 사람됨의 과정에 있어서 인정과 장소뿐만 아닌 사회 속의 사람들 간의 상호의례의 작동방식에 대해서 고찰한다. 실제로 사람됨의 수행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확인하며 동시에 기존의 논의들에서 수행의 측면이 어떻게 관과되어 왔는지 고찰한다. 이어지는 4-5에서는 사람됨의 수행이 이루어지는 상호의례의 구체적 질서에 관한 명증이 이루어진다. 4장에서는 모욕에 대해서 살펴보며 어떤 상호의례의 작용을 통해 인격이 축소되고 심지어 어떻게 말소되는지 확인하다. 그 이후에 5장에서는 우정의 조건에 대해 고찰하며 자연스럽게 우리의 사람됨이 가능하게 되는 조건에 대한 논의로 넘어간다. 작가는 그 조건을 ‘절대적 환대’로 규정짓고 그 이후의 장에서는 절대적 환대 없이는 왜 사회의 성립이 불가능한지에 대해 논증한다.

글쓴이는 환대를 자리를 주는 것, 혹은 사회 안에서 한 인간의 자리를 인정해 주는 행위라고 말한다. 그래서 환대란 타인의 존재에 대한 인정이며, 사회 속에서 이 표현은 몸짓과 말, 즉 의례를 통해서 표현된다. 글쓴이는 환대가 현대의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 원리인 공적공간에서의 의례적 평등,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최종편집권의 자기귀속, 출생과 사람됨의 분리 불가능성의 기본적 전제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종류의 권리들, 혹은 명제들은 신원을 묻지 않는 절대적 환대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글쓴이는 이어서 이 환대에 대해 보답을 요구하지 않아야만 사회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사회로 편입된다는 사실 자체가 환대의 결과이기에 보상요건을 구성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람됨, 혹은 사회적 성원권의 인정은 개인들에게 노예 되기를 강요하고 말 것이라고 글쓴이는 주장한다.

이 책은 스스로 밝힌 대로 육체와 영혼 사이에서 간과되어 왔던 사람의 문제를 전면으로 끌어낸다. 우리가 평소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스스로의 사람됨, 즉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성원이라는 개념에 대해 질문하고 그 기원과 가능성에 대해 고찰한다. 또한 이 책은 사회 곳곳에서 사람임을 인정받지 못하는 인간들이 어떤 의례들로 낙인찍히고 사회 바깥으로 추방 되는지, 제한적으로 사람임을 인정받고 있는지 명확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은 단순히 문화비평이나, 사회 현상의 분석에서 그치지 않고 인류의 가장 큰 발명품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의 가능성과 기원 그리고 그 본성에 대해서 끝까지 질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엄밀한 논증과 비판적 사고를 통하여 이를 관통하는 핵심적 개념들을 찾아내고 그 개념들을 축으로 삼아 이 궁극적 질문에 어느 정도 성공적인 답을 해낸다.

그렇지만 『사람, 장소, 환대』의 가장 큰 장점은 다른 곳에 있다. 학술서와 대중서 라는 정체성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이 책을 탁월하게 만든다. 논리의 전개 부분에서 이 책은 학술 서적 수준의 치밀함을 추구한다. 의례에 대한 고프먼과 뒤르켐의 선행연구를 살펴보고 그 한계를 지적하며 자신의 논지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은 마치 내가 저자의 논문을 읽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그리고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사회학 서적과 학자들은 당장이라도 책을 접고 싶게 만든다. 그런데,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이 지점이 바로 이 책이 탁월해지는 부분이다. 독자가 몰아치는 내용들에 질려 도망가려고 마음을 먹을 때 쯤 작가는 독자가 흥미롭게 느낄 만한 예시들을 하나씩 흘려놓는다. 숲 속에서 빵가루를 쫓아가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독자는 자기도 모르게 작가가 이끄는 대로 논의 속으로 한걸음씩 내딛는다. 가정주부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차별이나 한국 사회의 교육열, 작가 자신이 만났던 어느 한 걸인의 이야기 등 평소에 깊게 생각해 보지 못한 사례들을 인류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묘기를 보고 있다 보면 이미 책의 절반을 넘어오게 된다. 또 독자가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두는 요소는 주석이다. 보통 주석은 참고문헌을 표시하거나 보충설명을 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그러나 이 작가는 독자의 사고를 확장시키기 위해 주석을 사용한다. 인정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본문에서 하면서 주석에서 제주도의 택시기사와 승객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기도 하며 모욕에 관한 논의를 하면서 주석에는 9시 뉴스의 앵커구도에 관한 작가의 사변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런데 이 쓸모없어 보이지만 통찰력 있는 사변들은 정확하게 정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저 이런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실마리를 던지면서 문장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독자는 주석을 읽고 자신이 해보지 않았던 생각이 가능하게 된다.

단 한 권의 책에서 이 정도의 깊고 방대한 주장을 이렇게나 치밀하고 재미있게 풀어낸 작가의 능력을 탁월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학술논문에도 대중적인 에세이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글쓰기를 계속하겠다는 저자의 다음 저서가 기대 될 뿐이다.





[김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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