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기억은 어떤 계절을 간직하고 있나요? – Miiro(미로) ‘계절범죄 (Feat. 새빛)’ [음악]

삶의 모든 순간을 예찬하는, Miiro(미로)의 싱글 [계절범죄]
글 입력 2024.01.2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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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계절을 파시겠습니까?”

 


 


Miiro(미로) 싱글 [계절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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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프로듀서이자 아티스트인 Miiro(미로)는 지난 2023년 4월, 싱글 [계절범죄]를 발매했다. 평소 서브컬처 음악을 주 장르로 하는 그는 K-POP과 J-POP을 융화한 듯한 서정적인 감성을 만들어 왔으며 이번 곡에서 역시 독보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아련하고 뭉클한 감정선을 극대화했다.

 

인생의 다양한 ‘기억’들이 ‘계절’로 비유되어 표현되는 곡 ‘계절범죄 (Feat. 새빛)’는 독특하게도 동명의 제목을 지닌 단편 소설을 통해 세계관과 곡의 배경적 상황을 함축적으로 설명한다. 소설은 돈에 눈이 멀어 자신의 모든 계절을 팔아버린 한 남성 화자가 점차 텅 빈 존재가 되어가며 뒤늦게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 소설의 줄거리를 토대로 곡 '계절범죄 (Feat. 새빛)'가 주는 메시지를 살펴보자.    

 

 

 


단편 소설 [계절범죄] written by 가은


 

 

축제로 무르익은 일곱 살 여름 방학이었다.

...

"당신의 계절을 파시겠습니까?"

계절을 팔라니. 난생 들어 본 적 없는 낯선 문장이었다.

"우리는 기억을 계절이라고 명명했거든요."

 

 

과거 회상의 형식으로 전개되는 소설 [계절범죄]는, 일곱 살의 화자가 여름 방학에 열린 축제에서 한 괴인과 마주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당시 부모님의 손을 놓친 채 정처 없이 길을 헤매던 소년은 메마르고 기괴한 생김새를 한 괴인을 만나며 처음으로 계절을 판매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괴인은 목돈을 내보이며 다정하게 나를 타일렀다. 내 봄이 사고 싶다고. 봄의 일부가 사라지는 것쯤 낌새도 못 느낄 거라고. ... 이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꺼운 지폐가 손에 들렸고, 찰나에 봄을 빼앗겼다. ... 그렇게 신기루 같던 괴인과의 거래는 나만의 기억인 채로 아득히 묻혀 있었다.

 

 

그렇게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앞선 어린 아이는, 처음 경험해보는 미지의 존재와 순간에 이끌려 '봄'으로 칭해지는 기억을 판매한다. 이후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여겨보았던 원목 오르골을 구매하는데, 그를 통해 화자는 자신의 경험이 한낱 환상이 아닌 실재였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열일곱, 또 다시 여름.

창 너머로 새어든 무더위에 땀 맺힌 하복 셔츠가 부끄러워지던 사람이 있었다.

...

단지 품에 안은 세상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것 역시 단숨이었다. ... 의지없이 겪어야 했던 이별은 어리고 무른 나를 서서히 좀먹었다. ... 할 수 있는 게 속수무책으로 가라앉는 일뿐이라, 그 애에 관한 건 뭐든간에 지우고 싶었다. ... 번뜻 계절을 팔았던 까마득한 여름이 떠올랐다. ... 분명하게 아름다웠던 내 애정의 기억이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아이는 어느덧 10년이 지나 풋풋한 첫사랑을 시작한 소년으로 성장했다. 그는 자신의 짝이던 아이와 순수한 애정을 주고받으며 손을 맞잡는 그 사소한 순간마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고 표현할 만큼 애틋함을 보였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도 잠시, 그의 짝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한순간에 먼 지역으로 전학을 가게 되고, 이에 소년은 태어나 처음으로 이별에 대한 아픔과 가슴 시린 첫사랑의 열병을 앓으며 괴로워한다. 결국 그는 현재의 고통을 떨쳐내기 위해 과거의 추억들을 상실하길 자처하고, 10년전 여름 축제의 뒤편에서 만났던 괴인과의 거래를 떠올린다. 이때,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그 스스로가 자신의 기억에 값을 매기기 시작했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당신의 계절을 파시겠습니까?”

그 애의 웃는 얼굴이 잔상처럼 스친 것도 같아서, 나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봄이라고, 가장 그리운 기억을 여름이라고 불러요. 가장 쓸쓸한 기억은 가을, 가장 아픈 기억은 겨울. 계절이 기억의 모양새를 닮아 있죠. 인간의 아주 추상적인 감상에서 따온 거예요.”

... 이렇게 단숨에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다면 왜 다들 고통 속에 살아갈까.

 

 

그렇게 그는 다시 한번 괴인을 찾아가고, 기억과 계절의 상관관계를 들으며 아마도 ‘여름’으로 칭해질 첫사랑의 기억을 모조리 팔아버린다. 그리고 이는, 금전적 보상과 순간의 해방감에 취한 그가 자신을 구성하는 기억의 소중함과 가치를 간과한 채,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걸어가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스물일곱, 꽁꽁 숨겨두었던 보물을 꺼내 오는 기분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겨울은 아픈 기억이라면서. 그런 걸 가지고 살 필요가 있나? 생각이 닿자마자 온갖 실패의 기억을 전부 괴인에게 내주었다.

 

별볼일 없던 서른일곱. ... 가진 돈을 모두 잃었을 때, 확정된 복권 같은 여름 축제의 뒷골목으로 향했다. 남들은 없는 인생의 리셋 버튼이 있는 기분이었다.

... 왜 내 계절을 사러 오지 않을까.

 

내 절망이 깊어지는 동안 시간들은 무의미하게 쌓였다.

 

 

그렇게 소년에서 청년이 된 화자는 수년간의 방문을 통해 괴인이 10년을 주기로 여름 축제의 뒷골목에만 나타난다는 사실을 파악한다. 여태 아무런 노력 없이 큰 돈을 쥐던 그는 결국 괴인의 존재를 담보 삼아 사업과 도박에까지 눈을 돌리고, 갖은 실패를 겪으며 이제는 하루하루 버티기 급급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서른일곱의 여름, 재기할 생각으로 찾아간 골목에 처음으로 괴인은 그를 찾아오지 않았고 이에 그는 크게 절망한다.

 

 

마흔일곱, 쇠하고 상한 나는 사람의 생기를 잃었다.

... 내게 돌아갈 곳이란 오로지 내 삶을 바꿔 놓고 망쳐 놓은 숲이었다. ... 고민없이 모든 계절을 팔겠다는 내게, 괴인은 괴이할 정도로 입을 찢어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이 사라질 때마다 불어나는 거액의 돈을 보며 나 역시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어떤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지, 모든 기억을 팔았으니까. 모든 기억을 팔았던가. 누가? ... 왜 그제서야 그런 생각이 났을까. 그럼에도 잊으면 안 되는 것이 분명히 있었다는 걸. ... 괴하고 커다란 발로 걸음을 내디뎌 연못에 비친 얼굴을 확인했다. 이제는 너무도 익숙한 괴인의 얼굴이 나인 채로 있다.

 

상실한 얼굴을 한 괴인이 행선지 잃은 이처럼 사방을 누볐다. ... 애달픈 울음소리가 날 밝은 아랫동네 너머까지 오래, 아주 오래도록 구슬픈 곡조처럼 울렸다.

 

 

10년이 더 흘러 이미 모든 걸 잃은 마흔 일곱의 화자는 마지막으로 괴인을 마주하며 성급하게 자신의 모든 기억을 팔아 넘기는 실책을 범한다. 이후 쏟아지는 돈다발을 끌어안던 그는 불현듯 뒤엉키는 기억들에 아연함을 느낀다. 조각난 기억의 파편들은 잊으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수면 위로 끌어올려지고, 이내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형성된 모든 기억과 추억들은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음을 깨닫게끔 만든다. 하지만 계절을 판다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은 기어이 갈가리 찢긴 기억의 단면만을 남겨 화자를 그 무엇도 아닌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이에 결국 화자는 또 다른 괴인이 되어 숲을 떠돈다. 이렇듯 소설은 괴인이 된 화자가 과거의 자신처럼 길을 잃고 숲 속을 헤매던 한 여자아이를 발견하며 계절을 팔 것을 질문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소설의 결말은 내게 한국 민속 신앙 속 ‘창귀’의 존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창귀는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혼’ 즉, ‘호식을 당해 죽은 귀신’을 뜻한다. 이때, 창귀는 죽은 시점부터 범의 노예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자신을 대신할 또 다른 사람을 범에게 일종의 재물처럼 바쳐야만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렇듯 단편 소설 [계절범죄] 속 괴인의 존재는 창귀와의 유사점이 정말 많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려면 삶의 모든 기억이 얽혀 형성된 가치관과 정체성을 지켜내야 하는데, 그 근간인 계절이 버려진다면 이는 곧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산 자를 죽여 대체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창귀에게 당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괴인들은 계속해서, 비어 버린 기억의 공백을 채우고자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아 나선다. 그렇다면 그 대상이 굳이 어린 아이여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아이들의 존재가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결정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성장은 아이에게 다채로운 경험과 깨달음을 선사할 잠재성이고, 어른이 되어 수많은 갈래의 길로 나아갈 원동력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동시에,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닌 존재일수록 유혹이나 설득의 과정이 쉬워질 테니, 괴인에게 있어서 아이들이 가장 좋은 먹잇감 이지 않았을까?

 

이후 소설의 끝에서 글 속의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더는 쓸모 없다고 생각해서 계절을 팔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낡고 불결한 과거의 자신을 버리려던 의도는 점차 퇴색되어 갔고, 모든 계절을 넘겨준 그에게 남은 거라고는 오직 뻥 뚫리고 뒤틀린 가슴을 안고 뼈저린 후회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뿐이었다.

 

 

 


Miiro (미로) ‘계절범죄 (Feat. 새빛)’ (2023.04.05.)


 

이처럼 소설은 욕심과 망각, 그리고 후회의 굴레를 무한히 반복하는 인간상을 보여주며 암울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맺었다. 그렇다면, 이를 배경으로 한 곡 ‘계절범죄 (Feat. 새빛)’와 뮤직비디오는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꾸미기][포맷변환][크기변환]2. 계절범죄 MV 썸네일.jpg

 

 

음악에 담긴 주제를 살피기에 앞서 보컬인 새빛의 역할부터 살펴보자면, 개인적인 견해로 크게 두 인물에 맞춰 각각 해석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첫 번째는, 괴인이 되어버린 남성 화자의 첫사랑이었던 소녀다. 그렇다면, 아마도 곡 ‘계절범죄 (Feat. 새빛)’는 남자의 기억 속 앳된 모습으로 자리잡은 소녀가 남은 생에서는 부디 자신의 사랑이 다시금 계절을 되찾을 수 있길 바라는, 안타까움과 그리움의 마음을 표현한 게 아니었을까?

 

또한, 소설의 끝에서 괴인이 된 남자가 계절을 팔 것이냐 물어보던 여자 아이의 시점으로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이 끝난 이후의 이야기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기에, 만약 이 가정을 토대로 뮤직비디오를 살펴본다면 아마도 남자는 여자아이에게서 계절을 빼앗길 멈췄던 게 아닐까 싶다. 실상 계절을 사고파는 행위는 강매나 사기,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 이는 거래의 주체가 순전히 자신의 욕구와 의견에 곧이곧대로 따르면서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자는 아이에게 후회로 점철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이제 순환의 굴레를 끊어 또 다른 피해를 만들지 않으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 곡은, 아이에서 소녀로 성장한 새빛이 괴인의 이야기를 토대로 얻은 깨달음과 위로를 노래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흐렸던 날들만 바람에 날아가거라

베어 물은 듯 추억만 고이 남은 채

지샌 하늘 위 피어진 구름처럼 사라지는

마음은 후회도 잊어버린 채

내 생에 피어라 가장 아픈 겨울아

지난날처럼 길고 멀었던

그리운 계절을 불러

 

 

결론적으로, 해석의 종류에 관계없이 이 곡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매우 명백하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모든 기억은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픔과 슬픔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부디 그 잔상만을 남긴 채로 사라져 주길 간절히 소망해보는 것 말이다.

 

 

괴로운 날들만 바람에 날아가거라

베어 물은 듯 추억만 고이 남은 채

지샌 새벽 끝 옅어진 달빛처럼 흐려지는

기억은 슬픔도 잊어버린 채

내 생에 지어라 가장 짙은 여름아

지난날처럼 길고 멀었던

그리운 계절을 불러

 

 

그렇기에 프로듀서 Miiro(미로)와 보컬 새빛은 어두운 소설과는 달리, 포근함과 아늑함에 눈물이 지어질 것 같은 따뜻한 바람을 전한다. “때로는 쓸쓸하고 아플지도 모르지만, 아름답고도 그리울 다채로운 기억들이 모든 이들의 마음에 공존할 수 있기를” 하고 말이다.

 

 

 

마치며: 망각은 신이 내린 선물이라지만, 기억은 인간이 지닌 의지의 산물이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이렇게 말한다. 서구 철학은 본질인 존재(being)는 간과한 채 오직 겉으로 드러나는 존재자(beings)만을 탐구하며 ‘존재 망각의 역사’를 거쳐왔다고 말이다. 이러한 논리는 분명 ‘계절범죄 (Feat. 새빛)’의 주제에도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물질만능주의에 치중될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구성하는 정체성의 근본인 기억의 가치를 되새기고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바로 그러하다.

 

물론 모든 인간은 생(生)이 익숙해진 시점에서부터 단지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재난과 재해, 혹은 그보다 상대적으로 덜 강렬하더라도 어찌됐건 위험으로 여겨질 법한 순간에 닥쳐서야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끝없는 망각 속에서 끝없이 기억해야 한다. 과거와 현재를 지운 자에게 결코 미래는 허락되지 않으며, 반대로 과거와 현재의 아픔에 사로잡혀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에게도 미래는 찾아올 수 없다. 그러니 잊거나 매몰되기보다 다채로운 감정과 기억 속에서 유영할 때, 비로소 희망과 가능성으로 스스로를 가득 채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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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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