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에서 벗어나기 -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을 읽고

글 입력 2019.06.1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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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에서 벗어나기

-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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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재앙이 되어버린 일상



요즈음 들어 인터넷 공간과 현실 양쪽에서 ‘헬조선’이라는 용어를 자주 듣게 된다. 영어로 지옥을 뜻하는 ‘헬(hell)’과 대한민국을 의미하는 ‘조선’이라는 두 단어를 결합하여 만든 이 단어는, 오늘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지옥과도 같은 상황임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이 단어의 출현이, 혹은 이런 유의 부정적인 단어의 유통이 늘어났다는 것이 말해주는 바는 무엇일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나에게는 삶의 터전이 즐거움과 자유로움의 공간이 되지 못하는 현실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즉,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장소가 안락함과 즐거움의 공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싸움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재앙의 장소로 변해버렸다는 부정적인 인식과 연관되어 있다는 말이다.



P.61


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 → 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 → 내 삶에 대한 감사 → 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1. 재앙, 정글, 서울



일상이 재앙이라는 우리 시대의 부정적인 태도라는 점에서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은 매우 주목할 만한 소설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작품이 여행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밤의 여행자들』은 ‘정글’같은 이곳, 서울을 벗어나 존재하지 않지만 실제로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은 ‘무이’라는 섬으로의 여행을 다룬다. 여행은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지니겠지만, 힘겨운 삶과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재충전을 할 수 있는 기회라는 매우 일반적인 가정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이런 여행소설의 근저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불행과 재앙의 현장이라는 현실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재앙의 현장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곳이라면, 『밤의 여행자들』에 등장하는 회사야말로 바로 그런 장소이다. 소설의 주인공 ‘고요나’는 회사로부터 소위 “옐로카드”라 불리는 암묵적인 경고를 받는다. ‘퇴물’들만 골라 성희롱을 일삼는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받거나 예전에는 하지 않았을 잡무들을 요구받는다. 회사는 오직 쓸모로만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기에, 쓸모가 없다면 그 존재는 제거 당해 마땅하다. ‘요나’는 살아남기 위해 그녀가 쓸모 있다는 사실을 회사에 인식시켜야만 한다. 그렇기에 그녀의 하루하루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 쳐야하는 ‘재앙’의 연속이다. 베트남 출장은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그녀의 마지막 기회였다.



P.11


일상에서 위험요소를 배제하듯, 감자의 싹을 도려내듯, 살 속의 탄환을 빼내듯, 사람들은 재난을 덜어내고 멀리하고 싶어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배재된 위험요소를 굳이 찾아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2. 탈출, 그러나 다시금 재앙으로


명목상으로는 출장이지만, 베트남 여행이 일상(재앙)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줄 것으로 고요나는 기대했다.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며 생존을 도모해야하는 도시에서 잠시 벗어나 편안한 휴식을 상상했다. 하지만, 일상의 무게와 억압으로부터 탈출이 낭만적으로 꿈꾸는 그런 여행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낭만적 여정의 종착지 ‘무이’는 서울과 다름없는 곳, 쓸모의 논리로 운행되는 또 다른 인간사회였던 것이다. 여행 프로그램으로부터 퇴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재앙을 인위적으로 기획하고, 그런 조직적 음모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쓸모를 부여받거나 쓸모유무에 따라 제거된다.


여행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유토피아는 없었다. 인간이 만든 ‘정글’ 서울에서 벗어나 진짜 ‘정글’에 도달하지만, 그곳 역시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또 다른 ‘정글’이다. 여행이 일탈의 꿈이라면, 이제 그 꿈은 현실에 대한 도전이 되지 못한다. 세상 어느 장소로 떠나더라도 자본주의적 상품논리에 포위된, 그래서 매우 익숙한 일상(재앙) 속으로의 탈출일 뿐이다.


요나가 이 재앙들 앞에서 어떤 결말을 맞는지는 직접 소설을 읽고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3. 재앙과, 현실 그리고 우리



2015년에 가장 인기를 누리는 한국소설로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를 꼽는 신문기사를 보았다. 한국에서의 불행한 삶을 청산하고 호주로 이주하는 청년의 삶을 다루는 작품이라 한다. 왜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일상이 재앙이라는 모티프에, 이 ‘정글’같은 서울을 떠나는 이야기에 끌리는 것일까? 아마도 그들이 인식하는 현실이 비관적이고, 마주한 일상이 부정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디어에서는 흔히 20대를 두고 88만원 세대, 3포, 6포, 9포 세대 따위로 묘사한다. 이들에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재앙과도 같은 일상 속에서 단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사투라는 설명이 덧붙여진다. 두 소설가들보다는 어리지만, 내 주변 친구들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이십대 청년에게 걸맞은 꿈과 고민보다는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과 성적에 목을 매고 있다.


아침 7시에서 저녁 10시까지 이어지는 학교생활에서는 느긋하게 책 한 권 찾아 읽는 것도, 영화 한 편 자유롭게 보는 것도 쉽지 않다. 대학입학과 취업에 대한 어른들의 우려와 걱정이 우리들의 매일을 옥죄고 있다. 때때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덫에 갇혀있다고 느끼는 것이 나만의 과장된 느낌은 아닐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불안한 청춘과 희박한 미래에 대한 수많은 소설이 지금 쏟아지는 까닭이 아닐까?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소설이 쓰이기 어려운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바라건대, ‘지옥’같은 정글 여행의 끝에 ‘천국’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타나기를!





[김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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