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감각하고 기록하며 [사람]

누군가의 사진을 보는 이유
글 입력 2024.01.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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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는 계절을 맞이한 후 몇 달이 지났다.

 

따뜻한 계절이 오면 꼭 사진전에 가리라는 다짐만 하고 있던 며칠 전, 어디선가 본 사울 레이터의 사진 몇 장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흐린 겨울의 이미지였다. 그의 사진 몇 장을 보긴 했지만 제대로는 보지 못한 나는, 마침 날씨도 춥고 흐리니 지금이 바로 그의 사진을 보기에 딱 좋은 때라고 생각하며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곧장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과 <영원히 사울 레이터> (두 권 모두 ‘윌북’에서 출간되었다)를 꺼냈고, 천천히 감상하리라는 생각으로 한 권을 펼쳐 보았다. 어느 사진에서는 꽤 오래 멈춰있었고, 어느 사진은 빠르게 넘겼다. 

 

그렇게 첫 번째 사진집을 덮으며 든 생각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크게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뭘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마음에 아주 크게 남는 사진이 있길 바랐던 것 같다. 실망한 건 아니지만 그리 신나지도 않은 상태로, 나는 나머지 한 권도 그 자리에서 펼쳐 들어 똑같이 몇 분 동안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넘겨 봤다. 그러고는 두 권 모두 책꽂이에 다시 꽂아놓고, 도서관을 나왔다.

 

어느새 비가 살짝 내리고 있었다. 엄청 춥지는 않게 서늘한 정도였고, 곳곳에 우산을 쓴 사람들과 우산을 들고도 펼쳐들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아주 작은 빗방울을 그냥 맞으며 걷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고, 땅은 촉촉해져있었고, 안개도 살짝 끼어있었다. 그런데 도서관을 나와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내가 지금 이 동네를 걸으며 보고 있는 이 장면들이 방금 본 사진들과도 어느 정도 닮아있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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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ll, c 1960 (111쪽 /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사울 레이터는 ‘친숙한 장소에서 신비스러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이 사는 동네를 찍는다고 말했다. (35쪽,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그러니까, 사진을 찍는 행위를 위해 어디를 찾아가는 것보다는 익숙한 동네의 곳곳을 카메라에 담는 걸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방금 보고 나온 또렷하지 않은 필름 사진들이 흐리디 흐린 날씨 속의 익숙한 우리 동네와도 겹쳐졌다. 우산을 쓴 사람의 뒷모습, 눈과 비로 젖어있는 도로, 수증기로 뿌옇게 된 가게의 유리창. 사진 속 그곳은 뉴욕이었고, 여긴 그보다 훨씬 차분한 우리 동네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분명 아주 다른 곳인데도 우리가 일상 속에서 보는 몇 장면들은 서로 비슷하다는 걸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사실 그때까지도 그뿐이었다. 멋진 사진들이었고, 잘 어울리는 계절과 날씨에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을 본 것만으로 만족스러웠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고, 이제 비가 더 많이 내리기 시작해서 창문에 꽤 굵은 빗방울이 달려있는 걸 보면서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 중에도 그런 사진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며 일기장을 꺼냈다. 그리고 일기장에 ‘사진들은 분명 아름다웠는데 마음에 크게 남는 건 없었으며, 심지어 몇 장을 그렇게 이어서 계속 보다 보니 점점 흥미가 떨어졌다’는 식의 메모를 남기고는, 금방 다른 일들로 관심을 돌렸다.

 

*

 

그의 사진들이 갑자기 생각난 건 그로부터 몇 시간 후, (거의 밤이라고 할 수 있는) 늦은 저녁이었다.

 

따뜻한 물 때문에 수증기로 덮인 화장실 거울을 보고 있어서 떠오른 건지, 너무 추워서 그런 건지, 하루가 끝나가는 시간이 되면 저절로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떠오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사진들 중 몇 장이 생각났다. 유리창에 덮인 수증기를 조금 지우고 그 틈으로 보이는 바깥을 찍은 사진들, 그리고 솜스, 바바라, 킴 등 그와 친밀했던 여성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이어서 분명 춥거나 서늘한 날씨일 텐데 사진들 자체에서는 따뜻함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던 것과, 이유는 모르겠지만 핼러윈의 아이들을 찍은 사진들이 특히 좋았던 것도 생각났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아까 감흥이 없었던 건 정말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내 마음속에 느리고 차분하게 내려앉았던 무언가가 지금 느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진이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적어도 오늘 그 몇 분 동안 봤던 사진들 중 몇 장은 신기하게도 확실히 마음에 남아 있었다.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며칠 후에 그 사진들을 한 번 더 눈에 담았다.

 

생각해 보면, 그저 멋진 사진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진집 같은 것을 찾아보거나 아주 가끔 사진전에 갈 때면 항상 마음에 남는 사진이 적어도 하나는 있었다. 구도가 마음에 들거나, 피사체가 멋지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어떤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는 이유들로 말이다. 하지만, 사실 대개는 특정한 이유가 없었다. 그냥 이유는 모르겠지만 계속 보게 되고, 마음에 들었다.

 

"나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확신하지 못할 때를 좋아한다. 우리가 왜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지 모를 때, 갑자기 우리는 보기 시작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이 좋다." (129쪽,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이렇게 사울 레이터 또한 이런 순간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이런 상황을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아마 이런 게, 누군가가 찍은 사진을 보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사진가의 눈으로 포착되어 카메라에 담긴 그 주관적인, 어떨 때는 아주 개인적인 장면들이, 내가 놓쳤을 수도 있을 수많은 장면들을 떠오르게 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걸 발견하거나, 앞으로도 있을 수많은 장면들을 덜 놓치리라는 다짐을 하는 것 말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좋아하니까 좋아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혼란스러움이 존재하는 일상은 아름답고 흥미로우니까.

 

다만 나의 이 다짐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장면들을 포착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사진이 아닌 다른 기록으로도 할 수 있을 테고, 아니면 모든 물리적인 기록은 내려놓고 그저 내 몸과 마음의 감각으로 그 장면을 새길 수 있는 법이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과 지금까지 일상의 많은 장면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나의 장면들을 내 시선과 일기장과 프레임 안에 담아보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머물게 하리라는 다짐을 해본다.

 

*

 

나에게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떠오르게 하는 이 계절이 지나 또 다른 계절이 찾아오면 아마도 내가 보고 머릿속에, 마음에 담아둔 다른 사람의 사진이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겨울이 오면, 내가 도서관에서 단 몇 분 동안 본 그 사진들 중 몇 장이 또 떠오를 것이다. 어쩌면 집으로 가는 길에서 겹쳐 보인 사진들과 화장실 거울을 보며 떠올린 사진들 말고, 생각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사진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 말고도, 다른 사진가들의 사진을 찾아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진들 덕분에 일상의 익숙함 속 멋진 부분을 나 또한 포착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냥 스쳐 지나가기만 한다면 그 흥미로움을 알아채지 못할 만큼 흔한 풍경이지만 왜인지 재미있고 마음에 드는 것들은, 나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항상 어딘가엔 존재할 테니. 

 

나는 그런 것들을 감각하고 기록하며 포착하면 된다.

 

 

[강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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