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 것도 찾지 않는 방랑자의 여행기 [여행]

#3 굿바이 스페인
글 입력 2019.06.12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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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찾지 않는 방랑자의 여행기

#3 굿바이 스페인 


Opinion 민현




[3] 론다



“누에보 다리만 보고 오면 돼!”


라는 말을 안 믿고 한 도시를 하루 이상 봐야한다는 마음가짐으로 1박하게 된 론다는 세비야에서 한시간 반 정도 들어가면 나오는 조그만 도시다. 안달루시아 고원을 14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살면서 처음으로 정말 탁 트인 고원을 마주했다.


정말 작은 도시 론다에 도착해 나는 무작정 걸었다. 길이 나오지 않는 곳까지. 이렇게 사람이 없는 동네를 걸어보는 게 얼마만인지, 한국 사람은 물론 스페인 사람도 없는 곳까지 걸어오니 어딘가 마음이 평안해진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작은 집들과 초원을 사진에 담고 나서야 나는 누에보 다리로 향할 수 있었다.



IMG_1385.jpg▲ 이름 모를 론다 마을
 


* 여행 스타일


걷다보니 내 여행의 스타일, 색깔이 잡힌 것 같다. 일단 걷는다. 30분 이내라면 걷는다. 그리고 멈춰선 곳, 가다가 들린 곳이 내 여행지가 된다. 처음엔 언제 이곳에 다시 오겠어, 하는 생각으로 7시부터 10시까지 돌아다녔지만 점차 속도를 조절해가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렇게 걷다가 마음에 드는 곳은 한 번 더 온다. 새로운 곳을 여러번 보는 것보다 마음에 드는 곳을 한 번 더 눈에 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곳은 꼭 봐야돼!! 하는 부담감은 덜기로 했다.


2달이라는 긴 여행 기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바쁘게 다니면 스페인의 ‘주요 관광지’는 다 찍고 다른 곳으로 넘어갈 수도 있을 만한 시간이다. 애초부터 그런 바쁜 여행은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설렁설렁 짰던 여행 계획이 오히려 도착하니 큰 도움이 된 듯 하다. 그래도 첫날부터 4만보를 찍었던 내 걸음은 점차 줄어 이제 2만 중반 대에서 평균치를 이뤘다, 다행히도.



IMG_1377.jpg▲ 누에보 다리



그래도 론다는 역시 누에보 다리였다. 아침에 오고, 오후에 오고, 저녁에도 왔다. 사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하루 모든 모습을 담기에 부족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그리고 누에보 다리에서 본 그 평원과 조그만 마을들도 내 마음을 간지럽혔다. 대도시에서 벗어나 관광객이 모두 떠나간 조용한 저녁, 론다에 여유롭게 앉아 세비야에서의 어젯밤을 추억해본다.




[4] 그라나다



나는 나름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한번도 첫 눈에 사랑에 빠진 경험은 없다. 하지만 그라나다는 간접적으로 그런 느낌을 가지게 만든 곳이었다. 난 그라나다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이전의 세비야가 조금씩 나를 끌어 당겨 편안함을 주는 도시였다면, 그라나다는 짧지만 강렬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서서히 스페인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도시를 이동하면 이동할수록 점점 더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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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에 온 단 하나의 이유는 알함브라 궁전 때문이라고 해도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알함브라의 이름을 딴 국내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원래 인기가 많은 관광지였는지 정말 엄청난 수의 관광객이 궁전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엄청나게 큰 그 궁전은 지구 반대편에서 온 관광객들까지 모두 품어줄 만큼 엄청나게 컸다.


아랍의 향을 가득 머금은 그 궁전은, 그동안 어렴풋한 느낌으로만 내게 다가왔던 아랍과 이슬람의 예술에 대해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해주었다. 어떤 관광지를 들어가도 1시간이면 금방 싫증을 내는 내게 알함브라의 궁전은 3시간 반이라는 긴 시간을 하사했다.


그리고 6월 1일, 축구 팬이라면 마다하지 않을 챔피언스 리그 결승을 현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현지 국가에서 관람했다. 축구 따위엔 관심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밤이 되자 수많은 팬들로 돌변했다. 그 분위기를 느끼며 보는 건, 새벽 4시에 혼자 앉아 졸며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온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가 되어 먼 섬나라 팀의 우승을 축하했다. 그래서 그런지 온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관광객도, 현지인도 많았던 그라나다의 분위기가 매일 매일 뜨거운 태양처럼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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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올라선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바라본 그라나다의 야경은 아랫동네의 시끌벅적함과는 다르게 조용하고 낭만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불빛을 받은 성벽처럼 빛나는 씨샤 숯덩이의 타오름을 마주한 나는 내 마음에 새로운 불씨를 발견했다. 버려진 성처럼 냄새만 풍기던 마음에 기껏해야 한두 시간 남짓, 아름다운 불씨가 다시 타올랐다. 그 불빛을 마음에 담고 싶어 연기를 한모금씩 들이킬수록 성곽은 더 밝게 빛난다.


그라나다에서 알함브라의 야경을 보면 누구나 이런 감성 넘치는 글을 쓰게 마련이다. 정말 같이 있는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만한 풍경이었다. 하늘 위를 가득 메운 별들도 빛을 조금 보태며 수천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예쁜 야경이라면 놓치지 않는 한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어 그 감흥을 살짝 깼다.


내일이면 그라나다를 떠나는 게 아쉽지만, 어린 날의 사랑처럼 아쉬움으로만 남을 것 같다. 그만큼 짧지만 강렬했던 기억으로 그라나다는 내게 남았다.




[5] 코르도바



IMG_1628.jpg▲ 코르도바 로마교
 


수채화를 칠하던 옛날 내 물감엔 고동색 옆에 자주 쓰지 않는 어두운 초록색이 있었다. 그래도 꼭 나무의 마지막 어두운 부분을 칠할 때, 그리고 나무 등걸에 조금씩 자라나는 잎사귀들을 칠할 땐 항상 그 색을 찾았다.  자주 찾지 않지만 나름 자기 특색을 가진 그 색이 마음에 들었다.


초록색과 고동색, 그리고 얕은 노란색을 섞은 색으로 빛나는 과달비키르 강을 보고있으니 코르도바의 색은 그 어두운 초록색을 떠올리게 만든다. 관광객들이 자주 찾지 않는 이 도시는 누구나 한번 보면 마음에 들 특색있는 색을 갖고있다.


코르도바는 그렇게 아라비아의 색깔을 처음으로 칠하고, 그리고 유대교와 기독교를 한 번, 뒤이어 스페인의 색을 덧칠한 아름다운 도시다.


알카사르가 있는 도시는 과거에 대도시였다고 하는데 코르도바는 과거의 그 영광만 간직한 채 조용히 잠들어 있다. 이따금 찾는 관광객들도 알함브라만 못하다거나, 코르도바는 딱히 볼 것도 없고 재미도 없는 도시라고 말하는 소리를 혼자 묵묵하게 들으면서 조용하게 자리를 지킨다.


사실 코르도바에서 가장 마음에 든 곳은 내가 있던 호스텔의 테라스다. 혼자 누워 노을을 바라보고 있자니, 세계 대부분 사람들은 모를 코르도바의 진짜 모습을 안 것 같아서 어딘가 흡족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아침부터 봤던 메스키타와 알카사르, 그리고 과달비키르 강의 야경도 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가니, 낮보다 더 많은 사람이 온 것 같다. 마치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듯 사실 그렇게 떠나기 아쉬웠다는 생각으로 모두 강가에 서서 그렇게 거리 악사의 연주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6] 마드리드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프라도 미술관, 나는 도착하자마자 이곳으로 향했다. 챙겨온 국제학생증 덕분에 무려 무료로 입장했을 땐 그 고난에 대해 상상도 못했다. 왜 세계 3대인가 했더니 정말 크다. 과장 보태지 않고 하루 종일 이 곳에 있어도 모든 작품을 둘러보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벨라스케즈, 고야, 루벤스 등 걸출한 화가들의 작품이 정말 정말 많이 실려있다. 지금까지 갔던 미술관은 독립 전시 쯤으로 만드는 프라도 미술관의 웅장함은 그림을 보면서 드는 감탄과 경외감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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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솔 광장, 마요르 광장 등 왜 이렇게 마드리드엔 광장이 많은거야 하고 생각하며 걷다 보면 마드리드 왕궁에 도착한다. 현지인 투어 가이드가 강조하던 1561년, 펠리페2세가 천도한 이후로 마드리드는 그렇게 쭉 스페인의 수도가 되었다.


대도시에 온 게 이번이 처음이라 그런지, 걸어다니기에도 벅찼고 이리저리 사람에 치여 다녀 조금 여유가 없는 느낌이 강했다. 조용한 소도시가 그립기도 하고 6일 간의 마드리드는 너무 길기도 해서 세고비아와 톨레도라는 근교 도시를 찾았다.




[7] 세고비아/톨레도



마드리드에서 한 시간 북쪽으로 가면 세고비아가, 그리고 남쪽으로 가면 톨레도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마드리드에 여행 온 관광객들이 꼭 한번쯤은 찾는 이 도시는 과거 마드리드를 지탱하는 요새 역할도 했다고 한다. 톨레도는 과거의 수도였고, 아직까지 중세의 그 모습을 간직한다고 하니 현재보다 과거를 사랑하는 나에겐 더없이 좋은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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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의 수도교는 도시 중앙에 떡하니 놓여 그 위용을 자랑한다. 어쩐지 사람들은 무심하게 수도교 바로 밑 테라스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 한잔을 즐긴다. 그 모습이 어색하여 나도 놀라지 않은척, 저정도 유적은 익숙한척 해봤지만 솔직히 입은 다물지 못했고, 사진기를 멈추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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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좀 걷혔으면 참 좋았을 톨레도의 전경. 우두커니 솟은 성당과 알카사르가 과거의 모습 그대로다. 성벽으로 둘러싸여 높은 곳에 요새처럼 세워진 이 도시는 아직까지도 옛날 집들과 거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사실 이제 성벽, 다리, 성당, 성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처음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처럼 엄청난 감흥은 없다.



* 스페인 마무리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 한국에 있는 지인들, 가족들이 물어보는 질문들 중 몇가지를 뽑아서 대답해보았다. 여행 20일차를 정리하고 지금 내가 어디쯤 와있는지 정리해보고싶었다.



Q. 여행 첫 발 걸음을 뗐다, 지금 기분이 어떤지?


첫 발걸음이 생각보다 길었다. 아무 것도 찾지 않는 방랑자가 되기로 했지만 여기저기 이것저것 찾고 있는 날 보니 안쓰러운 느낌도 든다. 기분은 왔다갔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처럼 웃어넘길까 싶다.



Q. 가장 마음에 들었던 도시는 어디인가?


바르셀로나, 세비야, 론다, 말라가, 그라나다, 코르도바, 마드리드, 세고비아, 톨레도 2주 반 정도 되는 시간동안 나름 여유롭게 돌아다녔는데 왠만한데는 다 다녀온 것 같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도시는 세비야다. 만났던 사람들, 도시의 풍경, 햇살과 달빛이 비추는 그 강의 풍경까지..  여행을 끝마칠 즈음, 1주일 정도는 가장 마음에 들었던 도시에 가서 머무르고싶다. 지금까지는 아마 세비야가 되지 않을까?



Q. 스페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하나하나 다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한 가지로 꼽을 수 없을 만큼, 스페인은 내 기대보다 더 나에게 기억에 남을 에피소드를 만들어주었다.



Q. 스페인을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mañana.



Q. 어때? 여행 오기 전이랑 지금이랑??


음.. 아직 여행이 많이 남아서 뭐라고 딱 말은 못하겠지만 일단 좋다. ???



Q. 앞으로 남은 여행 목표 혹은 생각이 있다면?


일단 1번은 외국인 친구 만들기. 생각보다 사람들이 무관심하다. 이따금 말을 거는 사람도 있지만 서로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아 좀 아쉽다. 내가 먼저 다가가 외국인 친구 만드는 게 목표다, 한국인 친구는 그만 만들고.


두 번째 목표는 지금의 마음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어떤 일에 흔들리거나 마음이 무너지더라도 남은 두달가량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하고싶다. 2주에 한 편씩 쓰는 이 글이 마음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세 번째는 정말 안전하게 귀국하는 것, 여행 중 헝가리 사고 소식을 듣고 정말 안타까웠고 슬펐다. 사실 다른 모든 건 중요하지 않다. 그 소식을 듣고 아무 일 없이 무사히 한국 땅을 밟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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