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김나정 피아노 독주회, 피아노를 치고 싶게 하는 숲 속의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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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되기 전의 웅성거림과 소리가 멈추고,
무대에만 불이 비춰지고 모두가 피아노가 시작되기를 숨죽이는 순간.
모두가 자리에 앉아있지만
소리에서만큼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첫 곡 연주 전의 떨리는 순간.
수많은 연주를 해보았다고 해도
늘 무대에 서는 설렘이나 떨림은 여전하다고 하는데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 홀에서 만난
김나정 피아노 독주회에서는 그 모습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손을 풀고, 연주복을 정리하고, 눈을 감고 집중하는 순간이 지나고
F. Schubert
Klavier Sonata in a minor, D. 845
첫 곡으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6번이 시작되었습니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편이지만, 첫 소절을 듣고 나서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었습니다.
재밌게 봤던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를 통해 알게 된 곡이기 때문입니다.
극 중에서 주인공은 노다메는 이 곡을 연습하면서
슈베르트를 깐깐하고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치아키 선배는 이렇게 말합니다.
" 슈베르트는 정말 깐깐한 사람일까?
자기 얘기만 하지 말고 상대방의 얘기도 들어봐
악보와 정면으로 마주해"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노다메는 슈베르트를 깐깐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슈베르트의 이 곡의 1악장의 정경을
화사한 꽃밭으로 표현했지만
저는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악보는 깐깐할 지언정
슈베르트는 훨씬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고
곡의 정경은 오히려 신비스러운 느낌의 숲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순간 박력 있다가도 여린 듯 부드러운 느낌이 공존하는 곡이었는데
박력있는 면보다는 부드럽고 통통 튀게 표현하는 부분들이
김나정 씨에게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곡은 5분 남짓한 곡,
A. Schonberg
Sechs kleine Klavierstucke Op. 19
쇤베르크의 <6개의 소품>이었습니다.
슈베르트가 멜로디를 풀어내는 식으로 보여줬다면
쇤베르크의 곡은 음과 음 사이의 여백이 매력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슈베르트의 곡이 신비한 숲 같았다면,
쇤베르크는 팽팽한 외줄타기를 하는 긴장과 미스터리함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6개의 곡이 각각 1분 남짓한 길이로 연주되는데
그만큼 짧지만 강렬하다는 말이 떠올랐어요.
처음 시작도 미스터리했는데, 끝마저도 침묵 속에서 끝나서
미스터리한 쇤베르크의 곡을 연주하는 모습이
피아노 위에서 조율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같이 조마조마하기도 해서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미션 후에 마지막 곡은
F. Liszt
Sonata in b minor
리스트의 <Sonata in b minor>이었는데,
이럴수가!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는 데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들었던 곡이었습니다.
슈베르트 곡을 연주하는 초반에 긴장이 느껴졌다면
리스트의 곡에서는 처음부터 김나정 씨의 자신감과 힘이 가득하게 느껴졌습니다.
파도처럼 휘몰아치듯이 빨려들어 가다가도
멋진 멜로디로 다음 순간 변하는 다채로운 매력이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 물방울이 튀기는 것처럼 정말 아름다웠던 부분이 있었는데
포스터와 가장 맞는 이미지이자, 어찌보면 가장 메인 곡은 이 곡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곡이 언제 끝날지 몰라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곡이었습니다.
분명 제가 느낀 것들은
어쩌면 김나정 씨나, 작곡가들이 의도한 바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덕분에
보기에는 네모반듯하게 생긴 건반으로 표현할 수 있는
피아노의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도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공연을 봤던 친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피아노를 잘은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피아노를 치고 싶은 연주였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말에는
저도 아무 말 없이 동감합니다.
그런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좋고
그런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자랑스러운
가장 우리와 가깝지만 그만큼 잘 알지는 못했던
피아노가 가진 반전 매력을 구석구석 만날 수 있었던
포스터만큼 산뜻한 숲을 걷고 온 것 같은
김나정 피아노 독주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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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