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비행기의 그림자를 본 적 있나요

길에서 주운 것들이 만드는 이야기가 있다
글 입력 2024.01.13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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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 가까워지면 바다에 뜬 비행기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인천대교에 들어오는 길에 처음으로 비행기의 그림자를 봤다. 적당히 맑은 날씨에 내가 탄 좌석이 해를 등지고 있다면 볼 수 있는 우연한 그림자란다. 착륙 20분 전에 옆 좌석 아기의 칭얼거림에 눈을 떴다가 발견한 그림자는 육지에 가까워질수록 진해지고 선명해졌다.


바다에도 그림자가 지는구나.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는데 그걸 비행기의 그림자를 보고 발견하다니, 운이 좋았다. 살면서 비행기를 수십 번은 타봤을 텐데 비행기 그림자를 본 게 이번이 처음이란 사실도 놀라웠다. 찾아보니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는 비행기 그림자를 고래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 모양이다. 파도가 일렁이니 따라오는 비행기 그림자가 옅으면 수면 아래에 있는 고래 같이도 보이겠다.


비행기 그림자는 올해 내가 처음 길에서 주운 사소한 발견이다. 비행기 그림자를 메모장에 적으면서 해보기로 했던 도전이 하나 생각났다. 도전이라고 하면 좀 거창하긴 하지만서도 해봐야지 생각했던 일은 바로 길에 버려진 사소한 것들을 '발견'하는 일이다.


엉뚱한 도전의 시작은 정세랑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본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 작가는 비정기적으로 '사람들이 길에 두고 가는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해시태그를 두고 여러 개의 사진들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사람들은 정말 별의별 물건들을 다 흘리고 간다.


두고 가는 건지, 잃어버린 건지 그 역사는 주인과 그 물건만 알 것테지만 흘린 물건들을 발견한 사람의 권리는 그 전후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나의 시선을 끄는 두고 간 것들이 뭔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그 물건의 사연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렇게 만들어간 이야기가 재밌겠다 싶어 나도 따라 해보고자 했던 것인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길에는 정 작가가 발견한 것처럼 누군가의 리본, 머플러, 반지, 귀걸이 이런 자그맣고 의미 있는 소품보다는 담배꽁초, 먹다 버린 캔이나 페트병 등 쓰레기가 더 많았다.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더 많이 발견하고 나니 마음이 지쳤다. 길 가장자리를 넘어 사람들 발에 치이는 쓰레기를 주우면서 육성으로 "인간들아..." 중얼거리기도 했다.


통화하며 어딘가 바쁘게 걸어야 하는 일정 탓에 사진을 찍고 싶은 것들을 발견하고도 지나쳐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돌아가 볼까 하다가도 그 잠깐이 힘들어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다음에 또 발견할 수 있겠지 뭐. 다음은 잘 오지 않았다. 누군가 두고 간 것이 옮겨지기 전에 그 자리를 지나야 하고 내게 찍을만한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삼박자가 다 맞아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좀 찍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나도 몰랐지...


나와 친해져서 좋은 점은 당연하게도 나를 잘 알게 된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쉽게 포기하고 마는구나, 나는 이런 것과 안 맞나 보다 하고 말 것을 이젠 어차피 또 나중에 하고 싶어 할 거니까 좀 기다려보자는 식의 너그러운 기다림이 가능해진다. 작년에 못했다고 영원히 끝이 아니라 결국 언젠가 한 번은 또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길거리에서 사소한 것을 주울 날들을.


올해는 비행기에서 이 기막힌 우연을 맞이했으니 시작이 좋다. 경험해 본 바로는 나는 시작이 좋으면 다 좋다는 부류의 엄청난 낙천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우연에 기대볼 만큼은 낭만적인 사람이다. 땅 위를 날아다니는 비행기 그림자를 따라 걷다 보면 나도 내 나름의 이야기들을 펼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p.s 이 글을 쓴 다음날 바로 땅에서 귀여운 머리핀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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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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