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외치는 이유 – 서프러제트 [영화]

글 입력 2019.03.3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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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상황이 우리가 바라는 모습으로 다가오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별탈 없어 보이는 하루도 군데군데에 유쾌하지만은 않은 감정들로 때가 탄다.


나도 모르게 불편한 감정이 쌓이는 친구의 사소한 행동, 또는 낯선 사람에게 무례한 말을 듣고 불쾌해지는 경험. 이런 것들이 우리의 일상을 지저분하게 만든다. 어떤 때에는 참지 않고 한 마디 하려다가도 이내 드는 생각에 다시 입을 닫는다.


‘말한다고 뭐가 달라져?’




외치거나 혹은 침묵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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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프러제트>는 2016년도에 개봉한 사라 가브론 감독의 영화이다. 20세기 초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여성 투표권을 위해 투쟁한 ‘서프러제트’에 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모드는 세탁공장의 노동자로 일하며 가정에서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인물이다. 거리에서 시위하는 ‘서프러제트’를 목격하고도 침묵하기만 했던 모드는 어느 날 동료 바이올렛을 따라 의회에 참석했다가 그녀 대신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증언을 하게 된다. 그리고 증언을 하는 이유를 묻는 의원에게 모드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 인생을 다르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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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수많은 여성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부당한 현실에 대해 소리쳐도 정치인들의 몇 마디에 모든 소망은 기각된다. 영화가 보여주는 이런 현실은 언어가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누군가의 말 한 마디는 차별 받는 다수의 외침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진다. 발언권을 가진 자들은 모두의 입장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권위를 위해 입을 열고 법을 만들며, 어느 한 쪽의 의견을 가볍게 묵살해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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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외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여성 참정권론자 팽크허스트의 연설이 있는 날 아침, 고민에 잠긴 모드는 남편에게 묻는다.


“우리에게 딸이 있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남편은 대답한다.


“당신과 똑같은 삶을 살았겠지.”


무심히 일어나는 남편의 등을 보며 모드는 집회에 참석하기로 결심하고 서프러제트의 일원이 된다.


영화 속에서 이 장면은 모드가 고민을 끝내고 행동을 시작하는 전환점이 되는 장면이다. 당장 나의 삶이 변하지 않는다 해도 목소리를 높이고 투쟁할 수 있는 원동력은 여기에 있다. 지금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내 삶과 같은 고통이 계속되리라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으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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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으로 쓰여진 법은 폭력적이다. 누군가는 동의한 적 없는 법에 의해 심판되고 억압받는다. 남성은 그들이 만든 질서 위에서 표현을 장악하고 인간에 대한 권리를 독점한다. 이 질서 속에서 여성은 발언권이 없는 소유물, 혹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린 범법자가 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우린 입법자가 되고 싶은 겁니다.”


이 대사는 팽크허스트의 연설 장면에 등장하는 대사이다. 여성이 입법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여성만을 위한 법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느 한 쪽이 만든 법이 인간의 법이 되어서는 안되며, 여성의 말 한 마디가 남성의 말 한 마디와 같은 무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쪽짜리 보편은 없다



모두에게 동등한 투표권은 처음부터 당연하게 주어졌던 것이 아니다. 특히 여성은 억압의 역사가 자유의 역사를 압도한다. 아니, 자유는 아직도 허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여전히 변화는 더디고 차별은 견고하다. 그럼에도 여성이 계속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에게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만들기 위해 울부짖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으며, 현재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미래에는 당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내가 누리는 자유는 허락된 것이 아니다. 여성의 역사가 눈과 입을 틀어막은 손바닥을 뿌리치고 스스로를 해방시킨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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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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