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Culture letter 01. 변화, 이별을 딛다. [문화 전반]

흘러가야 하는 것들
글 입력 2019.03.08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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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2018년의 봄을 맞은 지도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시간은 빠르게 흘러 벌써 2019년의 벚꽃이 개화를 앞두고 있다. 사실 맞닿은 온도의 변화를 체감한지는 꽤 시간이 지났다. 2월 말부터 급격하게 따뜻해진 날씨는 흘러가는 세상의 속도를 실감케 했다. 나는 그저 한 자리에 묶여있었다. 그래도 2월은 겨울의 일부라고, 아직 다른 이들의 변화를 위한 준비를 하는 시기라고, 나만 뒤쳐져있는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 그렇게 위안 삼으며 한 자리에 묶여 있었다.

 

친구들의 졸업식에 가고, 새 직장에 취직한 친구들의 일상을 전해 듣고, 새 학기와 개강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3월이 다가왔다. 문득 동네를 걷다가 한껏 따뜻해진 날씨를 체감하고 나서야 나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봄’이라고,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던 시기라고, 나도 어딘가에 묶여있을 게 아니라 흘러 가야 하는 시점이라고.

 

개인사를 줄줄이 늘어놓을 생각은 없지만, 나는 조금 오랫동안 우울의 그늘에 붙들려있었다. 뭐 지금도 이 녀석과 완전히 이별한 것은 아니지만, 나로선 가장 힘들었던 선택을 했고 이제는 그 여파가 조금 사그라진 상태다. 마음의 상처가 있다는 핑계로 변화를 미뤄오던 나는 최근에야 내가 쫓았던 것들이 지금의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방법이었단 것을, 조금씩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생각이 아닌 행동으로.

 

이별은 변화를 위한 디딤돌이다. 졸업식을 떠올리면 그 의미가 더 정확해진다. 아쉬움과 새로움에 대한 두근거림 공존하는 시간과 공간. 이별을 딛는 일은 그런 종류의 일이다. 세상의 모든 이별이 같은 크기의 아픔과 슬픔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모든 이별이 그 아픔을 딛고 새로운 변화로 나아가기를, 그래서 다가오는 봄엔 울지 않고 그 시간을 담담히 되새길 수 있기를, 그렇게 바라며 변화로 나아가기 위한 책과 영화를 소개해볼까 한다.




01. 공존을 위한 작은 이별, 건강한 우정 - [영화] 주먹왕 랄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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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개봉을 고대하다가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에 달려가서 본 올해의 첫 영화였다. 주먹왕 랄프 시리즈의 1편은 디즈니 최초로 주인공이 아닌 ‘악역’에 초점을 맞춘 아웃사이더의 시선을 다룬 에피소드로 인기를 끌었는데, 2편에서는 더 나아가 주인공 랄프와 바넬로피의 성장과 변화를 다룬다.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이들은 각자의 꿈과 성장을 위해 이별하게 되는데, 늘 같이 지내던 친구를 보내는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이어나가는 자세, 각자 변화하는 위치에서 나아가는 한층 더 성장한 ‘어른의 우정’을 보여준다.


사실 이들의, 이별이 다른 형태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변화는, 영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변화를 지켜보며 이별에 정답이 있다면 저런 이별이 아닐까 생각했다. 각자의 영역을 넓혀가며 만남을 이어가는, 서로 나아가는 랄프와 바넬로피의 모습은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을 떠올리게 했다. 이제 나와 친구들은 각자 일을 해나가며 가끔씩 날을 잡아야만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어릴 때만큼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각자의 삶을 존중할 수 있는 어른이, 우리는 과연 될 수 있을까? 그리 건강하게 이 만남을 이어갈 수 있을까? 아리송하지만 그리하고 싶었다.


어중간한 20대의 중반이라는 나이기에 가끔은 막막함에 주저앉기도 하지만, 나와 내 친구들 역시 랄프와 바넬로피처럼 건강한 우정을 이어나갈 것이라 믿는다. 모든 이별이 슬픈 것만은 아니란 사실을 일깨워주는 귀여운 영화다. 가볍게 보아도 뭉클한 그런 이야기다. 아직 이 귀여운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얼른 랄프와 바넬로피를 만나러 가길 추천한다. 참고로 2편은 더 커진 스케일과 CG로 영화를 보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으니 어서 가서 영화를 즐기시길!



  

02. 조용한 마음의 위로,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 - [에세이] 이기주, 한때 소중했던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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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왕 랄프가 조금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화라면 이번에는 매일 조금씩 읽어나갈 수 있는 삶의 문장들을 담은 책을 소개하고 싶다. 이 책은 올해 처음 손에 잡기 시작한 책이다. 주로 자기 전에 혹은 틈날 때마다 읽어내려 간 책인데 개인적으로 언어의 아름다움과 섬세함을 귀신같이 잡아채는 작가라 여기는 분의 책이기에 읽을 때마다 감탄하며 밑줄을 긋곤 했다.


이 책은 “언어의 온도”보다 조금 더 내밀하게 삶의 침투한 감정들을 다룬다. 책을 관통하는 가장 근본적인 감정은 상처와 아픔이지만, 이를 묵묵히 이겨내는 소중한 인생의 순간들 역시 문장들의 주된 부분을 이룬다. 슬픔이 빠져 나간 자리에 눈물이 마르고 굳어 더 단단해지는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다룬다. 때로는 소설처럼, 때로는 현실처럼 은은하다가도 직설적으로 세상의 한 부분을 드러내는 문장들이다. 이별의 아픔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지만, 이를 안고 나아갈 수 있는 묵직한 힘을 보여주는 책이다.

 


“지금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지난 날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 것들이다.”


“소중한 사람이나 존재는 우리 곁을 떠날 때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소중한 무언가를 내게 남겨둔 채 떠나거나 내게서 소중한 무언가를 떼어내 가져간다.”





03. 묵직한 서사의 울림,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들 - [소설] 최은영, 쇼코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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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추천할 책은 단편소설집이다.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단편소설집이자 우울증이 극에 달해서 일상생활이 너무 힘들 때 나에게 커다란 힘을 준 이야기들이 모여있다. 주인공들은 각자의 아픔이 있고 이별을 맞이한다. 그리고 관계를 통해서 시련을 이겨나가는 플롯이 주를 이루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결코 거창하거나 화려하지는 않다. 오히려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이는 잔잔한 감정의 울림이 짙게 울려 퍼진다.


문장은 우리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짧고도 강렬한 그 생각의 일부를 잡아채 독자 앞에 내어놓는다. 쇼코와 소유도, 엄마의 작은 순애언니도, 스쳐 지나갔지만 강렬했던 한지와 영주의 만남도, 책 안의 각 소설들은 귀신같게도 그 조그마한 관계의 흐름을, 그로 인한 마음의 변화를 잡아채고 독자를 흔든다. 처음 내가 이 책을 읽고 뱉은 문장은, “말로 표현은 안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위로된다.”였다. 이 소설들과의 첫 만남에선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멈칫 거리다 적절한 표현법을 고 말았기에 김연수 작가의 추천사로 나의 감상을 대신 했었다.

 

세상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그간 속았다는 느낌이 든다면, 반쯤은 제대로 살고 있는 셈이다. 온전히 살고 싶다면, 사실은 세상이 나를 속였다기보다는 내 쪽의 일방적인 착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지만. 이 첫 소설집에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의 부끄러움, 민망함, 분노, 미움, 죄책감 등 다양한 감정들을 탐구하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탐구는 탐구, 이야기는 이야기다. 소설가로서 최은영의 가장 큰 미덕은 그게 무슨 탐구든 반드시 근사한 이야기로 들려준다는 점이다. 그녀가 앞으로 쓰게 될 근사한 이야기들이 바로 이 책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두 계절을 보낸 지금은 조금은 그 먹먹한 감정을 표현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들은 인생에 대해 알아가는 그 낯선 첫 여정을 다룬다. 사람들은 누구나 낯설고 막막하지만 나를 지탱하는 어떤 관계가 나를 받쳐주는 그런 길을 걷는다. 그 길이 시작되는 시점은 각자 다를지라도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 맺으며, 혹은 무언가와 관계 맺으며 살아간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 기억들이 쌓인다. 소중한 이들과의 기억이 겹겹이 쌓여 추억이 되고 소중해지면 그것들이 우리를 세상에 붙들어둔다. 이별 뒤의 씁쓸함을 알면서도 우리가 계속 무언가와 감정을 나누는 이유는 결국 그것이 사람이 나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습지?”

“웃기다.”

“소유야.”

“응.”

“우린 이제 혼자네.”

쇼코는 그 예의 바른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


변화는 이별을 딛고 서기에 가능한 일이다.

각자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 이들의

모든 순간이 안녕하길 바란다.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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