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치를 담은 네 권의 책, <사서> [도서]

‘인간의 보편적인 길 위에 자신을 세워보라!’
글 입력 2019.02.19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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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호, <사서 ㅡ 이치를 담은 네 권의 책>



나는 ‘공자 왈 맹자 왈’ 별로야


역시 고전만 한 게 없다, 고전에서 답을 구해라, 고전의 지혜 등등 고전을 찬양하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을 심심찮게 듣곤 했다. 그럴 때마다 요즘 나오는 책들도 읽기도 벅찬데 웬 고전? 하면서 의심하며 고전을 멀리했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신간 도서 속에서 나에게 옛 것은 고리타분하고 무용하게만 보였다.

특히나 ‘공자 왈 맹자 왈’ <사서>는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윤리 과목 공부를 하면서 가볍게 유교 사상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유교가 우리나라의 근간이 되었다는 사실이 싫게 느껴졌을 정도였다. ‘명분만 내세워 실용적이지도 못하고 자기들끼리 싸우게 만들기나 하고 억압적이고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고 계급과 그 역할을 엄청나게 강조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평생 공부할 일이 없을 것이라 마음속으로 혼자 정해뒀는데, 중국의 작가 위화의 말에 그 부정적인 마음을 조금이나마 돌릴 수 있었다. 위화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문학의 가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나왔을 당시의 시대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사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결국 수많은 책들 중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아직까지 여러 사람들의 선택을 받아 읽히는 책인데, 그 이유는 바로 특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책을 읽기 전에는 우리나라의 사상 기반이 된 유교에 대해 알아보자는 생각도 있었고, 조금 더 유치한 마음으로는 유교 사상 한 문장 한 문장마다 꼬투리를 잡으며 한바탕 실컷 욕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잘 모르고 욕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알고 난 후에야 제대로 밉게 보든 좋게 보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현대에 살고 있는 대학생의 시선에서 이 오래된 경전을 한껏 욕해보겠다는 당돌하고도 무시무시한 마음을 가졌더랬다. (젊은이의 치기로 봐주시라!)

책은 대학-논어-맹자-중용 순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보통 이 순서대로 공부를 해나간다고 한다. 마침 또 이렇게 책이 친절하게 커리큘럼을 제시해주고 있었다. 더욱 기고만장해져서는 호전적인 마음을 쑥쑥 키워나갔다. 이렇게 공부의 단계와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읽는다면 더 잘 알고 더 잘 욕할(?) 수 있지 않을까. 건방진 싸움꾼의 씨앗을 마음속에 심어두고는 아주 신나게 읽어나갔다.

그리하여 나는 유교 사상을 실컷 욕했을까? 배워간 부분이나 알게 된 부분이 더 많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유교는 엄격하지만 그만큼 자유로운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이나 사는 모습은 비슷한 부분이 많았고, 옛날에도 고민하던 문제들은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한 채 이어져오고 있었다. 나를 반발하게 만든 문장도 오히려 현대식으로 해석하여 잘만 적용해 실천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순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인간의 보편적인 길 위에 자신을 세워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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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보편적인 길에 자신을 세워보라’는 신창호 교수의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이 말을 빌려와 나 자신을 세워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자기 수양, 타인에 대한 감화, 세상으로의 확장>

<사서>의 전체적인 내용은 생각과 배움을, 그리고 그것들을 용기 있게 실천하는 것을 강조한다. 즉, 언행일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행동주의 학문이었다. 덧붙이자면 지금의 삶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는 현재 지향적 학문이기도 했다. 과거와 미래를 계속해서 돌아보고 지향하지만, 어디까지나 현재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충실하게 실천하는 것을 중요한 지점으로 삼았을 때 과거와 미래도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철저한 자기 수양에서 이뤄지는
타인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화,
그리고 서서히 더 넓은 세상으로
확장되어 나아가는 선한 영향력


<사서>를 읽으면서 나는 뭘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했다. 책 내용을 통틀어 계속적으로 강조하는 것들을 뽑아 봤을 때 위와 같은 한 문장으로 정리를 하게 됐다. 무엇이든 밑바탕을 잘 그리고, 주춧돌부터 잘 세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기 위한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철저한 자기 수양이다. 자신에게 가장 엄격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타인의 부족함을 말하고 헐뜯기 전에 자신을 다잡는 것이 먼저다. 내 내면을 먼저 돌아보고 솎아내며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일이 가장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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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기 수양은 완성이 아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의 출발점이다. 배우고 생각하고 성찰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그쳐버린다면 내가 알고 있음을 증명할 수 없다. 내가 정말로 알고 있다는 것은 나의 행동에서 드러난다. 나의 내면을 외부로 표출시키는 것은 과정이고, 과정이 없다면 완성 또한 없다.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면 용기가 없는 것이고 애초에 진정한 앎이 아니다. 외워서 기억해내기는 쉬울 테지만 잘 알고 행동하는 것은 어렵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람의 도리를 알고 수양하고 행동하면 이상을 실현하거나 사람으로서 완성될 수 있을까? 완성될 수 없는 일에 매여 있다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것은 각자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마음을 먹을 것이냐에 따라 각자의 답은 달라지리라. 나의 대답은 이렇다. 어차피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완벽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이 책은 이미 담고 있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사람답게 살겠다는 그 마음에 따라 행동하고 싶다. 기약은 없지만 완성을 묵묵히 바라보며 사는 노력 자체만으로,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는 선한 마음을 할 수 있는 한으로 발휘하며 더불어 살려는 노력을 하는 것에서 서서히 사람답게 사는 마음, 사람답게 사는 모습을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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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다. 인지 부조화, 자기 합리화라는 말도 있지 않나. 사람들은 아닌듯해 보여도 자기 자신에게 가장 관대하고 자신에게 좋든 나쁘든 편안한 쪽으로 기울게 된다. 그래서 <사서>는 일상 속 철저한 자기 수양을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으로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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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과오에 대해서 많이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던 터라, 나는 실제로 변하지 않았을까 희망을 가져봤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는 자만이었다. 나 자신의 결점 때문에 그토록 힘들어했는데도 어째 한 치도 나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겸손하지 못하고 기세등등했던 내가 참 어리석다 생각하며 부끄러워졌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변하고 싶다면 죽는 순간까지 자신을 끊임없이 담금질해야만 하겠구나 생각하며 두려워졌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풀어주는 것과 스스로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대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을 텐데, 그 균형을 잡는 것 또한 참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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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고 끝은 알 수 없고, 그러한 상황이 답답하고 어렵다고 포기한다면 영원히 아무것도 변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답게 살기는 어렵다. 어렵고 힘든 상황이므로 더더욱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의 삶이 ‘옳은 길’에 가깝다고 본다. 누구의 감시도 없는 일상 속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갈고닦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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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지속성 있게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스리고 타인을 사랑으로 대해야 조금씩이나마 내가 변해갈 수 있다. 세상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행동은 또 다른 행동으로 연결되고 하나의 영향력은 또 다른 영향력으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실제로 남도 변하고 세상도 변할지의 여부와 그 긍정성과 부정성은 바로 드러나지는 않을 일이다. 하지만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아래 책에서 발췌한 부분을 통해 더 이상의 말은 생략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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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두고 읽는 3000년 지혜의 경전, <사서>


끝없는 자기 수양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통해 더 발전할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고전의 지혜’라는 말이 떠오르던 책이었다. 마음이 어지러울수록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느낄수록 우리는 고전을 찾아 무엇이든 질문하고 답을 구해야 한다. 그것이 모두 정답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조언을 줄 수는 있다.

앞서 유교를 한껏 욕하고 싶다는 불순한 마음으로 책을 들게 됐는데, 유교에 대한 오해가 조금은 풀린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시대착오적이고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해왔다. 지배자의 입맛에 맞는 논리이고, 주어진 역할이 아니면 다른 것은 할 수 없게 사람을 꽁꽁 묶어놨다고 생각했다.

특히 각자의 분수와 처지에 맞게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등장할 때마다 기분이 나빴다. 태어난 그대로 그 처지에만 만족하면서 살라는 것 같아서. 어떠한 욕심도 내지 말고 태어난 그대로 살라는 말 같아서. 과거에는 성별과 계급에 따라서 미리 정해둔 역할 행동이 많았으니까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을 거라고 추측하면서도, 현대인으로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불만을 져버릴 수 없었다.

책의 뒷부분을 읽어나가면서도 불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다른 관점에서 내 멋대로 해석해버려야 그나마 마음이 시원할 것 같았다. 그래서 고민을 해봤다. 이를 현대식으로, 그러나 <사서>의 뜻을 가장 잘 반영해서 생각한다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나는 그 문장을 이렇게 해석했다. 현대 사회에서 각 개인에게 주어진 역할과 행동이란 자기 자신이 가장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을 하는 것, 그를 통해 가장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행동을 말하는 것이고 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요구한다고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상황은 물론 현재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현재에는 그 디테일들이 계속해서 변해가고 있다. 과학이나 기술의 발전도 그렇거니와 인간뿐 아니라 전 생명에 대한 관점도 서서히 변해가는 것도 세상이 바뀌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조금씩 변해가고 있고, 그렇다면 그 세상에 맞춰 해석도 조금씩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변화에 따라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좋은 내용을 다르게도 바라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때의 상황과 지금은 분명히 차이도 있는데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만을 고집한다면 득보다는 실이 더 클 것이다. 그리하여 ‘고전을 현대 사회에 맞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이것이 이 오래된 지혜의 경전 <사서>를 읽는 우리에게 남겨진 고민이다. 좋은 내용을 두고 이상하게 다툼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현실에 비추어서 조금씩 바꿔나가야 공자님도 맹자님도 그의 제자들도 참으로 뿌듯해하시지 않을까.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했던 사람들이니까.

10대에 입시를 위해 공부하게 된 유교 사상과, 20대에 두꺼운 책으로 접한 유교 사상은 각각 다른 생각을 나에게 남겼다. 지금의 나의 경우에는 자신을 수양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에 초점을 맞춰 책을 읽었다. 군주나 부모의 도리에 대한 부분은 내가 아직 되어본 적이 없으니 잘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지위나 상황이 변한다면 이 책도 또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0대, 40대, 50대, 60대, 더 오래 산다면 100세(?)가 되어 읽게 될 <사서>는 나에게 어떤 생각을 남길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이 글을 다시 돌이켜봤을 때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주자연의 섭리나 알찬 본성은 자기를 완성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만물을 완성하는 바탕임을 자임한다. 자기를 완성하는 것은 타자에게로 달려갈 사랑과 열린 마음을 갖추는 일이고, 타자를 완성하는 것은 타자와 함께 어울리려는 지혜이다. 이는 사람의 본성이 지닌 덕성으로,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 우리 모든 사람이 만나서 더불어 가는 삶의 길이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 가장 알맞게 쓰고 적절하게 조치해야 한다.

(721p)




[심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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