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클라리스에게
우리에겐 아직 더 많은 연대와 기회가 필요하다

이렇게 매력적인 수사관이
방문한 건 처음이네요.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클라리스에게 소장이 건넨 첫인사다. 여성, 그것도 어리고 아름다운 클라리스는 사건에 정식으로 파견된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동등한 동료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그들에게 클라리스는 '수사관' 혹은 '동료'이기 이전에, "여자"다.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보이는 갈등 구조는 '살인마 VS FBI'지만 한 꺼풀을 벗겨내면 주인공 클라리스가 마주한 장애물을 볼 수 있다. 바로 공기처럼 그녀의 주변에 자리 잡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 구조다. FBI로서 겪어야 할 1차적 시련이 남자들이 보내는 이상야릇한 "시선"이라니. 코미디가 따로 없지만 그건 현실이다.
수사 과정 중 만나게 되는 수많은 남자들은 클라리스가 '여성'이며 '아름답다'는 사실에만 관심이 있는 듯 보인다. 노골적인 추파를 던지는 동료들과 클라리스의 존재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보안관들. 심지어 직속상관은 성폭력 범죄에 대한 토의에서 그녀를 배제시키기도 한다. 여자와 그런 대화는 불편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클라리스는 그 자리에 엄연한 정식 수사관으로 참여했는데도 말이다.


▲ KBS <연예가중계> 김서형 인터뷰 中
'쓰앵님' 혹은 '김주영쌤'으로 시청자들에 자신의 완벽한 연기 세계를 각인시킨 배우 김서형은 KBS <연예가중계>에 출연하여 눈물을 보였다. 과거 <아내의 유혹>에서 '신애리'라는 독보적인 캐릭터로 이름을 알렸지만, 강한 이미지 때문에 그 뒤 1~2년간 대본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눈물 맺힌 김서형의 눈을 들여다보며 시청자들은 모두 생각했을 것이다.
"저런 배우가 일자리가 없으면 도대체 누가 연기를 하지?"
한동안 여배우가 연기할만한,
아니 여자들이 나오는 작품이
아예 없어서 서러웠다.
- 염정아 (배우)
더 많은 연대와 기회

여성 배우들에게 주어지는 역할이란 어릴 땐 여자친구, 나이가 들면 어머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여성에겐 두 가지 역할밖에 없는 것처럼. 하지만 아름다우면 로맨스물을 찍어야 하고, 아름답지 않으면 엄마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여성 배우의 일은 아니다. '엄마'라는 역할에 정해진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고민 없는 이해와 여성 배우를 그저 외모로만 평가하는 행동들이 바로 여성 배우들 앞에 놓여있는 장애물이다. FBI 요원으로서 클라리스 앞에 놓여있던 장애물이 그녀를 그저 '여자'로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이었듯이 말이다.
하지만 <양들의 침묵> 속 클라리스는 결국 스스로 해낸다. 치열하고 악독하게, 남성 중심의 FBI 사회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준다. 폭력과 권력이 아닌 진솔함과 연대로.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클라리스는 모든 편견과 장애물을 극복한다.
그런 클라리스처럼 여성들은 연대하고 나아간다. 그 자리에 머무르며 좌절하지 않는다. 배우 문소리는 직접 메가폰을 잡아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를 만들어 "한국 영화는 죄다 형사 아니면 조폭이지"라는 대사로 목소리를 높였으며, 2018년 한지민이 이뤄낸 <미쓰백>이라는 쾌거, 그리고 <허스토리>의 등장은 한국 여성 서사의 큰 한 걸음이 되었다.
상대적으로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으로 활약하는 영화가 적다 보니
이런 캐릭터를 맡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 한지민 (배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