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홈그라운드

글 입력 2023.11.1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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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QUEER My Place

 

 

<홈그라운드>는 지금껏 왜곡되고 지워져 온 한국 레즈비언의 문화사를 아카이빙한 최초의 영화다. 1970년대 퇴폐 소굴로 낙인 찍힌 명동의 ‘샤넬다방’부터 2000년대 아웃팅 불안에 시달렸던 10대 레즈비언의 성지 ‘신촌공원’, 1996년 오픈해 오늘날 이태원에서 명맥을 잇고 있는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바(Bar) ‘레스보스’까지. <홈그라운드>는 혐오와 억압을 피해 탄생한 세 공간을 중심으로, 당대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핫플로 명성을 떨친 역사적 기록과 그곳을 향유했던 사람들의 생생한 기억을 드라마틱하게 펼쳐낸다.


영화 <홈그라운드>가 펼쳐낸 레즈비언 문화 타임라인의 중축에는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바(Bar) ‘레스보스’가 있다. 이곳은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여성 이반 권리 운동 단체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의 전신이자,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독자 조직인 ‘한국여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의 멤버들이 창립했으며, 1996년 마포구 공덕동에 첫 둥지를 틀었다.

 

‘레스보스’(Lesvos)라는 상호는 기원전 7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여성시인 사포가 살았던 섬의 이름에서 따왔다. 사포는 이 섬에서 여성 공동체를 이뤄 살면서 여성들 간의 사랑을 노래한 시를 자주 썼기 때문에 당대 동성애자라는 설이 있었으며, 여성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단어 ‘레즈비언’(Lesbian)이 여기서 유래했다.


‘레스보스’ 오픈 이후 반응은 가히 열광적이었다. 자신들만의 장소를 찾아 헤매던 수많은 레즈비언들이 ‘나’ 자신을 찾아, ‘우리’를 찾아 모여들었다. 그들에게 ‘레스보스’는 혐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안식처, 해방구, 아지트였으며, 퀴어라는 정체성 하나만으로 환영받고 다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곳이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상태에서 젠더를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낙인을 벗어내는 주체성의 장소, 즉 내가 오롯이 나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뜨거운 열기에 힘입어 ‘레스보스’는 당시 청년문화의 메카 신촌으로 확장 이전했고,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는 성황을 이뤘다. 신촌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주역이 바로 ‘레스보스’의 3대 사장 윤김명우다.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레스보스’ 4층 매장부터 대로변까지 대기줄이 이어졌고, 1차 노래방에서 전화를 기다리다 튀어나가는 2차 파티장소, 요즘말로 웨이팅 1~2시간은 기본인 핫플 그 자체였다. 이후 신촌 지역에는 수십개의 레즈비언 공간들이 탄생하게 됐으며, 현재 ‘레스보스’는 2019년 12월 이태원에서 재오픈해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윤김명우는 2000년경 언론 매체에서 당당히 커밍아웃한 인물로, ‘레스보스’의 사장이자, 퀴퍼 대부,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드랙킹 연극배우 등 수많은 수식어를 지닌 한국 퀴어씬의 레전더리 아이콘이다. 그는 ‘동성연애자라고 입 뻥긋도 못 할’, ‘레즈비언한텐 불모지였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술 한 잔을 마시더라도 마음을 열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필요하다는 신념 하나로 살아왔다. 명절이면 갈 곳 없는 퀴어들을 위해 음식을 한가득 준비하고,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어도 가게 운영을 중단하지 않았다.

 

‘레스보스’는 ‘나’ 자신을 찾아 ‘우리’를 찾아 모여든 이들에게 혐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안식처, 해방구, 아지트였으며, 퀴어라는 정체성 하나만으로 환영받고 다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곳이었다. 즉, 물리적 공간의 의미를 넘어 많은 이들의 삶을 지탱해온 ‘소통’과 ‘연대’의 연결고리인 것이다. 숱한 고난과 역경에도 그곳을 꿋꿋하게 지켜온 윤김명우가 “어서 와! 명우 형이 여기 있다!”라고 외치는 메인 예고편의 마지막 대사가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위로’와 ‘응원’의 말로 다가오는 이유다.


"시대를 뛰어넘은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필요성과 자생력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영화"라는 호평 속에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신진감독상,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전 세계와 전 세대를 초월해 퀴어의 창을 연 다큐멘터리”(Film Carnage), “시대와 문화를 넘어 향수를 자아내는 따뜻한 친밀감”(Easter Kicks), “윤김명우의 활기찬 에너지는 전염적!”(AZ Magazine), “퀴어의 계보학, 공간의 계보학을 되짚어볼 수 있는 소중한 기록”(정의당 인천시당 성소수자위원회) 등 대한민국을 넘어 북미, 유럽, 아시아 지역 영화제로부터 뜨거운 러브콜과 찬사를 받고 있는 수작이다.


한국 최초로 레즈비언 문화의 타임라인을 펼쳐낸 SINCE 1970~NOW 퀴어풀스토리 <홈그라운드>는 12월 6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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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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