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성을 부정하고 싶을 때_소설 『갈증』

스포 및 잔인한 묘사가 있습니다.
글 입력 2018.12.1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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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갈증』은 한 편의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시작된다. 잔인하게 죽은 세 명의 시체 앞에 등장한 인물은 주인공 전직 형사 후지시마. 그리고 곧 이혼한 아내로부터 딸의 실종을 알리는 연락을 받는다. 형사 일로 밤낮 없이 바빠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던 아빠와, 상사와 바람이 나 딸에 신경도 쓰지 않았던 엄마는 딸 가나코의 실종을 계기로 딸에 대해 그 누구보다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후지시마는 혼자 가나코를 추적하기 시작하고, 그녀에 대해 놀랄 만한 사실을 자꾸 발견해간다.




악마들의 진흙탕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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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소설은 막장 중 막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바람, 마약, 매춘, 조직폭력배, 살인, 강간, 근친상간 등 들어갈 수 있는 모든 막장 요소는 다 들어갔다. 그런데 마냥 개연성 없는 막장 소설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세밀하게 쌓여온 등장인물의 감정선이 충분히 이해가 가기 때문이다.

 

후지시마는 딸의 실종을 추적하며 딸에 대해 몰랐던 부분만 발견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몰랐던 모습까지도 발견한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기 싫어서 모른 척 했던 본인의 추악하고 더러운 모습. 툭 하면 술에 절고, 이성을 잃고 폭력을 휘두르는, 그래서 한 번은 아주 어렸던 딸까지 그 욕망의 대상으로 삼아버렸던 과거를. 후지시마는 딸을 쫓으면 쫓을수록 그녀를 상상하며 욕정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며 딸에게 미친 듯이 집착하기 시작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악인이 누구냐고 따지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일단 이 소설엔 선한 인물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악인들은 모두 인간 말종 쓰레기 수준이어서 누가 가장 나쁘냐고 물으면 누구의 이유가 가장 개인적으로 납득이 안 가느냐를 따져야하는 이상한 상황에 이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어린 소년소녀를 약에 절게 해 강제로 범한 조나 고위층 인간들도, 자기 아이 병원비를 위해 무고한 몇 사람이나 죽인 오사나이도, 술과 약, 매춘은 기본이요 살인도 즐긴 아포칼립스 멤버들도 모두 쓰레기지만, 사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욕 나왔던 인물은 주인공인 후지시마다.


결국 후지시마 때문에 가나코는 평생 깊은 어둠을 끌어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고, 그 깊은 어둠으로 수많은 아이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후지시마라는 악마가, 가나코라는 악마를 만들었다.

 


 

악마가 낳은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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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현재의 후지시마 시점에서 딸을 추적하는 이야기와 과거의 세오카라는 소년 시점에서 가나코의 어둠에 빨려 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가 교차되며 전개된다. 특히 세오카 시점에서 전개되는 아포칼립스 이야기는 학교폭력(이지메)이 귀엽게 보일 정도라 소름이 돋는다.

 

주변인이 모두 악마라고 생각하는 가나코는 그러나 오가타라는 소년과 함께했을 때만은 그 깊은 어둠에서 빠져나온 듯 행동했다. 티 없이 행복했고 맑게 웃었다. 오가타는 여자처럼 생기고 약해 보여서 학교에서 괴롭힘을 많이 받았지만, 그녀는 오가타가 자신을 구원해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오가타는 아포칼립스 멤버에게 재수없게 걸려 조의 먹이가 되었고, 결국 자살을 택하고 만다. 가나코는 그의 죽음에 그리 슬퍼하지도 않았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속으로 이 소설 전체를 이루는 악몽을 천천히 그리고 철저히 계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나코는 자신을 짝사랑하는 세오카라는 소년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세오카가 아포칼립스에서 당한 잔인하고 끔찍한 일은 그저 몇 대 맞고 무시당하고 욕먹고 물건이 훔쳐지는 정도의 학교폭력과 수준이 달랐다. 철저히 바닥까지 망가진 그는 자신을 조롱한 안도라는 소녀의 귀를 자르고 얼굴에 상처를 내 자살까지 몰고 간다. 그리고 자신을 망가뜨린 최종 복수의 목표인 가나코를 찾아가지만, 결국 가나코를 죽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총에 맞고 만다. 그는 자신을 파멸시킨 아름다운 악마에게 키스를 받으며 눈을 감는다.

 



권선징악? 그런 거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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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은 결말에 권선징악이 없다. 마지막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겨우 가나코의 행방이 밝혀짐으로써 이야기에 매듭이 지어지지만, 마무리가 됐다는 느낌은 전혀 아니다. 깨지고 부서지고 상처나며 결국 쓰레기통에 들어가고 나서야 멈추게 된 마무리는 찝찝함과 찜찜함만을 남긴다. 사실 생각지도 못한 범인이 등장해서 좀 많이 놀라긴 했지만, 어떤 다른 누군가 가나코를 해쳤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녀는 혼자 멈출 수 없어 계속 굴러가는 악의 굴레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이제 됐다”고 독백했던 걸까? 끝없는 어둠의 숲을 걸어도 걸어도 같은 자리만 맴도는 느낌이었을까.

 

*


『갈증』은 앉은 자리에서 세 시간 만에 훌쩍 읽어내려간 소설이었다. 정말 몰입도 있었다. 킬링타임용으로 강추하는 소설. 더러운 인간의 욕망과 상처, 아픔, 잔인한 세계를 너무 현실적으로 그려내 더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소설. 다만 읽고 난 후 나도 암흑 속에 깊게 빨려 들어간 것 같은 기분 나쁨을 느낄 수 있으니 빨리 헤어나올 자신이 있는 사람만 읽어보길 권한다.



[김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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