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Say Menstruation! [문화전반]

생리, 감추지 않아도 괜찮은 이야기
글 입력 2018.12.0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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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리컵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을 때 친구들로부터 돌아오는 반응은 두 가지였다.


1. 헐. 어때? 좋아? 안 아파?

2. 넌 진짜... (할 말을 참으며) 그래도 좀 그렇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1과 같은 반응을 보였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2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생리컵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은 민망하다는 것부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것까지 다양하다.


생리컵이 민망하다면 그 사람은 아마 '생리' 자체를 아직 부끄럽고 숨겨야 할 대상으로서 인식하고 있을 확률이 크다. 생리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도 부끄럽고, 남자 직원이 근무하는 편의점에서는 생리대 사기가 망설여지며, 생리대를 손에 떡하니 쥐고 화장실로 향하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이런 반응을 보이는 여성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대다수를 차지한다. 당연하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생리를 생리라 부르지 못하고 자랐으니까. '마법의 날'이라든가 '그날'이라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우리는 생리를 불러왔다.


하지만 생리, 그러니까 월경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부끄러울 일이 아니다. 그저 임신이 되지 않아 두꺼워진 자궁 내막의 일부가 몸 밖으로 배출되는 생리 현상일 뿐이다. 매일 전 세계 여성의 1/4가 생리를 하는 중이라고 한다. 전 세계의 평균 13세~ 50세의 여성이 완경까지 매달 겪어야 하는 이 생리 현상은 우리의 삶과 밀접하기에 더더욱 끊임없이 말해져야 한다. 그리고 여기, 생리에 대해 솔직히 말하는 네 개의 영화, 방송, CF, 다큐멘터리가 있다.





1. 우리들의 20세기_ Say Menstruation!





영화 <우리의 20세기> 속 애비 (그레타 거윅)는 하숙집의 저녁 식사 테이블에서 '생리 중'임을 밝힌다. 그리고 돌아온 언짢은 시선. 네가 생리한단 얘기를 꼭 해야 돼? 도로시는 굳이 그런 정보를 이 자리에서 우리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다며 애비를 질책한다. 그러자 애비는 어깨를 들썩이며 말한다.  It's not a big deal. 생리는 그냥 생리라고. 그녀는 10대 소년인 제이미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네가 나중에 여자와 관계를 갖고 싶다면, 여성의 질은 생리를 한다는 사실에 편해져야 해. 그리고 애비는 제안한다.


Say menstruation!

(생리라고 말해봐요!)


생리라는 말이 왜 어색해야 하죠? 다 같이 따라 해봐요. menstruation! 부끄럽고 멋쩍어하지 말고, 기쁘고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말해보자고. menstruation.  menstruation.  menstruation. 저녁 식사 자리에서 느닷없이 시작된 생리 타령은 조금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유쾌하고 묘한 해방감을 준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이 말을 숨겨왔던가. 생리대를 빌리고 빌려주는 여성들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그 모습은 마약을 밀매하는 갱스터처럼 비장하고 은밀하다. 반드시 빌려주고야 말겠다는 사명감과 동시에 생리대를 건네는 손길은 재빠르고 내밀하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짧은 순간에 생리대는 한 사람의 가방에서 다른 사람의 겉옷 주머니 속으로 전해진다. 생리대, 즉 '생리'는 그렇게 은밀한 곳이 어울려왔다. 저녁 식사 자리의 남녀가 한데 모인 자리에서 꺼내질 만한 일은 아니었다. 보통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생리를 하고 있고, 또 했었으며, 할 예정인데도 말이다.




2. 냄비받침 (프리스틴 편)_생리 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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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KBS의 예능 <냄비받침>에 출연한 걸그룹 프리스틴은 '걸그룹만이 갖는 고충'에 대한 질문에 생리라고 답하여 화제가 되었다. '생리'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전까지 논의된 적 없던 '걸그룹의 생리'라는 화두를 제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의가 있었던 방송. 이 언급 이전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걸그룹도 생리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저 TV 화면 속 산뜻하게 웃는 얼굴과 무대 위 시원시원한 춤을 감상했을 뿐 그들도 우리처럼 매달 불편하고 성가신 일주일을 보내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는 여자 아이돌들은 늘 웃고 있으며, 짧고 옅은 색의 옷을 걸치고, 과격한 춤 동작에도 주춤하지 않는다. 활동 기간과 생리 주기가 겹치거나, 옅은 색의 무대 의상을 입어야 하는 날, 혹은 많이 아픈 날에 그들이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지는 그 어떤 곳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그들 생활 속 가장 큰 고충 중 하나임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3. 니트라 케어_그날이 도대체 뭔데?





최근 전파를 타고 있는 한 생리대 광고는 기존의 생리대 광고와의 차별점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그날에도 자신 있게,라고 외치던 흐름에서 벗어나 나트라 케어는 '그날이 도대체 뭔데?'라며 되묻는다. 그리고 덧붙인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 그게 생리야."


'그날'이라는 말로 한 꺼풀 싸여있던 생리라는 단어를 전면에 꺼내놓은 이 광고는 시의성이 크다. TV 광고에서 또렷하게 들려오는 '생리'라는 단어는 남녀노소 함께 menstruation을 외쳐대는 <우리의 20세기> 속 저녁식사 테이블만큼이나 파격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생리'가 갖는 위치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은밀하고 감춰져야 할 대상에서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으로. 마치 '섹스'라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여 화제가 되었던 SBS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tvN의 <로맨스가 필요해>, JTBC의 예증 <마녀사냥> 등을 지나, 훨씬 자유로워진 성에 대한 담론과도 양상이 비슷하다. 생리에 관한 담론 역시 점점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4. 피의 연대기_본격 생리 탐구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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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리에 대해 더 자주 말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월경 용품 역시 마찬가지다. 2018년 1월 개봉한 <피의 연대기>는 '여성의 몸과 생리에 관한 범 시대적, 범세계적 탐구 다큐'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이전에 없던, 왜 이전까지 이런 얘기를 그 누구도 하지 않았는가 의문을 갖게 하는 구성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다.


우리나라 여성의 92%는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일회용 생리대로 인한 부작용을 호소한다. 피부염, 질염, 생리불순, 생리통 등등.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그저 생리대의 브랜드만 바꿀 뿐이다. 각 브랜드는 저마다 '순한', '자극 없는'의 문구를 강조하지만 결국 모두 화학용품이다. 흡수력을 높이고 깨끗한 흰색을 뽑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화학 물질들로 인해 몇 기업들은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최근에는 모 브랜드의 일회용 생리대에서 발암 물질이 검출되기도 했다. 이렇게 일회용 생리대의 수난은 끊이질 않고 여성들의 불안감 역시 잦아들 날이 없다.


이런 불안감에 응답하듯 <피의 연대기>는 생리대의 대용품들을 수없이 보여준다. 해면 스펀지 탐폰, 일회용 생리컵, 면 생리대, 생리컵 등 예로부터 여성들의 생리를 도와준 온갖 용품들을 소개하며 생리의 길고 긴 역사를 보여준다. 김보람 감독, 그녀의 어머니와 할머니. 3대에 걸친 생리에 대한 담론은 거침없이 솔직하며 유쾌하고 공감을 산다. 생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부터 생리로 인해 문제를 겪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까지. '생리'라는 화두를 다룬, 이보다 완벽한 다큐멘터리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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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컵을 쓰면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생리혈에 대한 인식 변화'이다. 다 쓴 생리대를 휴지에 둘둘 싸 쓰레기통 가장 깊숙한 곳에 처박아 두던 과거의 내가 느끼기에 생리혈은 냄새나고 더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생리컵을 쓴 뒤 내 손으로 직접 피를 받아 색과 양을 확인하며 깨달았다.


"더럽지 않다."


생리컵에 담긴 피에서는 그저 칼에 베인 손가락에서 흐르던 피와 같은 향이 났다. 내 예상처럼 많은 양의 피가 쏟아지지도 않았으며, 냄새가 나지도 않았고, 색 역시 다른 피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피가 비칠까 봐 휴지로 생리대를 둘둘 싸맬 필요도 없었다. 피를 버리고 컵을 물에 씻어주면 깨끗해진다. 예쁜 보라색 주머니에 담아 보관도 할 수 있다. 내 생리용품과 잘 어울리는 곳은 쓰레기통이 아닌 내 방 서랍이 되었다.


내 몸과 이렇게 친해질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변화다. 주기가 되면 자궁 경부의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 직접 확인해보는 일도, 내 몸을 내가 직접 만지는 일이 어색하지 않다는 일도 놀랍고 기분 좋은 경험이다. 타인의 손이 아닌 내 손에 익숙해지는 것. 내 몸을 내가 제일 잘 알게 되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이렇듯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내가 되는 일이다. 나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은 내가 제일 잘 아는 일.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터부시되어야 할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이쯤 되면 '생리'라는 말을 입에 담는 건 그리 어렵지도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우리의 20세기>속 애비의 말과 행동을 꼭 닮은 내가 보인다. 생리 그거 별거 아닌데. 우리 다 생리할 거고, 하고 있고, 했었잖아요. 다 같이 말해볼까요? 생리라고.


Say menstr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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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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