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조선 대표 요부 말고 '예인' 장녹수, <궁:장녹수전>

글 입력 2018.09.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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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눈에 드는 것은 조선시대의 복권이었다. 왕은 이론상으로 하늘이었으나 현실에서는 역시 사람이었고 그의 마음을 얻는 자는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수많은 조선의 남녀가 그 복권에 목을 맸다. 젊은 양반들은 고개를 구비구비 넘어 과거시험을 보러갔고, 신하가 되면 힘을 얻을 수 있는 노선을 찾기 바빴다. 백성을 위하는 신하와 누구든 우러러보는 부와 명예를 위하는 신하, 어느 쪽이 더 많았을까? 궁녀들 역시 묵묵히 일하다가도 왕의 승은을 입으면 하루 아침에 팔자가 달라졌다.

이쯤 되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왕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 한번쯤은 꿈꿔볼만 한 일은 아닌가? 그리고 말도 안되는 확률로 현실이 되었다면 무슨 일을 다해서라도 그를 놓치지 않고 싶지 않겠나?


궁 장녹수전 포스터_웹용_국문_0308.jpg
 

정동극장에서 다루는 <궁: 장녹수전>을 볼지 말지 고민한 부분도 이 부분이었다. 요부의 모습보다는 예인의 모습을 강조하겠다는 작품의 의도가 좋았다. 장녹수는 어딜가나 조선시대를 주름잡는 '요부(妖婦)' 혹은 '악녀'(惡女)로 불린다.

신기하지 않은가? 지아비 부(夫) 한자를 쓰는 '요부(妖夫)' 혹은 '악남(惡男)' 같은 단어를 본 적 있는가? 심지어 그런 단어는 자주 쓰지도 않는다. 한자 '요'의 경우 한자 자체에 이미 여자가 부수로 들어가서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장녹수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면 만큼이나 그녀의 각종 능력이 등한시된다고 본다. 수많은 예인을 보고도 그녀를 오래 곁에 두게 할 만큼 예인으로도 특출났으며, 연산군의 심리를 파악하는 영리한 분석가라고도 본다.


4장_숙용장씨_장녹수.jpg
 

상황을 보자. 왕이 나라를 잘 다스릴 의지가 전혀 없다. 특출한 예인이라고 그녀가 무엇을 어쩔 수 있겠는가? 그는 어머니인 폐비 윤씨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연약한 멘탈의 소유자였다. 수많은 의무와 책임을 강요하며 이해관계에 사로잡힌 신하들을 벗어나고 싶어 죽이기 시작할 정도로 극도로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연산군이 마음의 병이 있다는 것은 누구든 인정할 것이다. 그가 폭군처럼 느껴지면서도 한켠으로는 오늘날 들어보곤 하는 극심한 번아웃 증후군, 각종 트라우마가 만든 심각한 공황장애 등이 합쳐진 경우는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왕이란 건 직업으로는 참 양날의 검 아닌가. 모든 걸 다 갖고 있어보이지만 동시에 모든 것에 짓눌려 살고 있으니. 그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파르르 떨리는 가시 같은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면 그녀 입장에서는 더 나아지지는 않는다 해도 그에게 맞춰주고 싶지는 않았을까.

게다가 장녹수는 중전이 아닌 후궁이었다. 중전에게는 국모처럼 대우해주며 조선의 미래를 꿈꾸라 하지만 후궁에게 조선을 이끌어달라 부탁하지는 않는다. 노비 출신으로 고생하며 살았던 시절을 생각하면 후궁이 되어 못 가져본 권세를 누리기도 바쁠 것이다. 그녀가 드라마틱한 비극으로 목숨을 잃은 것은 맛본 권세에 취해 다른 이들까지 괴롭혀서일지도 모르지만 그 시절 폭군을 거들어 나라를 바로잡지 못한 것을 그녀의 몫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녀의 목적은 궁에서 살아남는 것이었지, 왕의 마음을 바른 정치로 이끄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목숨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연산군에게 입바른 말을 했다간 장녹수 그녀 역시 역사에 이름 한글자 이렇게 대차게 남겨보지 못했을 것이다. 모르지, '흥청의 가무에 능한 동안의 기생 하나가 왕에게 입바른 말을 하다가 능지처참당했다' 정도면 몰라도.


2장_기녀_녹수의부채춤.jpg
 

장녹수를 이렇게 열심히 대변하고 있다니 <궁:장녹수전>을 볼 만반의 준비는 된 듯 싶다. 그렇다면 왜 고민했는지가 궁금할 수 있겠다. 걱정되었던 건 캐치 프레이즈인 조선시대의 '위험한' 신데렐라'라는 문구였다. 하룻밤 사이에 연산군의 마음을 얻었으니 신데렐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데렐라라면 노력보다는 마법처럼 외부의 힘으로 좋은 일이 생긴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얻지 않았다. 왕의 약점을 노리기 위해 고민했고 연산군은 물론 노비일 때 주인이었던 제안제군이 보기에도 대단하다고 느낄 정도로 예인으로도 빛나고 있었다. 기예가 날 때부터 완성형이었을리 만무하다. 작품에 어울릴진 모르지만 장녹수는 '노력형 신데렐라'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한다.


4장_입궐한녹수_가인전목단춤.jpg
 

장녹수에 대한 말, 말, 말. 익히 들었다. 누구의 딸인지, 그녀가 어떻게 흥해서 망했는지, 연산군과 그녀 덕분에 흥청망청이라는 단어가 생겼다는 것까지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렇게 알고 있는 존재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무언극으로 진행한다는 점이 기대가 된다. 교방무, 가인전목단, 선유락 같은 생소한 이름의 춤이 기다리고 있다. 기녀들이 배우는 춤, 화병을 들고, 뱃놀이의 시동을 걸듯 추는 춤이, 그리고 말 없이 조용한 행동들이 '예인' 장녹수를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조선의 3대 요부나 악녀에는 빼놓지 않고 들어가면서  '3대 예인'으로는 기억되지 못하고 이는 현실에서 수많은 말에 가려져 있던 그녀의 모습이 궁금하다.





궁: 장녹수전
- 세련된 전통공연의 탄생! -


일자 : 2018.04.05(목) ~ 12.29(토)

시간
화-토 4시
일, 월 공연없음

장소 : 정동극장

티켓가격
VIP석 60,000원
R석 50,000원
S석 40,000원

주최/제작
(재)정동극장

관람연령
48개월이상 관람가능

공연시간 : 75분




문의
(재)정동극장
02-751-1500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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