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필요한 폭력성에 대하여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1.22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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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내가 영화관에서 마지막으로 관람한 영화는 < 1987 >이었다. 여러 가지로 기대하고 있던 영화였기에 영화에 관한 후기나 평들을 찾아보지 않았고, 세부적 내용에 관한 정보 없이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등장한 몇몇 장면으로 인해 나는 어두운 상영관에서 눈을 질끈 감고 고통스러워했다. 영화는 화장된 유골과 고문 등 죽음과 폭력에 관련된 장면들을 여과 없이 사실적으로 전시했고, 이러한 장면들은 내게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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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최근 한국 영화는 과도하게 폭력적이고 자극적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으며, 이와 같은 현상은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2016년 개봉한 < 귀향 >이다.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한 < 귀향 >은 개봉 당시 강간 등 폭력 장면을 직접 사용해 논란이 됐다. 당시 실제로 발생한 일이며 피해자분들께서 해당 사안에 관해 괜찮다고 하신 점과 상업 영화가 아닌 위안부 소재의 영화가 제작되고 상영된 것에 큰 의의를 두어야 한다는 이유로 영화에서 강간 등 폭력 장면을 재현한 것이 상관없다고 하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실제 피해자분들이 괜찮다고 하셨다'는 것은 이러한 사안이 2차 가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에 불과하다. < 귀향 >에는 어린 배우들이 참여했고, 폭력성이 짙은 장면들은 촬영에 실제로 임하는 배우들에게 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폭력과 강간 장면이 나온다는 것을 몰랐던 관객들 역시 정신적 고통을 받은 채 상영관을 빠져나왔다.

공포, 고어 등의 장르는 장르 특성 상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따라서 해당 요소들에 취약한 관객의 경우, 영화가 속한 장르를 보고 해당 영화들을 쉽게 걸러낼 수 있다. 그러나 < 귀향 >과 < 1987 >과 같은 영화는 고어 장르가 아니며, 게다가 단순한 상업 영화라기보다 역사적 소재를 다룬 만큼 제작 자체에 의미가 큰 영화들이기에 대한민국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영화들이다. 실제로 교육을 목적으로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영화를 찾는 3, 40대 관객들도 존재했다. 이처럼 남녀노소 모두가 선택할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은 제작 단계에서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성에 대한 고민 없이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누군가는 소재 특성상 폭력 장면은 불가피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16년 개봉한 영화 < 스포트라이트 >는 아동 성추행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성추행에 관련된 직접적인 장면 없이 충분히 피해자들의 고통을 담아내고 있다. 이를 보았을 때, 관련 소재를 간접 묘사하지 않고 직접 전시하는 것은 영화 연출자의 역량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폭력 묘사는 다른 소재의 영화들에서도 과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 영화계를 점령하고 있는 느와르 장르의 영화나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들 역시 그 특성상 폭력적인 장면이 나올 수밖에 없으나, 최근 들어 그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시체를 모자이크로 처리하고, 흉기로 가해하는 장면을 사용한 < 아저씨 > 역시 충분히 폭력적이고 자극적이었으나, 작년 개봉한 < VIP > 의 경우, 의미 없는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장면들로 구성돼 혹평을 받았고, 뒤이어 개봉한 < 미옥 > 역시 불필요한 폭력 장면과 노출 장면이 난무한다는 평이 많았다. 그리고 나 역시 최근 한국 영화들을 보고 나오는 길에는 좋은 영화를 봤다는 경쾌한 기분보다는 역겹고 불쾌한 기분을 더 많이 느꼈다.

식당에서는 알레르기 환자들을 위해 메뉴판에 알레르기 유발 성분의 유무를 명시해놓는다. 어쩌면 영화 역시 정신적 고통을 유발할 수 있는 소재들을 명시해놓는 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보다는 연출자들이 제작 과정에서 자신의 영화가 쓸데없이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것은 아닌지 검토해 더욱 많은 관객이 다양한 영화를 선택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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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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