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버지를 죽이지 않고 내 마음의 방에 넣는 법 -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아빠'

글 입력 2024.02.14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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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은 지 10년이 지났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는 연대 보증을 서고 어머니와 갈라섰고, 갈라선 후에도 나의 대학 등록금은커녕 제대로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 그때 나의 아버지는 죽었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죽은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라는 존재는 죽었다. 정확히는 내가 죽였다.

 

내가 실제로는 죽지 않은 아버지를 만나게 된 것은 아버지가 큰 병에 걸려 병문안을 해야 했을 때였다. 하지만 진짜 아버지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것은, 정신이 오락가락한 아버지가 19세 아이처럼 통 속에 자신의 시를 나에게 건네준 순간이었다. 내가 그것을 읽었을 때, 시는 더는 아버지의 사적인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내가 알고 있었던, 내가 안다고 믿고 심지어 죽여버리기까지 했던 그 사람은 아무도 알지 못한 사람 중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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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오늘 리뷰할 <이상한 나라의 아빠>의 전반부를 간단히 요약한 것이다. 나의 요약처럼, 이 뮤지컬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다시 만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의 플롯은 비교적 단순해 보이지만, 캐릭터에 깔린 하나하나의 감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보면, 깊은 좌절과 희망이 잘 묻어나오는 수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나'와 '아버지'다. 딸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쫓는 이야기지만(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독자의 상상에 맡긴 것으로 보일 정도로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어떤 가족 관계에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쫓는 것이 아니라, 꽁꽁 묶여있었던 아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는 이야기에 가깝다. 그렇게 만난 진짜 아버지의 모습은 자신의 모습과 닮아 묘한 공명을 만들어낸다. 개인의 비극을 다루면서, 가족이라는 틀로 그것을 이해하는 이 작품이 주는 감성은 그래서 정말 독특하다.

 

어떤 감상을 주건 이 작품에서 주요 소재가 되는 것은 '아버지'다. 처음 주인공이 병문안을 갔을 때, 아버지는 늘 그렇듯이 벽처럼 소통도 안 되고 어떤 마음인지 이해할 수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아버지는 더 살아갈 마음이 없어 보인다. 처방된 약을 먹지도 않고, 병원비로 쓸 돈은 모두 차를 사느라 탕진했다고 한다. 살아갈 의지조차 없이 등 돌려 눕는 아버지에 주인공은 좌절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뇌로 전이된 병 때문에 19살 시절로 돌아가면서 작품이 반전된다. 어린 시절 그는 실없이 웃고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시를 쓰는 것을 즐기는 인물이다. 비가 올 때 밖으로 나가 온몸으로 비를 맞고, 나중에 아내와 자식들과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그는 지금의 아버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인물이다. 주인공은 자신을 자신의 어머니로 착각하는 아버지와 어울려 놀면서, 자신이 알고 있던 아버지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퇴행한 상태에서 주인공은 아버지 역시 아버지에게 자신을 숨기라는 강요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장남으로서 자신의 꿈을 버려야 했고, 살아가기 위해 실없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되었다. 그것은 아버지에게 강렬한 저주처럼 죽지 않고 박혀 한평생 '자신을 영원히 숨기고 사는' 삶을 산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했다. 더는 시도 쓰지 않았고, 바보처럼 빗물 사이를 뛰어다니지도 않았고, 가족과 여행도 가지 않았다.

 

진짜 자신과 유리되어 만들어진 자기 자신은 삶의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다.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꼭꼭 숨기고, 볼품없는 자신의 삶을 더 살아갈 의지마저 없어졌다. 어쩌면 그는 자식의 삶을 완전히 파괴한 자신의 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딸과 아내로부터 언제든 돌변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영원히 봉인했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어떤 것이 진짜 아버지인지 고민하던 차에 갈라선 자신의 작품을 출품할 수 있는 기회가 닿는다. 한평생 자신의 앞길을 막았던 아버지 때문에 마지막 기회마저 날릴 판이었다. 그때 타이밍 좋게 얼마 지나지 않아 제정신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그녀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섞어 떠나라고 소리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집으로 돌아오려는 차에 타던 차, 아버지가 버스 정류장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된다. 주인공은 남은 병실에서 그가 꼬깃꼬깃 접어 전달한 시의 출처를 알게 된다.

 

그 시는 아버지가 버리지 못한 상자에 들어있었다. 거기에는 아버지의 일기와 어린 시절 썼던 시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상태로 깊은 구석에 숨어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진짜 모습이었다. 할아버지의 강요로 영원히 봉인당 해야 했던, 삶을 유일하게 느낄 수 있었던 아버지의 진짜 자신이 거기에 숨겨져 있었다.

 

상상 속에서 아버지에게 내려지는 사형판결을 뒤늦게 막아보려고 하지만 시계 토끼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늦었지만 주인공은 아버지가 지었던 시를 노래로 함께 이어 부른다. 아버지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그제야 현실에 드러낸다. 그는 그제야 살아가고, 경험하고, 느끼고 싶음을 노래한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심장이 그제야 공기와 온도를 느끼게 된 것이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죽은 후 자신의 동화 중 하나로 만든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열아홉 때 처럼 밝은 웃음을 지으면서 주인공에게 함께 여행을 가자고 이야기한다. 작품의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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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사실은 참 묘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상상 속에서는 사형 선고를 내릴 정도로 증오하는데, 아버지의 외로운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만큼 모질게 대하지도 못한다. 미운 가족을 몇 번이나 죽여버릴 수는 있지만, 또다시 마음 한쪽에서 다시 살려내서 아버지와의 좋은 부분은 영원히 죽지 않고 젊은 이상한 세계로 보내 영원한 삶을 살게 한다.

 

나는 19살 이후로 아버지가 그 자신으로 삶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었던 시간이 죽음 직전이었다는 아이러니한 표현을 좋아한다. 아버지가 마지막에서야 되살아났던 것처럼, 주인공에게도 아버지가 마지막에서야 되살아났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되살아났을 때, 주인공은 아버지의 다가오는 죽음을 예견하며 주인공이 시계 토끼의 시계도, 붉은 여왕의 잔혹한 사형선고에도 무력했다. 그래서 그런 아버지를 잊지 않기 위해 그를 영원한 젊음의 세계로 보관하는 장면은 가슴이 뭉클했다.

 

한편으로는, 주인공의 '이상한 세계'가 상당히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에게 그곳은, 아버지가 숨겨둔 어린 시절의 시처럼 그녀를 유일하게 살아있고 지탱하게 하는 곳이다(이 지점에서 두 캐릭터가 공명한다.). 처음 그 세계는 아버지가 읽어준 동화책에서 시작되었고, 유년 시절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싸움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세계였다. 현재의 그녀에겐, 팍팍한 삶에서도 빛바래지 않는 생명력과 창조력으로 표현된다.

 

그 세계에서 나온 인물들의 모습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여기부터는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지만, 각 인물이 세상의 불안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하는 일종의 가족 구실을 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도도새는 멸종되었지만 밝고 낙관적이다. 작품 내에서 그녀에게 어떤 선택을 하건 삶을 긍정할 수 있도록 설득한다. 나에게는 그러한 이미지가 좋은 어머니처럼 느껴졌고, 실제로 도도새를 통해 그녀는 아버지를 떠나건, 떠나지 않건 자신의 세계를 보호할 수 있었다. 좋은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가 비교적 명확하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

 

체셔 캣은 젊은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한 배우가 맡았다. 캐스팅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적용했겠지만, 개인적으로 '알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의 체셔캣은 그녀가 생각하는 아버지의 이미지와 잘 맞는다. 상상 세계 속에서 아버지는 매력적이지만 알 수 없는 존재고, 가까워지고 싶지만 사라질 것 같다.

 

그리고 이 작품의 주요 주제와 맞아떨어지는 시계 토끼는 주인공의 자리에 선다. 현실적인 불안과 흐르는 시간 속에서 상실할 것들을 마음속에 새는 주인공처럼, 토끼도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토끼는 때로 현실세계와 환상 세계를 오가며, 주인공에게 시간이 별로 없음을, 환상 세계에서는 재판이 일어남을 알린다. 시계 토끼는 전개에 따라 주인공의 내면 변화를 좀 더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장치다.

 

그리고 이 모든 인물이 있는 이상한 세계는, 주인공에는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세계였다. 그래서 그곳에 아버지를 들인다는 것은 참 감동적이면서 약간은 가슴이 아려오는 일이다. 체셔캣처럼 알쏭달쏭한 아버지가 아닌, 진짜로 경험한 살아있는 아버지가 가슴 안에 살아있다는 점은 감동적이고,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아픔과 부재를 보상하기 위한 일이라는 점은 약간 슬프다.

 

하지만, 그보다 아름다운 무덤이 어디 있겠는가.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다르게 영원히 그 세계 속의 주민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환상 세계를 긍정할 것이고, 그녀 안에서 쇠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면 아버지에게도, 주인공에게도 너무나 아름다운 결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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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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