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숨바꼭질은 소리가 필요 없다. [영화]

글 입력 2024.05.0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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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도 없이


 

[성실한 땀방울, 내일의 미소]를 모토로 주인공 창복과 태인은 계란을 팔고 시체 처리 마무리 작업을 한다. 윗선에서 시키는 대로 어린아이를 잠깐 맡기로 하지만 일이 꼬인다. 납치자가 죽고 부모의 행방 또한 그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시작부터 깍두기 역할과 피해자 역할만 남은 상황은 어긋난 숨바꼭질의 구조와 닮아 있다. <소리도 없이>(2020, 홍의정)는 숨바꼭질의 [찾는 자-숨는 자] 구조에서 [찾는자-숨은자-숨긴자-깍두기] 구조로 확장되었고 찾는자와 숨긴자 없는 [술래 없는 숨바꼭질]의 구조로 변모하였다.

 

이제껏 깍두기 태인과 창복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닐을 뒤덮고 시체를 처리하는 흔적 없는 삶을 살아왔다. 여차하면 사건의 원흉으로 몰릴 위험에 처하자 숨긴자, 숨은자, 찾는자의 경계에 있는 원래의 역할에서 벗어나려 한다. 다른 숨긴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복은 숨긴자가 되어 빠르게 상황을 종료하고 싶어 하고 태인은 다른 역할 사이에서 갈등한다. 숨은자 초희는 납치된 상황에서 소리를 지르지도 울지도 않고 누가 안전한 사람인지 상황을 살핀다. 태인의 집에서 태인과 문주(태인 동생)가 옷가지, 쓰레기 더미 사이 겨우 누울 자리만 만들어 잠을 청하는 모습을 살펴본다. 몰래 문주에게 “오빠 착해?” 물어보며 태인에 대해 파악하려 하고 아빠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밤에 태인의 휴대폰을 챙기려고 하는 등 때때로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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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도 없이


 

숨바꼭질에서 정해진 역할이란 없다. 태인과 창복이 깍두기, 초희가 숨은자의 역할을 맡은 이유는 없고 그들이 기존의 역할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데에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초희와 창복은 계속해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이유를 찾고 싶어 한다. 초희는 자신이 여자여서 남동생보다 필요 없기 때문에 납치되었다고 생각하고 절름발이 창복은 일요일마다 교회를 가지 않고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자신이 벌을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초희, 창복과 달리 태인은 모든 면에서 초연한 듯하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제대로 듣고 있는지 수화나 입모양을 통한 대답도 없다. 창복이 말한 대로 기도 테이프를 듣기는커녕 동생 문주를 돌보지 않고 그저 창복의 지시에 따라 구덩이를 파 시체를 묻으며 살아내고 있다.

 

모두가 점차 숨바꼭질 상황에 적응하면서 창복과 초희는 잠시 이유 찾기를 내려놓는다. 초희는 어린 문주에게 기본적인 생활 습관을 가르치고 함께 밥을 먹고 빨래하며 어지럽혀진 집 안을 정리한다. 문주와 그림을 그리며 협박 편지를 적을 때도 하나의 놀이가 된 양 장난기가 가득하다. 멀리서 화목한 가족처럼 보이는 장면은 초희와 창복이 상황에 자신을 맡긴 순간이지만 태인은 살아갈 이유를 처음 찾게 된 순간이다. 시체 처리 현장 뒤에 앉아 핏방울에 꽃을 그려 넣는 초희는 태인의 마음에 꽃을 그려낸 듯 보인다. 태인은 이런 감정의 교류가 낯설어 마음 편히 웃지 못하고 그림 잘 그린다는 초희의 칭찬에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숨바꼭질 내 깍두기의 역할을 맡았지만 처음 감정의 교류를 경험한 그는 깍두기 이상의 역할을 행하고 싶어 한다. 조심스럽게 비닐장갑 낀 손으로 협박 편지를 봉투에 넣던 태인은 점점 지문을 숨기지 않고 자신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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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어긋나버린 숨바꼭질 놀이에서 깍두기와 숨은자에게 남은 선택지는 직접 술래가 되거나 술래가 된 상대에게 잡히거나 흐지부지된 놀이에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것이다. 깍두기 창복과 태인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숨긴자가 되기로 한다. 맞지 않는 역할을 맡은 창복은 자기 발등에 걸려 뜻하지 않게 죽고 태인이 마무리를 맡는다. 태인은 창복이 시킨 대로 초희를 인신매매단에 넘긴 이후 마음을 고쳐잡고 다시 초희를 구하러 간다. 구원자가 된 것처럼 달리는 차에 몸을 던져 초희를 구하지만 그가 방심한 틈을 타 초희는 태인의 집에서 도망친다. 그들은 역할이 여러번 전복되는 과정 끝에 더 이상 도망가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태인은 초희의 상처난 무릎을 보고 초희는 태인의 팔을 이끌며 집으로 향한다. 그들은 잠깐 역할놀이에 심취했던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태인과 초희는 풀밭에서 서로를 찾으며 현실을 마주했지만, 갑작스런 경찰의 수사에 우선 서로를 숨기기로 한다. 경찰을 쓰러뜨리고 패닉 상태인 태인 대신 초희는 침착하게 삽을 꺼내 경찰을 땅에 묻으려 하고, 두려워하는 태인에게 괜찮다는 의미의 박수를 보낸다. 초희가 밤에 화장실을 갈 때마다 태인이 박수로 안심시킨 것처럼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한 태인은 위로받는 동시에 죄책감을 느낀다. 초희가 자신의 범죄를 보고 배웠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초희를 망치고 있음을 깨닫는다. 밤새 생각한 태인은 초희를 제자리로 보내기로 한다. 초희의 흔적이 담긴 필기구, 공책들을 가방에 넣고 초희를 학교 앞으로 데려간다. 선생님을 부르며 뛰어가는 초희의 손을 놓고 싶지 않지만, 그는 반대로 달려야 했다. 숨긴자 즉 유괴범이 된 그는 재킷을 벗어 던지며 초희를 향한 어설픈 애정의 결과를 인지한다. 그는 멋진 구원자가 되고 싶어 재킷을 훔쳐 입었지만 범죄자가 되었다. 영화는 태인의 오묘한 표정과 함께 끝났으나 아직 숨바꼭질은 끝나지 않았다. 태인은 이제 숨은자가 되어 찾는자 초희와 초희의 부모를 피해 꼭꼭 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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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도 없이


 

<소리도 없이>는 술래도 없고 역할에 대한 이유도 없으며 명확한 끝도 나지 않는다. 인물들은 숨고 찾으면 끝나는 숨바꼭질을 쉽게 끝내지 못한다. 초희와 창복은 역할에 맞는 소리를 내고 있지만 태인은 자신에게 맞는 역할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태인이 ‘박수’를 매개로 처음 감정적인 교류가 생기고 숨바꼭질 내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아가면서 게임에 혼란을 주고 있다. 관객은 태인의 행보를 따라가며 그에게 동화된다. 태인, 창복, 문주, 초희가 지금처럼 같이 살아도 괜찮을 것 같고 마지막 숨바꼭질이 진행될 때 초희가 도망가기를 응원하면서 태인에게 잡힐 것을 무섭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말에 이르자 본인이 느낀 감정이 옳은 감정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전혀 따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꿈, 소망, 평화 등의 문구가 적힌 가게 간판들이 등장하는 것처럼 청량하고 맑은 하늘, 노을 진 배경에 자전거 타는 태인의 모습 또한 역설적인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영화는 그동안 깍두기라 칭했던 창복과 태인이 유괴범임을 잊게 만들어 관객의 시선에 혼란을 준다.  숨긴자, 찾는자, 깍두기, 숨은자의 경계에 있는 우리는 숨바꼭질에 소리가 필요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직 찾는자와 숨긴자의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고, 숨은자 초희는 숨는 것이 습관이 되어 제자리로 돌아간 이후에도 부모에게 배꼽인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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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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