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3분 카레? 아니, 3분 초단편 소설! [문학]

《판다플립》과 이름만 들으면 아는 작가들의 '3분문학' 프로젝트
글 입력 2017.12.1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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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이 벅차다.

오래도록 부정해왔지만 인정해야겠다. 나는 예전 같은 글의 호흡을 잃어버렸다. 글쓰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책을 읽는 행위, 독서 쪽의 이야기다.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같은 대하소설에도 질리는 기색 없이 도전하던 예전의 기백이 몽땅 사라졌다. 좀 덜 재밌어도 유익한 책을 끝까지 읽어내리던 '인내'라는 장점도 사라졌다.

이런 현상을 겪는 게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더라. 스마트폰은 작은 화면의 테두리만큼으로 우리의 시야를 좁혀버렸고, 쉽게 넘길 수 있는 짤막한 글들에 우리의 호흡을 맞춰버렸다. 이동하면서, 화장실에서, 침대에 누워서까지 눈을 뗄 줄 모르게 만드는 합법적 전자 마약 같은 이 존재가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만큼 편하고 손쉽게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얻은 즐거움은 유독 금방 사라졌다.

경각심을 가져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스마트폰은 한 대, 두 대, 세 대째를 거쳐 더 발전된 형태로 내 품을 떠날 줄 모르고 있다. 지금 쓰는 이 사과 전화가 고장 나면 다음 사과 전화를 구입하겠지. 툴툴거리면서도 나는 이미 똑똑한 이동전화의 노예 신세와 그로 인한 부작용에 길들여졌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있다. 한 달에 몇 권 이상의 독서를 의무화하기와, 집중력이 짧아졌다면 짧은 글이라도 많이 읽기. 찾아보니 가십거리로 읽고 넘기는 것 말고도 세상엔 짧게 향유하기 좋은 글들이 많았다. 지금 기고하고 있는 '아트인사이트'를 비롯하여 내가 좋아하는 재즈와 요리, 청년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온라인 잡지들, 에세이 연재 사이트... 어차피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어낼 수 없다면 인정하기로 하고, 짧고 좋은 글들을 읽으며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대부분 칼럼이나 에세이에 치중되어 있는 게 못내 아쉬웠다.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웹 소설이라는 분야도 있었지만 로맨스와 판타지, 무협 같은 장르는 영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렇게 순수문학에 목말라 할 때쯤 '초단편 시리즈' 프로젝트를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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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 플립


아직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판다 플립은 소설, 판타지, 스릴러, 시, 에세이, 시나리오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볼 수 있는 웹 서비스 공간이다. 작은 스타트업 기업인 이곳은 '초단편 소설'을 최초로 기획하며 눈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초단편 소설'이란 기존 단편 소설의 1/10 수준인 2000자 내외의 소설로, 3분 남짓만에 한 편을 읽을 수 있다. 극단적인 요즘 독자들의 인내심에 '새로운 장르의 개발'이라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사이트에서 유료로 이용하면 더 많은 작품을 열람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네이버 판다 플립 포스트에 꾸준히 업데이트되는 무료 분량으로 만족하고 있다.

저명한 작가들의 참여가 특히 매력적이다. <고래>와 <고령화 가족>의 천명관 작가, <재와 빨강>의 편혜영 작가, 최근 국내 출판업계에서 이례적인 판매 부수를 올리고 있는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 등 굵직한 국내 소설 작가들의 이름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확실히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가일수록 조회수가 높은 편인데, 탄탄한 내용으로 그 기대에 부응해서 실망한 적이 없다.

실력파 작가들의 보장된 문장을 초단편으로 읽는 감상은 매우 색다르다. 처음 읽으면 소설이 이렇게 짧다는 게 낯설고 놀라울 것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은 후 특유의 잔상과 만족감까지 짧지는 않다. 겨우 3분을 투자해서 문학의 감상을 느낄 수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박수쳐주고 싶은 기획이다. 장편 소설을 읽을 때와 같은 시간적 부담감이 전혀 없어서, 책 한 권 읽기 버거운 사람들도 거뜬하게 읽을 수 있다.

마음에 들었던 작품 몇 개를 추천하며 마무리하겠다. 너무 짧고, 어떤 주제일지 상상하는 것도 이 시리즈의 묘미이기 때문에 따로 설명은 곁들이지 않지만, 알려주지 않아도 금방 알아낼 수 있다.



↘↘↘

조남주 - 늙은 떡갈나무의 노래
편혜영 - 지폐 

김연수 - 보일러





(이미지 출처: 네이버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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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단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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