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방랑자 선언 [문학]
빈 공간이 만들어내는 열정, 열정이 만들어 내는 빈 공간, 그리고 성장하는 우리.
글 입력 2017.11.1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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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를 좁게 보면 우리는 모래알같은 개별적 존재들이다. 성격, 취향, 가치관, 직업, 등 다양함을 더욱 다채롭게 만드는 기준조차 다양하기에,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말 만큼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다들 해변의 모래사장과 같이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소속감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동질감을 느끼는 한 집단이나 사회에 소속되어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정서적 안정감과 직결된다. 그리고 안정감은 우리를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기에 우리는 서로를 채워가며 전체를 이루어 낼 수 있다.방랑의 필요성
하지만, 그 안정감이 별안간 우리를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에 안주하게 만들거나 익숙함만을 찾게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 높은 층으로 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오르거나, 엘리베이터를 타야한다. 현재에 대한 익숙함과 안정감은 우리가 성장하게끔 하는 단단한 계단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에 매료되어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잃는다면, 그 대가로 면의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되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도 있다. 심리적으로 가까운 것, 익숙한 것만 보고 들으려고 한다면 점과 같이 좁고 한결같은 사고의 흐름에 갇히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방랑자가 되겠다 선언한다. 가령, 삶에서 몇 번의 졸업을 하고 입학을 하며, 이사를 하거나 이직을 하는 것이, 어느 누군가의 상황에 따라서는 꼭 필요한 이유인 것이다.< 방랑자 선언 >
저자인 블랑쉬 드 리슈몽은 철학자이자 저널리스트, 그리고 연극배우이다. 열다섯 살 남동생이 자살로 스스로 세상을 버린 후 죽음의 흔적이 머무는 공간에서 벗어나고자 혹은 죽음이 야기한 사유 및 감정들에 오롯이 파묻히고자 사막으로 떠나게 된다. 그 곳에서 서른세 살부터 12년간 '살아 있을 이유'를 찾기 위해 방랑의 삶을 살면서 사랑, 자유, 행복 등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깨닫는다.목차1. 일탈2. 사막의 시험3. 돌아오다4. 달아나다5. 자유로움6. 부동의 여행7. 대지저자의 문체는 사색을 그대로 반영하되 간결하여, 저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게끔 할 정도로 쉽게 읽힌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사실은 저자의 사색을 공유하며,라는 표현이 정확할 듯 하다.) 몇 시간 동안이나 손이 아픈지도 모르고 필사를 했더랬다.빈 공간이 만들어내는 열정, 열정이 만들어 내는 빈 공간, 그리고 성장하는 우리.
“줄타기 곡예사는 빈 공간과 맞서 싸우지 않는다. 빈 공간에 도전하고, 빈 공간을 사랑하고, 빈 공간과 어울려 춤을 춘다. 줄타기 곡예사를 흔들 수 있는 것은 오직 두려움 뿐이다. 그래서 줄타기 곡예사는 두려움을 길들인다. 그리고 공중을 나는 법을 배운다. 땅에서 발을 떼지 않으면 날개도 얻을 수 없는 법이다.”“방랑자들이 한 곳에 머물지 않는 것은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열정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우리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만을 갈망하도록 정해진 운명일까? 그렇다. 그리고 그건 잘된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에게서 벗어나 있는 것만이 우리를 성장시키기 때문이다.”“‘다른 어딘가’의 힘에 이끌려 길을 떠나게 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 영혼은 물리적 혹은 마음의 경계선 밖에서 우리를 기다린다.”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은, 수 번의 단거리 달리기와 그 간의 ‘빈 공간’을 동시에 포함한다. 정체되어 가는 본인을 구출하고자, 소속감과 안정감을 떨쳐내고 새로운 곳에 대한 두려움과 맞설 때 우리는 비로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매우 흥미롭게도 그 용기의 근원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열정과 갈망이 아닐까. 다행스럽게도 우리를 계속해서 달리게 하는 원동력은 소속감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도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점과 면 사이의 선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달까. 무슨 말이냐 하면, 타인과의 관계에만 집착하여 소속감에 그저 구속되지도, 혼자만의 여행에 그저 심취되어 본인을 너무 고립시키지도 않게 줄다리기를 잘 해야 비로소 용기를 낸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다양한 성격의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매순간 나에게'만' 집중하는 것은, 사회적 동물임을 굳이 혹은 일부러 망각하고자 하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집착이 되어 결국엔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가령 의식적으로 북극곰을 생각하지 말자, 하면 북극곰 생각만 나는 것처럼 말이다.“우리는 우리를 묶고 있는 끈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한 우리가 묶여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묶여있음’을 자각하는 것, 끈을 보고 직접 손으로 매듭을 푸는 것, 마지막으로 용기내어 직접 발로 걸어 나오는 것 까지, 모든 일은 개인에 한정된 ‘나’의 몫이기에 더욱 가치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더 넓은 세계가 ‘나’를 기다리며 성장으로 가는 길의 계단이 되어줄 것이다.[류승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대학교 3학년때까지 제가 철썩같이 되뇌며 살았던 말이 있습니다. 파우스트에서 나왔던 구절이었던 것 같은데, '노력하는 자만이 방황한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처음 그 말을 읽었을때 눈물이 찔끔했었는데, 에디터님의 글을 읽으면서 그 순간이 계속 눈 앞을 스쳐지나갔습니다.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전혀 다르고 위험해보이는 데미안의 세계를 접함으로서 자유의 신에게 날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안정된 세계에서 벗어나는 청춘의 방랑은 가슴을 울컥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꼭 청춘뿐만 아니라 방랑을 자처하는 모든 인간들에게 에디터님의 글은 재밌게 읽힐 것 같습니다.읽기 쉽도록 글자에 포인트를 넣은 것도 에디터님의 훌륭한 솜씨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감상부분에 있어 '열정이 근원', 이라는 점과 '점과 면 사이의 선'이라는 점에 좀 더 설명이 있었으면 더 풍부한 내용이 되었을 것 같다는 점입니다. 에디터님이 어떤 의미로 그런 표현을 썼는지 어렴풋이 이해를 하지만, 독자로서는 더 자세히 설명해주셨다면 더 즐거웠을 것 같습니다.
갇혀 있는 것은, 현재에 안주하는 것은 곧 사람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든다는 것, 썩게 만든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는 글입니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사람이 양지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더 나아가 방랑을 요구하는 것은 신선하고 독특하게 여겨집니다. 문득 어머니를 잃고 트래킹을 떠났던 <와일드>라는 영화가 떠오르네요. 결국 방랑이라는 것을 성장을 향한 로드무비와 같은 선 위에 놓여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다만 책에 관한 내용이나 설명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일반적인 내용과 승희님의 감상도 탄탄하고 의미가 있지만 좀더 책 자체를 풀어서 이야기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점과 면의 사고 같은 책 안에서 등장하는 개념도 설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서문이 너무나도 감동적이며 이목을 충분히 끌었습니다. 책의 문구들과 승희님의 감상이 지금은 희미해진, 스스로를 방랑자라 자신할 때 생각했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해 소름이 돋았고 충분히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런 컨텐츠를 소개해주신 게 감사할 정도로요. 특히 중도를 지키라는 것이 제일 와닿았고, 이 글을 읽은 다른 독자 모두에게 스스로의 의미로 새겨졌을 것입니다.
감히 제 의견으로는 전체적인 글의 균형이 좀 부족했다 생각합니다. 책과 감상의 균형이랄까요. 뭐 저도 그렇지만 전체적인 안정감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소재의 신선함과 충격은 대단하니, 글을 더 써나아가다보면 충분히 해결해나갈 문제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