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억이 주는 아픔 '기억하다' [공연]

글 입력 2017.10.07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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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하다>는 기억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소년이 어느 날 사라진 엄마를 찾으며 시작된다. 이주 노동자인 기억이의 아버지 꼬르끼와 꼬르끼가 일하는 공장의 소장은 TV 프로그램에 엄마를 찾는다며 제보를 한 기억이를 계속 만류한다. 처음에 꼬르끼는 기억이가 계속 ‘엄마는 어떤 사람이야?’하고 물어도 대답을 해주지 않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동네 주민들의 제보란 미담뿐이었던 기억이의 엄마가 사실은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람인지 의아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동네 주민들은 소장의 선동에 칭찬을 늘어놓던 기억이 엄마를 ‘바람나 도망친 도둑년’으로 몰아붙이고, 기억이 엄마는 주민들에게 나쁜 기억이 되었으나 사실 엄마는 꼬르끼에게 유일하게 좋은 기억을 선물한 사람이었다. 말 한마디에 너무나 쉽게 선동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현재의 나나, 혹은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선동되면서도 그런 줄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으니까.

  극 초반에는 호방하고 웃음을 주는 캐릭터로 나왔던 소장이 벙어리였던 기억이 엄마를 이용하고, 불법 체류자인 꼬르끼를 협박하고, 결국 기억이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과거가 드러났을 때 나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마자 별 다른 생각이 들 새 없이 소름이 돋고 오싹해서 너무 무서웠던 것 같다. 배우들이 정말 실감나게 연기를 해서도 그렇고, 썩은 진실을 예쁘게, 정의로움으로 가리고 있는 그들의 분위기가 너무 우중충하고 우울하고 섬뜩해서이기도 하다.

  극이 끝날 때에 기억이와 꼬르끼는 시끌시끌한 분위기 속에서 둘만 동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기억이가 다시 한 번 ‘엄마는 어떤 사람이야?’하고 묻는데, 극이 진행되면서 이 말은 굉장히 많이 되풀이되었지만 이번에는 ‘아빠에게’ 엄마는 어떤 사람이느냐고 묻는다. 그 질문에 괴로운 마음을 품고 항상 입을 다물었던 꼬르끼는 ‘고향 같은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언제나 그립고, 잊혀지지 않을 테니까’ 기억이라는 것은 항상 변질되고 흐르고 유한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흔히,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기 마련인 것 같다.





  이 작품을 접하고 나니 불법 체류자에 대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불법 체류자는 왜 불법인지, 왜 부정적으로 인식되는지 이전에는 한 번도 내 주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다 그러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왔던 탓이었다. 이제 보니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선동된 것이 아니었는가. 불법 체류자의 현실에 대해서도 말로만 들었을 뿐 생생하게 눈 앞에서 지켜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들은 불법으로 체류한다는 약점이 있기 때문에 쉽게 악용될 수 있다는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약점이 되는 삶이란 게 이다지도 비참하게 느껴지는구나 하고 정말 작은 공감이라도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꼬르끼에게 기억이 엄마가 고향과 같은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로 많은 아픔을 받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놓고 유일하게 편안한 감정을 주고 유일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도 생각해본다. 더욱이 이 연극은 불법 체류자 뿐만이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장애우라는 이유로 또 악용되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가. 이러한 소수자들이 등장하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비약이라던가, 과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정말 있을법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관심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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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하다>를 보아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내가 기억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실 기억 뿐만이 아니라 추상적인 단어들을 좋아한다. 관념이 정확하게 자리잡히는 것보다야 그 때 그 때 다른 감정과 생각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그 변화의 추이를 지켜보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껏 내가 그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극을 통해서는 기억의 변화라는 것이 아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항상 기억이라는 것은 미화되는 것이며 주체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로만 듣던 ‘선동의 과정’, 그 내막과 잊어버리고 귀 닫고 모르면 마음이 편하다는 무책임한 인간의 측면까지 바라보게 된 것 같다. 마지막은 따듯했으나 그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마음에 무겁고 불편한 감정을 주고, 그렇기 때문에 의미 있는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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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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