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125년 역사를 지닌 아카이브가 선보이는 '창조의 즐거움'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 전시 리뷰
글 입력 2017.07.3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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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거금을 들여 구입한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오늘은 서초동에 위치한 예술의 전당에 가는 날이다.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은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었는데 평일 오후라 그런지 줄을 서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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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고 큰 커튼을 걷고 들어가니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보그’의 아카이브가 한눈에 들어왔다. 어두운 조명에 가려졌던 많은 관객들도 볼 수 있었다. 얼핏 주위를 둘러보니 초상화부터 정물화, 로코코, 풍경화 등 그림인지 사진인지 행복한 혼란 속으로 밀어 넣는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모든 전시관엔 규칙과 전략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나는 가장 처음 전시된 초상화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일부 사진은 모티브가 확실한반면 그렇지 않은 사진들도 있었는데 난 후자에 더 끌렸다. 완벽한 재현도 훌륭하지만 자신의 색으로 표현해낸 것을 따라올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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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작품으로 벨기에 출신 화가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Rogier van der Weydenr)’의 여자 초상화에서 영감을 얻은 네덜란드 작가 ‘어윈 올라프(Erwin Olaf)’의 사진을 꼽을 수 있다. 엄격하고 절제된 이미지를 풍기던 미사포가 거대한 털모자로 바뀌자 외유내강이 어울릴법한 여성이 탄생한다. 깔끔한 의상도 한몫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여성의 입술 위에 있는 점(혹은 사마귀)이 이미지 변신에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왜 그런지는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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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가볍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이자벨’은 세 번째 섹션인 ‘로코코’를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사실 어떤 관람객도 로코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긴 힘들 것이다. 잔잔한 파스텔 컬러가 만들어내는 차분한 분위기, 평화로움은 애쓰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다워 보였다. 무엇보다도 ‘팀 워커(Tim Walker)’의 독창적인 드레스 연출은 결혼에 무관심했던 내게 결혼식의 낭만과 환상을 심어줄 만큼 강렬했다. 조개껍질이 곳곳에 널려있는 바닷가에서 햇살을 받으며 입장하는 신부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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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간적’인 비율을 자랑하는 소녀들이 싱그러운 나무를 둘러싼 사진에선 카메라를 놓을 수가 없었다. 디지털 기술이 생동감까지 포착하기엔 부족하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해당 사진을 보고 감탄을 거듭하던 이자벨은 결국 휴대폰 배경화면까지 바꿔가며 애정을 드러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시가 주는 만족감과 동시에 일종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사진작가들이 영감을 받은 그림들은 일상적이고 심하게는 '하찮아' 보이기까지 한다. "이 그림을 보고 어떻게 저런 어마무시한 영감을 얻지?"라는 의문을 자아내는 작품이 꽤 있었다는 의미다. '천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곱씹게 되는 시간이었다.
 
어찌됐건 이날은 매번 맛보던 '천재가 아니라'는 습관적인 안타까움에서 잠시 벗어나기로 했다. 소비자로서 최대 효용을 누리는 행운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얻어 신났던 하루였다. 아, 이번 달엔 미용실에서만 보던 잡지 '보그'를 직접 사볼까 생각중이다.


[이형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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