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음에 대하여 [문화전반]

죽음에 대하여
글 입력 2017.02.07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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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걸렸다. 곧 낫겠거니 했지만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아 결국 병원을 갔다. 유쾌하기로 소문난 원장님은 내가 들어서자마자 ‘아니, 젊은 사람이 여길 오면 어떡해!’ ‘젊음을 더 즐겨야지 왜 아프고 그래?’ 무서운 표정으로 겁을 주셨다. 그래 난 젊다. 때 묻지 않은 젊은 나이에게 음습하고 시꺼먼 죽음은 특정사건이 뒤통수를 쳐 주지 않는 이상 존재를 인지하기 어렵다. 심지어 죽음이란 게 가장 어렵고 아무도 직접 겪어보지 않는 소재면서도 이야깃거리로 사용되는 경우가 잦아 웬만큼 파격적이고 굵직한 무게감이 아니면 실체 없는 그 죽음은 젊은이들에게 인식되기 어렵다. 나 역시 싱싱한 몸 덕분에 죽음 없는 인생을 살던 와중 최근에야 그 존재를 어렴풋이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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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미술사에서 회화의 기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전쟁을 나가는 남편이 살아 돌아올 확률이 거의 없다는 걸 알고 그를 사랑하는 아내는 그의 존재를 죽음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그의 그림자를 따라 윤곽선을 그린다. 그 선은 단지 낙서일 뿐이지만,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선이 아니다. 그의 영혼이 깃든 산물이고 이게 바로 이미지의 기원으로서의 죽음이다. 즉 소멸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미지를 탄생시킬 이유도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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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팽창함에 따라 우리를 소멸로 이끈다. 소멸은 또한 죽음과 같다. 육신이 살아있다 해도 신념이 없다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등 많은 명언이 있지만, 사실 신념이 살아있다 해도, 정신이 살아있다 해도 육신이 식어버린 사람을 존재한다고 할 수는 없다. 사후 아무리 칭송받는 위인도 그 박수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 영국 드라마 <닥터후> 시즌5에서 빈센트 반 고흐가 현 시대로 넘어와 큐레이터로부터 찬사를 듣는 장면이 있다. 미술관을 돌아보며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그 얼굴에 함께 기뻐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대신 비춰주는 것에 대한 쾌감일 뿐이다. 고흐는 지금 존재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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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많다. 전생, 영혼, 요괴, 천국, 지옥. 하나같이 사람들의 관심을 얻는 데에 부족할 것 없이 자극적인 이야기들이다. 또 두려움에 무신론자임에도 “지옥에 가고 싶지 않으니 착하게 살아야지”같은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죽음이 미지의 존재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에서 초랭이는 그 해답을 아주 심플하게 던져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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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는게 무서우냐
- 죽는게 무섭다기보다 그 과정이 무서운거죠.


죽음 자체보다도 그 과정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 단지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죽음이 다가올 때 추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피하려 발악한다. 여기서 난 만물을 평등하게 만드는 죽음 앞에 존엄을 지키자는 ‘존엄사’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개념이냐는 의견에 동의한다. 어쨌든 나열된 말들로만 본다면 죽음 존재 자체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다. 그 존재 자체는 우리에게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니 추악해 질 필요 없이 죽음을 즐길 수 있을 미래를 상상해 봐도 될까? 사노 요코의 <죽는 게 뭐라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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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게도 내가 죽음에 대해 인지하게 된 첫걸음은 거리를 도배한 ‘새해’라는 글자다. 작년 한 해 돌연 곁을 떠나버리신 3명의 친인척들도 주지 못했던 충격을 어쩜 한해의 시작이라는 희망찬 문자에서 덜컥 느꼈다. 잡지 <릿터>에서 이응준 소설가는 반려견 토토의 죽음 이후 “죽음도 암기 과목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죽음을 잊지 않으면 삶의 허튼짓거리들을 그만하게 된다.” 라고 언급했다. 이야기가 이야기인지라 다소 어두침침했을 글을 조금은 미래 지향적으로 마치면 어떤가 싶다. 모두들 언젠가 다들 소멸상태에 이르기 때문에 한 톨의 미련도 남기지 않기 위해 화끈하고 다소 충동적으로 올 한해를 또 가득 채워보는 건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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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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