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처들의 연대기, "상처투성이 운동장"

글 입력 2016.12.2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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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퓰리처상 수상자 라지브 조세프 작품 국내초연 -


상처투성이-저화질.jpg
 
 
두 사람은 정말 상처투성이였어요.    
상처가 빛나더라고요. 반짝반짝 빛나는데
빛나도 아름답지가 않았어요. 슬펐어요.
반짝이는 상처가 눈을 찔러대서 눈이 시렸어요.




리뷰 앞에 상처들의 연대기라는 부제목을 붙여보았다. 이건 그야말로 상처투성이 연대기였기 때문이다. 또 이건 상처들의 연대(連帶)기이기도 했다. 상처들이 연대하는 이야기. 보기 전 상상한 투명하고 아름다운 로맨스는 거기에 없었다. 거기에 있는 건 피투성이와 흙투성이 상처와 공허였다.

연극이 시작하기 전부터 내내 예쁘다고 연신 감탄했던 새하얀 공간에 놓인 건 케일린과 더그의 상처였다. 두 사람은 순수했고, 그래서 그 시절의 상처는 순수의 반짝거림에 묻혔다. 그래서 괜찮아 보였다. 아팠어도, 두 사람의 연대가 두 사람을 괜찮게 해 줄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점차 나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계속해서 두 사람은 처절한 상태로 향해갔다.

두 사람의 상처는 방 안의 코끼리처럼 항상 존재했고 타인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로지 케일린과 더그 서로만이 상처입은 자로서 유대했다. 그러나 그들의 상처는 동시에 서로에게 세우는 벽이 되었다. 그건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상처 입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순수에 웃음지었던 순간이 흐르고 안타까운 순간이 찾아오고, 또다시 웃음짓고 안타까워하기가 반복되었다. 곳곳에서 울음이 새어나왔다. 점차 먹먹해졌다.

두 사람은 특별한 관계였다. 사랑도 우정도 아닌 어딘가에 존재하는 관계. 그건 특별하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이것을 로맨스라고 했다. 이게 로맨스라면 이건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로맨스였다. 어느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로맨스. 누가 이 고통을 흉내낼 수 있을까. 아무도 이름 짓지 못할 관계는 유일해서 아름다운 법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썩 아름다워 보였다. 

무대 위에서 두 사람이 반짝이고 아름다운 가운데 아름답지 않은 건 상처 뿐이었다. 상처와 상처와 상처, 말 그대로 거긴 상처투성이의 공간이어서 마음만큼 눈이 아팠다. 오로지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자신의 상처에 세상의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으며 살아갈까. 내 세계가 부서지고 세워지는 동안 상처는 수없이 반복된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세계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는 와중에 구원은 없지만 나를 구원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나와 다른 타인이 내 세계로 들어오는 것은 기적이었다. ‘난 다른 사람이 아니야. 나는 너야.’. 케일린과 더그의 모습에서 나는 현실적인 기적을 보았다. 그래서 두 사람이 결국 함께였을 때, 함께일 수밖에 없음이 나는 보이는 것 같았다. 하얀 공간 위의 상처투성이 두 사람, 나는 두 사람이 삶의 순간을 서로 채워왔듯 앞으로도 두 사람의 상처투성이 연대기가 지속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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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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