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광기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2.20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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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대를 사랑할 줄 모르지만
그대의 사랑은 이토록 진실하구나.
아마도 이 세상은 그대처럼 아름다운 사람을
소유할 자격이 없었나 보다.'


  빈센트 반 고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화가다. 예술계에서는 모차르트나 셰익스피어만큼이나 신화적인 존재이며, 미술계에서는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더더욱 드문 경지의 화가이다. 그렇다면 반 고흐는 왜 이렇게 유명할까?
  다른 대가들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미술사를 통틀어보면 화풍이나 성격이 비슷한 화가가 적어도 한두 명은 있다. 하지만 반 고흐는 다르다. 그는 독특하다.





‘Vincent’는 유명한 뮤지션 돈 맥클린이 1972년에 창작한 것으로, 반 고흐의 전기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창작한 노래이다. 
‘Vincent’의 노랫말을 따라가며 광기의 대명사로 기억되는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알아보자.


Vincent

 
The Starry Night.jpg
 

▲ The Starry Night


Starry, starry night
별이 많은, 별이 많이 빛나는 밤이네요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당신의 파렛트에 파란색과 회색을 칠해보세요
Look out on a summer's day 
어느 여름날에 바깥을 바라보아요.
  

  반 고흐의 그림에서는 어떤 특징을 엿볼 수 있을까? 반 고흐의 그림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어휘가 바로 ‘강렬함’이다. 그의 ‘강렬함’은 우선 두텁고 무거운 붓질에서 비롯된다. 그림 속의 물감은 붓으로 그렸다기보다는 캔버스 위에 그대로 짜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의 그림은 다른 화가들의 작품보다 ‘원가’가 더 높다. 작품마다 남들보다 사용하는 물감의 양이 배는 더 많으니까. 하지만 이런 화법은 왠지 모르게 더욱 입체적인 느낌을 준다.
  이런 ‘강렬함’은 색채의 사용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파란색+노란색’ 또는 ‘붉은색+푸른색’ 같은 색채 조합을 즐겨 사용한다. 이런 색들은 사실 서로 상충하는 색깔, 즉 완전히 상반되는 색깔이다. 보통 화가들은 이런 색채의 조합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까딱하면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 고흐는 이런 색깔을 능수능란하게 다뤘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색감이 유난히 강렬하고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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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otato Eaters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제 영혼에 깃들인 어둠을 알고 있는 눈으로
Shadows on the hills.
언덕 위의 그림자들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나무와 수선화를 그려주세요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산들바람과 겨울의 차가운 기운을 화폭에 담아 주세요.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눈처럼 하얀 캔버스 위에 색들을 입혀주세요


  <감자를 먹는 사람들>은 그가 파리 입성 전에 그린 작품이다.
  반 고흐는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 밀레를 꼽았다. 밀레는 ‘바르비종파’에 속한다. 화풍으로만 보면 사실주의에 가까운 편이다. 밀레는 농민을 즐겨 그렸는데, 이런 사회 최하층의 ‘고난’은 사실주의 작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고흐가 밀레를 좋아했던 탓인지, <감자를 먹는 사람들>은 한 폭에 농민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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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flowers


Now I understand
저는 이해합니다.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당신이 저에게 무얼 말하려고 했는지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당신의 광기로 당신이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했는지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사람들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어떻게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Perhaps they'll listen now.
아마 그들은 이제는 듣고 있을 거예요


  반 고흐가 아를에서 지내는 동안 창작한 대표작이자 평생에 걸쳐 가장 유명한 걸작 중의 하나인 <해바라기>이다. 이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노란색 바탕 위에 노란색 해바라기를 그렸는데도 전혀 단조로운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 고흐는 그림 속의 화병 위에 직접 사인을 했는데 이런 방식의 사인은 아마 반 고흐가 유일무이할 것이다. 신기하게도 청색 사인과 황색 화병의 조합이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고 오히려 ‘화룡점정’의 느낌이 난다.
  이 그림은 반 고흐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유일한 친구, 폴 고갱이 <해바라기>를 처음 봤을 때 그림 앞에서 오래도록 머물렀고 심지어 극찬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내 그림을 감상하고
나아가 나의 내면까지 느끼길 바란다.“


  고흐의 그림은 강렬함 그 자체이다. 반 고흐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의 작품을 한 번 보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마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고갱은 14년 뒤에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에는 온통 해바라기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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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oportrait


Starry, starry night:
별이 많은, 별이 많이 빛나는 밤이네요
Flaming flowers that brightly blaze;
이글거리는 듯한 꽃들의 색이 불꽃같이 타오릅니다.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보랏빛 연무 속에 소용돌이치는 구름들은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빈센트의 푸른 눈빛을 나타내는 것 같네요


  위대한 화가인 램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처럼, 반 고흐 또한 종종 자신을 작품의 모델로 삼았다. 여기엔 현실적 이유 또한 있었다. 사람들이 선뜻 그의 모델이 되길 꺼려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인물화가라 칭하길 좋아했던 반 고흐는 10년 동안 무려 43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반 고흐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사진가가 포착한 사진 속 내 모습보다 더 심도 있는 나의 초상을 탐구하는 중이다.’라 적었다. 후에 남동생에게 쓴 편지에는 ‘사람들은 말하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 자기 자신을 그리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야. 램브란트가 그린 자화상들은 그가 자연을 관찰한 풍경화보다 더 많아. 그 자화상들은 일종의 자기고백과 같은 것이야.’라고 적혀있다. 반 고흐의 자화상은 마치 램브란트의 후기 자화상처럼 독특한 자신의 심리상태가 표출돼 있다.
  이 작품은 그가 끊임없는 망상과 발작에 시달려왔을 때 그려진 것이다. 자신의 병의 심각성을 깨달은 반 고흐는 1889년 스스로 생 레미(Saint Rémi)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이곳에서 그는 몇 달 동안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이 때 반 고흐는 자화상을 무려 6점이나 그렸는데 그 중 가장 격렬한 감정이 표출된 것이 1889년 9월에 그려진 이 <자화상>이다.

  자신의 상반신을 표현한 이 그림에서, 반 고흐는 평소 그가 작업할 때 입었던 두꺼운 모직 재킷이 아닌 단정한 양복차림이다. 이 그림에서 반 고흐는 특히 얼굴을 부각시키려 했다. 작품 속 반 고흐의 얼굴은 수척해 보인다. 그의 불안한 녹색 눈과 긴장한 표정은 관람자를 그의 불안한 정신세계로 끌어들인다. 작품에 쓰인 색채를 보면 전체적으로 쑥 색과 옅은 청록색이 지배적이다. 이 두 색은 고흐의 머리와 수염에 사용된 타오르는 듯한 오렌지색과 대조적이다. 이러한 색채배치는 반 고흐가 보색대비 효과에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자화상>의 오렌지색은 차가운 색인 쑥 색과 청록색에 의해 한층 강조되어 보인다. 또한 물결치듯 표현된 머리, 수염과 대조되는 그의 정적인 모습은 환시(幻視)효과를 주는 배경의 아라베스크 무늬와 만나 한층 두드러져 보인다. 반 고흐 특유의 소용돌이치는 아라베스크 무늬는 그가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한 시기부터 주로 나타난다. 당시 반 고흐는 사이프러스 나무, 하늘 등의 소재를 넘실대는 곡선의 형태로 표현했다. 이런 모습은 그가 당시 겪고 있던 고통과 불안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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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rvest in Provence


Colors changing hue:
색조를 바꾸는 빛깔들
Morning fields of amber grain,
황금색의 아침 평야
Weathered faces lined in pain
고통 속에 찌든 얼굴은
Are soothed beneath the artist's loving hand.
예술가의 사랑스런 손길로 달래지고 있네요.


  반 고흐는 1888년 가을 프로방스(Provence)의 하늘 아래에서, 그의 영혼과 현실 그리고 예술 사이의 또 다른 교감을 시작하면서 이 그림을 그렸다. 농촌 풍경은 그의 화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관심을 쏟았던 소재였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반 고흐의 밀레에 대한 열렬한 애정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젊은 시절 반 고흐는 19세기 네덜란드 풍경화를 주로 판매했던 구필화랑(Goupil maison)의 조수로 일하면서 밀레(Jean Francois Millet)의 그림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밀레야말로 반복적인 농촌생활을 찬양하고 들판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을 인간과 교감을 이루는 장면으로 승화시킨 화가였기에 반 고흐의 밀레를 향한 사랑은 각별했다. 
  “나는 빈센트가 자기 마음에 드는 모티프를 그리기 위해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몇 킬로미터를 걷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어떤 어려움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비, 바람, 이슬, 눈과 같은 모든 것에 맞섰다. 별이 빛나는 하늘이나 정오의 태양을 그리기 위해서라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작업을 시작했다.” 에밀 베르나르(Emile Bernard)는 친구 반 고흐의 끈기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이 시절 반 고흐는 행복과 창의력이 샘솟고 있음을 만끽했다. 당시 그는 자신이 살아갈 날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밥 먹는 것조차 잊은 채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열광적인 상태를 동생에게 알리곤 했다. 
  이 작품은 전적으로 색채에 의존하고 있다. 반 고흐는 더 강렬한 빛과 생생한 색을 찾아 프로방스로 떠났던 것이고, 그곳은 오염되지 않은 낙원이었다. 프로방스의 따뜻한 태양 광선으로 내면의 빛을 되찾은 그는 이곳에서 발견한 ‘밝은 노란 색조’를 사용하여 그 빛을 최대한 자신의 화폭에 옮겨 놓았다. 반 고흐는 이제 인상주의 이론과는 거리를 두고 색채를 표현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다양한 노란색의 무한한 변형을 보여주고 있지만, 선명한 푸른 하늘과 수확기 건초 더미들, 그리고 황금빛 밀밭은 서로 수평적 구도로 균형을 이루어 대조를 보이고 있다. 비평가 존 리월드(John Rewald)는 반 고흐가 남프랑스에서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의 회화에서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은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가 표현해낸 모로코(Morocco)적인 색채의 활기와 세잔 풍경화의 분명한 윤곽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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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 the Threshold of Eternity


Now I understand
저는 이해합니다.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당신이 저에게 무얼 말하려고 했는지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그리고 당신의 광기로 당신이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했는지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사람들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어떻게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Perhaps they'll listen now.
아마 그들은 이제는 듣고 있을 거예요


  <영원의 문턱에서> 
  고뇌하는 인간. 고흐의 정서를 압축하여 보여주는 그림이 아닐까. 이 그림 앞에선 절로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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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atfield with Cypresses


For they could not love you
사람들은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지만
But still, your love was true.
하지만 아직도 당신의 사랑은 진실합니다.
And when no hope was left inside on that starry, starry night
별이 많은, 별이 많이 빛나는 밤에 우리 마음속에 남겨진 희망이 없을 때
You took your life as lovers often do.
당신은 연인들이 종종 그러하듯 목숨을 끊어 버렸어요.


  빈센트 반 고흐는 홀랜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여러 직업을 가졌으나 근본적으로 섬세하고 예민한 예술가적 성향과 종교적 영성으로 인해 평생을 심리적인 혼란 속에서 보낸 화가이다. 전도사를 비롯한 여러 직업을 지녔으나 1883년부터 미술 작업을 시작하여, 비록 생전에 대중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하였으나 수많은 걸작을 남긴다. 하지만 예술가이자 종교인으로서의 심적 고충에서 심화된 신경 쇄약 증세로 인해 1889년부터는 남부 프랑스의 생 레미(St. Rémy)에 입원하여 요양하게 되는데, 이 시기가 바로 반 고흐가 <삼나무가 있는 밀밭>을 제작한 때이다. 생 레미는 요양원이자 수도자들의 은둔지와 같은 수도원이었고 또한 미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작업실이었으므로 반 고흐는 스스로 이곳에 입원하는 “고통(suffering)”을 기꺼이 받아들여 1890년 우울증이 심화되어 자살하기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생 레미에서 생활하던 반 고흐의 심리 상태는 섬세한 그의 성정을 이해하고 물심양면으로 그를 지원하였던 절친한 사이의 동생 테오(Theo)와 교환한 서신들에서 잘 살펴볼 수 있다. 끊임없는 치료와 감시의 환경 속에서도 반 고흐는 친우였던 고갱과 같이 우주적 본질과 종교적 구도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는데, 이와 같은 그의 태도는 같은 생 레미 시기의 작품인 <별이 빛나는 밤>(1889)과 같은 주옥 같은 대표작들에서 잘 구현되고 있다.
  생 레미에서의 요양으로 프로방스 지방에 오랜 기간 머물게 되면서 반 고흐는 그 지역에 고유한 대기와 본질을 포착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것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풍경화에서 나타났던 아름다운 지리적 광경으로서의 인상들로 풍경을 인지한 것이 아니라 기이하고 그로테스크한 지중해 연안의 자연적인 형상들에 주목한 것으로, 더 나아가 상징적이고 심리적인 표현이 강조되는 그의 작업의 흐름과도 연결되는 것이었다. 프로방스 경치의 특징은 그에게 삼나무와 올리브 밭, 그리고 산들로 나타났다. 반 고흐는 삼나무에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만큼이나 아름다운 선과 비례”를 보고 깊이 매료되었다. 반 고흐의 표현에 따르면 삼나무는 “햇살 속의 풍경에서 검정의 끼얹음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흥미로운 검정의 톤으로,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기에 가장 어려운 것”이었다.
  1889년 7월 초 테오에게 보낸 서신에서 반 고흐는 그 해 6월에 시작한 삼나무 시리즈에 대해 언급했다. 반 고흐는 “밀밭과 양귀비꽃이 있고 스코틀랜드 격자무늬 천과 같은 푸른 하늘이 있는 삼나무를 그린 캔버스가 있다. 전자는 두꺼운 임파스토(impasto)로 그려져 있고 … 불볕의 더위를 상징하는 햇살 아래의 밀밭 또한 매우 두텁게 그려져 있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삼나무들이 항상 내 머리 속을 차지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삼나무를 소재로 그의 걸작으로 알려진 해바라기 작업과 같은 캔버스 시리즈로 만들고 싶어 하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한다. 그는 수평 구도를 가진 풍경화 형태의 <삼나무가 있는 밀밭>의 여러 버전을 펜 드로잉과 함께 개인 컬렉션에 있는 또 다른 유화로 반복해 그려 총 세 점이 존재하며, 이 외에도 세로가 긴 형태의 구도에 삼나무를 중심에 거대하게 다룬 그림들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삼나무는 형태적 매력 외에도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중해의 많은 국가들에서 삼나무는 정통적으로 죽음과 연관되어, 많은 묘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그것을 죽음의 상징으로 묘사하지는 않았으나, 강렬한 노랑의 해바라기와 대비되는 흑색의 자국과 같다는 삼나무의 묘사에서 죽음의 이미지가 지적되기도 하였다.

  반 고흐는 1885년에서 1886년 사이에 앤트워프의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면서 일본 목판화와 루벤스의 작품들에 감명을 받았으며, 1886년에 파리에서는 드가, 고갱과 쇠라와 같은 후기 인상주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화려한 색채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반 고흐는 인상주의의 비교적 안정적인 화면에서 더 나아가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평가되는데, 이러한 그의 작품들은 생동하는 생명력과 표현적이며 감정적인 선명한 색채, 그리고 화면에 그림을 그린다기보다도 물감을 두껍게 덧발라 표현하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으로 인해 힘이 느껴지는 붓 터치를 특징으로 한다.
  이 작품에서 삼나무는 그가 표현하였듯이 햇빛이 가득한 금빛의 들판 가운데 하나의 이질적인 검은 흔적처럼 화면의 끝까지 불꽃처럼 요동치며 수직으로 솟아 있고, 하늘은 붓 자국으로 가득 메워진 채 부풀어 오른 희고 푸르거나 초록의 구름으로 가득 메워져 있다. 불안감이 느껴지는 대상의 왜곡된 형태와 자유롭고 다채로운 붓 자국의 사용, 그리고 상반되는 채도와 보색의 대비는 불안정했던 화가의 심리 상태를 반영함과 동시에, 그가 추구했던 우주적 진리와 종교적 영성을 자연 속에서 발견하고 구현하려 한 시도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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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lf Portrait with Felt Hat


But I could've told you, Vincent:
그러나 빈센트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This world was never meant
당신만큼
For one as beautiful as you.
이 세상이 아름답진 않았다고


  우울한 눈빛의 미치광이. 인간이 태초에 가지고 태어난 순수함, 열정, 고집 같은 것들이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고 맺혀있던 것이 그의 광기가 아니었을까.


 
Self 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jpg
 

▲ Self 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


Starry, starry night:
별이 많은, 별이 많이 빛나는 밤에
Portraits hung in empty halls:
당신의 초상이 빈 벽에 걸려있습니다
Frameless heads on nameless walls
틀도 없이 이름도 없는 벽에
With eyes that watch the world and can't forget;
세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Like the strangers that you've met:
당신이 만났던 이방인처럼
The ragged men in ragged clothes.
누추한 옷을 입은 누추한 사람을 잊을 수가 없어요.
The silver thorn, a bloody rose
순백의 눈에 부서지고 상처받은
Lie crushed and broken on the virgin snow.
새빨간 장미의 은빛 가시


  고갱은 반 고흐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남자이기도 하다.
  1888년 2월, 반 고흐는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아를로 옮겨갔다. 그는 여기서 자신의 또 다른 꿈을 이루고자 했다. 바로 예술가 작업실을 열어서 예술가들의 유토피아로 만드는 것이다. 이제 모든 준비를 마쳤고 동료 화가들을 초대해서 입주시키기만 하면 되었다.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당연히 고갱이었고, 고갱 또한 그의 초대에 흔쾌히 응했다. 고갱이 온다고 하자 반 고흐는 마치 흥분제를 먹은 것처럼 한껏 들떴고 아를에서의 성과물을 고갱에게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그림을 한 점씩 그려냈다. 그렇지만 고갱과 고흐는 회화에 대한 견해차로 자주 다퉜고 고갱이 떠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힌 후 1889년 12월 23일 밤에 바로 예술사상 그 유명한 자해 사건이 발생했다. 
  고갱이 떠남으로써 반 고흐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반 고흐는 완전히 미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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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fé Terrace, Place du Forum, Arles


Now I think I know
저는 이해합니다.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당신이 저에게 무얼 말하려고 했는지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그리고 당신의 광기로 당신이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했는지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ening still.
사람들은 듣지도 못했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Perhaps they never will.
아마 그들은 이제는 듣고 있을 거예요


  산업 사회로 이행해 가던 19세기 말, 정신적 가치에 대한 열망은 예술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도록 이끌었다. 특히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이 감정적으로 강하게 애착을 느꼈던 풍경이나 자신과 관계있는 인물과 대상들을 작품의 소재로 삼곤 하였다.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가 제작되던 1888년부터 이듬해까지 지속된 이른바 ‘아를르(Alres) 시기’는 15개월 동안 약 200여 점이라는 방대한 작품을 남길 정도로 반 고흐가 활발하게 작품을 창작했던 시기이다. 또한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을 강렬한 색채와 임파스토(impasto) 기법으로 표현한 그의 독자적 양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때로 평가되기도 한다. 
  반 고흐는 아를르의 포룸 광장(Place du Forum)에 자리한 야외 카페의 밤 풍경을 담은 이 작품을 그리던 무렵부터 밤중에 작업하기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를 그리기 얼마 전에는 3일 밤에 걸쳐 자신이 즐겨 찾던 카페 드 라 가르(Café de la Gare)의 실내 정경을 표현한 <아를르의 밤의 카페(The Night Café in Arles)>를 완성했다. 현재 파리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 Over the Rhone)>(1888) 역시 이 작품과 같은 달에 그린 것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밤 풍경화는 9개월 후, 생 레미(Saint-Rémy)의 요양소에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1889)에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여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반 고흐는 이 그림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바로 이곳에서 밤을 그리는 것은 나를 매우 놀라게 하지. 창백하리만치 옅은 하얀 빛은 그저 그런 밤 풍경을 제거해 버리는 유일한 방법이지. … 검은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을 사용했어. 그리고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밝은 노란색으로 그렸단다.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 이어서 그는 “기 드 모파상(Guy de Moupassant, 1850-1893)의 소설 『벨 아미(Bel Ami)』(1885)는 대로의 밝게 빛나는 카페들과 함께 파리의 별이 빛나는 밤에 대한 묘사로 시작되는데, 이 장면은 내가 방금 그린 것과 거의 같은 거야”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반 고흐의 회화의 여러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색채가 형태나 구성에 종속되지 않고 개인의 감정이나 대상의 아름다움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는 점이다. 그는 눈앞에 있는 것을 똑같이 재현하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주관에 따라 색채를 사용하였다. 이 작품의 경우에도 검은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밤 풍경을 표현하고 있으며, 레몬 빛깔에 가까운 노란색으로 카페의 차양을 채색하고 있다. 또한 테라스의 가스등에서 퍼져 나오는 황금색의 불빛은 마치 보호벽처럼 사람과 주변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고, 벽돌 바닥을 따라 늘어진 카페의 파사드는 푸른빛으로 가스등의 빛을 반사한다. 이처럼 짙은 파란색과 밝은 노란색의 강렬한 색채대비는 물리적 세계에서 느껴지는 주관적인 감정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그의 철학을 엿보게 해준다.
  나아가 거리의 집들을 묘사할 때에 원근의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다든지 실제보다 형태를 과장되게 묘사하는 점, 그리고 두꺼운 물감으로 서둘러 그린 듯한 인물의 표현법 또한 눈에 띈다. 이를 통해 반 고흐가 독자적인 색채 사용과 개성적인 형태를 통해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과 그의 격정적인 내면세계를 가장 적절하게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회화의 법칙을 찾고자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가 색채나 선 같은 여러 조형 요소를 표현하는 방식에는 회화의 2차원적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는 그가 앞선 화가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환영적인 공간 묘사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 회화가 개인의 생각이나 심리적 상태를 보다 자유롭게 표현해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천재였지만 살아생전 미치광이로 인식되었던 그를 이해할 수 없었던 세상에서, 그는 37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순수한 광기가 낳은 그의 삶과 그림이 오늘날, 그를 이해하게 만든다. Starry, starry night. 별이 많은, 별이 많이 빛나는 밤에.


<참고 문헌>


[도서] 명화와 수다 떨기 (꾸예, 2014. 12. 15., 다연)
[네이버 지식백과] 자화상 [Autoportrait] - 빈센트 반 고흐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네이버 지식백과] 프로방스의 추수 [Harvest in Provence] - 빈센트 반 고흐 (The Bridgeman Art Library, 지엔씨미디어)
[네이버 지식백과] 삼나무가 있는 밀밭 [Wheatfield with Cypresses] - 빈센트 반 고흐 (The Bridgeman Art Library, 지엔씨미디어)
[네이버 지식백과]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Café Terrace, Place du Forum, Arles] - 빈센트 반 고흐 (The Bridgeman Art Library,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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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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