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패션이라는 미장센, 작품을 자유롭게 하리라 [패션]

루카 구아다니노의 <위아후위아>가 패션을 활용하는 방식
글 입력 2023.12.2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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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의 힘을 빌려 이야기하는 서사에서 패션은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중요하다. 특별한 설정이 아니고서야 등장인물은 대개 옷을 입고 있다. 관객은 그들이 입은 옷을 바라보며 하나의 기호로서 인물과 결부하여 의미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옷은 무엇보다 먼저 인물을 표현하는 일차원적 수단이다. 인물의 피부에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을 뿐더러, 시각적으로 보이는 외양에서 외모는 인물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운명적이고 선천적인 것이라지만 옷은 인물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건 그들의 성격까지 투영할 수 있다. 혹여나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더라도, 옷은 그것을 입어야만 하는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환경을 단박에 묘사하는 중요한 미장센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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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상징과 의미는 잠시 제쳐 두고, 패션이란 개성과 자유의 상징으로서 쓰일 때 가장 즐거운 법. 매서운 겨울, 추위에 허덕이며 패션이 주는 미적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 나는 TV 시리즈 <위아후위아 We Are Who We Are>을 떠올린다. 2020년에 방영된 이 작품은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유명한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가 처음으로 연출한 드라마이다. 그는 사회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을 담아내는 데 늘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영화는 이탈리아 내 미군 기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군인인 가족을 따라 관사에 거주하는 십 대 청소년들은 독특한 환경에 놓여 있다. 그들은 군인이 아닌 채 군인들과 공존한다. 자아를 탐구하고 정체성을 고민하는 관문 앞에서 기웃거리기 시작하는 나이대들. 모든 가능성을 인식하고 다양성을 경험한다면 바람직할 나이에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고 같은 속도로 발맞추어 뛰고 있다. 그럴 때 패션은 그들의 구원책이 될 수 있다. 무엇을 입을지 스스로 결정하는 일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고 창조하는 일이기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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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살던 14살 청소년 ‘프레이저’는 부대의 새로운 지휘관으로 발령 난 엄마를 따라 이탈리아에 오게 된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그가 관객들에게 처음 선보인 옷은 빨간 눈의 여인 일러스트가 대문짝만하게 그려진 반소매 티셔츠, 호피 무늬 반바지, 레오파드 패턴의 빨간 스니커즈. (정보: 상의 Raf Simons, 하의 Adidas x Yohji Yamamoto, 신발 Saint Laurent Paris) 정돈되지 않은 노란 머리와, 귀에는 늘 근사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어팟과 함께.

 

남들에 비해 유별난 프레이저의 패션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단숨에 내보이고 만다. 기지 내 사람들도 그의 패션을 보고 숙덕거리거나 또래 청소년들도 그를 처음 마주한 날 ‘티셔츠’라고 부를 만큼 패션은 단순한 자기표현 수단이나 취향의 영역 너머로 나아간다. 첫인상을 결정짓고 선입견을 만들어내며 별다른 설명 없이 그 사람 자체가 되는 데 성공하는 시각적 마법의 영역에까지 도달한다. 그러나 그렇게 누군가 자신을 특정 이미지로 규정하는 걸 프레이저는 의도한 적도 호응한 적도 없다.


프레이저는 적어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입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음악이나 문학과 더불어 패션이라는 예술을 순수한 마음으로 애호한다. 극 중에서도 직접적으로 패션에 향한 관심을 언급한다. 테라스에 앉아 군복을 수선하는 노부부에게 다가가 라프 시몬스를 아냐고 물으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다른 장면에서는 뎀나 바살리아를 아냐고 물은 후 베트멍 수석 디자이너였는데 지금은 발렌시아가 디자이너라고 설명해 주기도 한다. 옆집에 사는 ‘케이틀린’이 너는 왜 시를 읽는 건지 질문하자 이런 대답을 건네기도 한다. “네가 자주 입는 패스트 패션이 싫은 이유와 같아. 예쁘다고 샀다가 2달도 못 가서 버리잖아. 난 의미 있는 걸 원해. 시가 딱 그렇지. 모든 단어에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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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보다 깊고 확고하며 주류에 휩쓸리지 않는 예술을 향유하는 프레이저는 그의 미적 세계 속에서 스스로 충만하다면 더할 나위 없는 패션을 추구한다. 그래서인지 별종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진심으로 무언가에 임하면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는 법. ‘케이틀린’은 프레이저를 점점 흥미롭게 여긴다. 그녀는 종종 남자 옷을 입고 남자 행세를 하며 낯선 사람에게 남자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런 그녀를 목격한 프레이저는 남자 옷을 넌지시 선물해 주고 이분법적인 성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준다. 그는 케이틀린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고, 그 관계의 시작점이 된 옷은 그녀를 괴롭히던 사회적 틀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하는 셈이다.


정체성을 고민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대목에서도 패션은 중요한 오브제로서 서사의 흐름에 기여한다. 패션은 한 사람을 남자로 만들 수도, 여자도 만들 수도, 혹은 성별이 중요하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 패션은 만인을 위한 표현 수단 역할을 도맡을 만큼 충분히 자유로우며, 그 자유로움은 영상이라는 시각예술의 특성과 궤를 같이하며 서로가 합치하는 지점에서 탁월한 예술적 성취는 태어난다. <위아후위아>가 그러하듯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군복을 입은 무리가 군집을 이루며 큰 강처럼 밀려가는 곳에서 당돌하게 물살을 거스르며 개성을 표현하는 청소년들의 패션으로 시각적 대비를 명확하게 마련한다. 어둠 속에서 작은 섬광도 밝아 보이듯 자유라는 가치는 극 중 배경 속에서 힘차게 부각된다. 이렇듯 패션은 종일 드라마를 지배하는 강력한 표현 수단이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며 성장과 정체성이라는 주제 의식에도 노골적으로 일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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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 스타일링은 감독의 전작부터 계속해서 호흡을 맞춰온 ‘줄리아 피에르산티’가 어김없이 도맡았다. 그녀는 방대한 빈티지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라프 시몬스, 꼼데가르송, 칼하트, 준야 와타나베, 아디다스 등 다양한 브랜드를 조합하여 극 중 청소년들만의 개성 있는 착장을 완성해 냈다. 프레이저는 넘버나인 스니커즈에 꼼데가르송 삭스를 매치한다. 셀린느 폴로 반팔티를 걸친 날에는 무심한 듯 목에 이어팟을 둘러맨다. 캐피탈 롱슬리브 위에 칼하트 워크 셔츠를 매치하고, 꼼데가르송만의 혀 일러스트가 강렬하게 반복되는 트라우저로 마침표를 찍는다.


이런 아이템과 다채로운 코디를 보는 재미만으로도 쏠쏠하다. 감각적인 영상미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광은 덤. 즐거움보단 생존을 위해 옷장을 뒤적거리게 되는 요즘, 루카 구아다니노가 보여주는 투명한 질감의 자유로 묻어두었던 패션의 즐거움을 다시금 발굴해 보는 건 어떨까. HBO 드라마 <위아후위아>는 지금 왓챠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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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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