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표적인 해체디자이너 '장폴고티에'의 디자인 철학 [시각예술]

'앙팡 테러블'의 별명을 가진 패션디자이너
글 입력 2016.02.01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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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태생의 장폴고티에(Jean Paul Gaultier,1952.4.24)는 다른 디자이너들과 달리 공식적인 학교 교육을 받은적이 없었지만 10대 후반부터 패션계에 입문하여 피에르 가르뎅과 장파투에게서 실무를 배웠다. 쿠튀르에서 나오고는 1976년 처음으로 자신의 컬렉션을 였었다. 그의 첫 컬렉션은 그의 파격적인 작품때문에 악평이 자자했다.
하지만 1979년 오뜨 꾸뛰르에 성공적으로 입성하며 탑디자이너 대열에 등극하게 된다. 그는 1987년 오스카 드라 모드 디자이너 상을 수상하게 되고, 2003년에 헤르메스에서 그를 수석디자이너로 고용하게 된다.

장폴고티에의 디자인 특징은 격식을 타파하여 섹슈얼 이미지를 독특한 방식으로 강조한 것이다. 그러한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덕에 '앙팡테러블'이라는 별명을 갖고있다. 하지만 또는 그는 수투와 트렌치,가죽제품,쉬폰 가운 등으로 정평이 나있고 현대 패션의 아방가르드적 경향의 선구자라고 불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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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정의된 성정체성을 파괴한 디자인

패션 사학자 발레스 스틸(Valerie Steele)은 '장폴고티에가 패션계에 남긴 가장 큰 영향은 사회적으로 정의된 여성과 남성 그리고 그에따른 정체성(gender, sexuality)의 개념을 가지고 디자인을 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고티에는 패션디자인을 통해 여성/남성 이라는 것에 새로운 정의를 시도하거나, 양성간의 코드를 의도적으로 혼합시켰다. 대표적인것이 마돈나늬 콘브라(cone bra)다. 전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의상은 마돈나의 1990년 ‘Blonde Ambition’ 월드 투어를 위해 고티에가 디자인한 것으로, 원추 모양으로 가슴을 강조한 코르셋 형태의 겉옷을 마돈나와 백댄서들이 함께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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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이 코르셋 룩과 돌출된 가슴 디자인은 고티에 컬렉션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그가 만든 코르셋은 여성성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으로 페미니즘 운동가들에게 억압의 상징이라고 강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어렸을 적 할머니가 뷔스티에(bustier: 가슴을 올리기 위해 몸통을 조이도록 만든 속옷)를 입는 것을 도와주면서, 또는 폴리 베르제르 (Folies Bergere : 1869년에 만들어진 파리의 뮤직홀)의 여성 댄서들이 나오는 텔레비전에서 봤던 뷔스티에를 떠올리며, 코르셋을 강한 여성의 상징으로 해석했다고 한다. 실제로 19세기 초, 기마병의 자세를 꼿꼿이 세워서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남성들이 코르셋을 입기도 하였는데, 코르셋은 허리를 무조건 조여서 가늘게 만들고자 만든 것이 아니라, 적당히 조여 자세가 교정되면서 체형이 보정되는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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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티에의 코르셋은 속옷을 겉옷으로 입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을 뿐 아니라, ‘여성성=나약함’이라는 등식을 깨고 강한 여성, 남근 숭배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이런 성적으로 강력한 여성의 이미지는 1980년대부터 대두된 여권의 신장이라는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마돈나와 장 폴 고티에가 함께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마돈나는 무대에서 근육으로 단련된 몸에 고티에의 섹시한 의상을 입고, 카리스마 있는 20세기 대중문화의 여전사의 모습을 구현했다. 이 속옷을 겉옷으로 입는 섹시한 옷차림은 마돈나 이후 레이디 가가 같은 카리스마 있는 여자 가수의 무대 의상의 전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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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복에서도 그의 파괴성이 들어났는데 고티에는 미디에서 맥시까지 이르는 다양한 길이의 남성용 치마를 런웨이에서 선보였고, 자신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치마를 즐겨입었다. 고티에의 남성용 스커트는 출시되던 1985년 한 시즌에만 3000벌이 넘게 팔려나갔다. 치마를 입은 남성들은 파리의 식당에서 웨이터가 입은 긴 앞치마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남성을 오히려 더 남성스럽게 연출했다.스커트는 격식있는 재킷, 두꺼운 양말이나 부츠와 함께 착용되었으며, 초기 사람들의 예상되는 달리 남성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는 이성애자들에게 선호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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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폴고티에의 패션쇼에 나오는 모델을 선정하는것에도 그의 악동스러운 반항심이 발휘되었다. 날씬하고 마른 모델이 주류인 런웨이에 그는 할머니 모델부터 50대 중년 모델 그리고 뚱뚱한 모델까지 모두 장 폴 고티에 컬렉션의 모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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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된 형상 아래의 고전적 인상

파격적인 디자인일수록 시간의 흐름에 살아남기 힘들다. 새로움의 파괴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휘발해 버리기 때문인데 당장은 파격적인 것이 좋은 것 같아도 길게 보면 기리 권장할 사항이 아니다. 그래서 디자인은 어려운것이다. 장폴고티에는 그런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파리 한 복판에서 거의 영생을 얻은것처럼 장수하고있다. 그이유는 그의 디자인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인데, 파격적인 인상때문에 가려져있는 그의 고전주의가 있다. 

그의 디자인 작업은 해체와 통합으로 시작된다. 디자이너들이 감히 넘보지 못했 던 개념과 방법을 모두 거부하고, 거부 되어왔던 신성역을 넘나들며 포스트모더니즘 패션을 선도해나가고 있다. 단순한 모방이나 표절이 아닌 ‘새로움’과 ‘정신 에지’를 가 지고, 퇴폐성와 자유로운 감성이 살아있는 그만의 독특한 아이디어로 독창적인 창작으로 혼성모방패션을 구사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창조자의 자리를 굳히고 있다.


[박성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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