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꿈과 같은 인생, 그렇다면? - 연극 '인생은 꿈'

글 입력 2015.11.2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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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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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1일(토),
대학로 여우별씨어터에서
연극 '인생은 꿈(La vida es sueno)'을 관람했습니다.




'인생은 꿈'은 스페인 바로크 문학의 최후 대가이자 황금세기 문학시대 희곡 부문의 거장인
페드로 칼데론 드 라 바르카(Pedro Calderon de la Barca)의 작품입니다.
작가 칼데론의 2백여 편에 이르는 작품 중
특히 '인생은 꿈'은
스페인 황금세기 문학의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바실리오 왕은자신의 아들인 세히스문도 왕자가 태어나기 전에 보여준 여러 가지 징조들을 통해
왕자가 자신의 나라인 뽈로니아에 재난을 가져올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에 바실리오왕은 왕자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발표하고
왕자를 산속 깊은 탑 안에 숨겨서 자라도록 하죠.

세월이 흘러 왕자가 장성하자 왕은 비로소 왕자가 살아 있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탑 속에서 죄수처럼 지내던 세히스문도를 왕자의 자리에 앉힙니다.
하지만 우려했던 대로 세히스문도는 왕자가 되자마자 폭정을 일삼습니다.
병사 한 명을 창 밖으로 던져 죽여버리고, 심지어는 끌로딸도까지 죽이려 하죠.
결국 왕은 충실한 신하인 끌로딸도에게
'만약 세히스문도가 예언대로 재앙을 가져올 악인이라면
다시 잠을 재워 그가 왕자였던 잠시의 순간을 꿈이라고 믿게 만들자'고 제안하고,
왕자는 하루만에 다시 탑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봤던 장면은 바로 여기,
세히스문도가 하루 만에 다시 탑으로 돌아와 잠에서 깨는 대목이었습니다.
"분명히 어제 나는 왕자가 되어있었는데, 꿈이라기엔 너무도 생생했는데!"라며 세히스문도는 울부짖고,
세히스문도가 왕자였던 순간을 꿈으로 믿게 만들려는 끌로딸도는 시치미를 떼죠.
비록 세히스문도의 왕자로서의 하루는 진짜 꿈은 아니었지만,
꿈이라는 명목 아래 단 하루만에 왕자와 죄수라는 양극단의 신분을 넘나드는 세히스문도를 보며
인생이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인생은 덧없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연극 '인생은 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순히 '인생무상', 그 뿐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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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오 왕의 왕위를 물려받을 새로운 인물로 아스톨프가 내정되지만,
아스톨프를 반대하는 무리들은 세히스문도를 탑에서 다시 꺼내 반란을 도모합니다.
꿈인 줄 알았는데, 내가 다시 왕자가 된다고? 꿈인 줄 알았던 그 기억이 사실은 꿈이 아니었다고?
세히스문도는 더 큰 혼란에 빠집니다.
어쨌든 결국 과거의 예언대로, 바실리오 왕이 우려했던 대로 세히스문도는 반란을 성공하죠.
신탁대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대목이었어요.




하지만 자신의 아들 앞에 무릎을 꿇고 죽음을 기다리는 바실리오 왕을,
세히스문도는 죽이지 않고 조용히 일으킵니다.
폭정을 일삼던 과거의 왕자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죠.
세히스문도는 왜 반란에 성공하고도 자신의 적인 바실리오 왕을 처단하지 않은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이 연극의 제목, '인생은 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세히스문도는 말합니다.




자신은 이미 왕자로서의 부귀와 명예가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버지를 딛고 올라선 이 순간도 덧없는 꿈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네 모든 인생은 꿈일 뿐이고, 꿈은 그저 꿈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역시 꿈일 수도 있으니,
더 이상은 헛된 미망과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고
항상 겸손과 도덕을 잃지 않겠다는 세히스문도의 깨달음이었습니다.

세히스문도의 선택을 보며 제 삶 또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삶은 절대로 영원하지 않습니다. 삶은 언제나 유한합니다. 허무하게 증발해버리는 꿈과 같죠.
그렇다면 삶의 유한성을 깨달은 우리는 죽을 날만 기다리며 무기력하게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사람의 남은 하루하루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하죠.
그렇다면 한낱 꿈과 다름없다는 우리의 남은 인생도
이왕이면 인간답고 멋지게 살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꿈과 같다면, 고통스러운 악몽보다는 멋지고 행복한 꿈으로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
조금은 단순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한없이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질 때 저는 늘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세히스문도도 아마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연극 '인생은 꿈'은 이렇게 세히스문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아스톨프로사우라, 에스트레아, 끌로딸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들 또한 
주목할 만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로사우라의 하인인 클라린이 극 중간중간에 선사하는 유머러스함도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였어요.
다소 지루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고전 작품이지만,
배우들의 멋진 연기와 의미있는 대사들, 인물들간의 흥미로운 관계로
더욱 풍성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연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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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생은 꿈'



2015년 11월 18일~12월 6일 (평일 8시 / 토, 일 3시 / 월 쉼 )
장소: 여우별 씨어터
작: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 (Pedro Calderon de la Barca) 
연출: 반무섭
출연: 박지호 이규동 오현우 김지용 구선화 빙진영 이승현 장영철 서준모 
제작: 극단 작은신화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사)한국소극장협회
전석 30,000원
만 13세 이상 관람가
문의: 코르코르디움 (02-889-3561,2)
 
 

 
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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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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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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