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SIDance 잉크보트의 ‘선 사이에서’

일본 풍이 느껴지는 무용, 선 사이에서
글 입력 2015.10.27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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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까지 내야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다 할 수 있을 거란 나의 착각은 나를 산산조각 냈다. 생각보다 과제가 힘들었고, 내 정신은 ‘선 사이에서’를 보고 있는데 나는 정작 컴퓨터 앞에 있었다. 넌 왜 사냐며, 마음속으로 나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그럴 거면 ‘선 사이에서’를 보겠다고 하질 말지.

겨우 과제를 끝내고 버스에 올랐다. 생각보다 좀 많이 늦을 것 같았다. ‘버스야 빨리 달려라’ 네이버 지도 시간이 틀렸으면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렇지. 헤매느라 네이버 지도 시간보다 더 많이 걸렸다. 좀 늦긴 했지만, 2층에서 보게 되었지만 ‘선 사이에서’가 뿜어내는 그 몽환적인 분위기에 쉽게 파고들었다.



‘선 사이에서’는 신이치가 한국 무용가 이도희를 만나며 꿈과 현실 사이의 공간에 대해 나눈 대화로부터 시작된 작품이다. 부토와 일본식 극예술, 한국의 샤머니즘이라는 이질적인 전통을 바탕으로 잠이 든 상태와 깬 상태 사이의 공간에 대해 탐구하는 이 작품 속에서, 관객은 부유하는 이미지를 따라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사이의 선’을 찾게 된다. 불합리와 진부함, 아름다움과 공포, 샤머니즘과 로큰롤, 상징과 익명성 사이의 공간, 그 경계가 작품 속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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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오. 혁오가 생각났다. 특유한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에 인기를 얻은 혁오. ‘선 사이에서’도 그런 몽환적인 분위기가 뿜어져 나왔다. 주제부터가 몽환적이다. 잠든 상태와 깬 상태의 사이. 그 사이에서 명감을 얻어 무용을 꾸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노래도, 분위기도 모두 특이하고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분위기 자체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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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 옷을 입은 여자와 남자, 그리고 잠을 자는 사람. 여자와 남자는 잠의 수호신인 것 같았다. 때로는 같이 춤을 추고, 때로는 따로 행동하면서 분위기를 이끌었다. 우주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인 것 같기도 했다. 의상이 너무 하얘서 그런가.  
분위기의 최고봉은 은은한 불빛이었던 것 같다. 남자가 들고 왔던 은은한 불빛은 주황색을 뿜으며 무대를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했다.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바다 위를 가르는 기차를 타고 할머니 댁을 방문하는, 그런 낯선 분위기와 따뜻한 분위기가 어우러진 느낌이었다. 
노래도 분위기에 한 몫 했다. 노래가 생생하게 들리기도 하고, 몽환적이라 도대체 어떤 음악이 이렇게 공연의 분위기를 압도하지? 하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노래는 무대의 왼쪽에서 라이브로 공연되고 있었다. 여자 두 명이서 작은 키보드를 두드리기도 하고, 마이크에다 목소리를 퍼뜨리기도 했다. 가사는 ‘아’. ‘아’밖에 없었는데 느끼는 내용은 ‘아’ 이상이었다. 화음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이내 그 분위기는 밝은 불빛으로 전환되었다. 분위기의 전환이 그 무대를 지겹지 않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밝은 분위기에서 남자는 재미의 요소를 더하기 위해서인지 놀이를 진행했다. 통 안에 주사위를 던지고 무슨 숫자인지 맞추는 놀이였다. 그러면서 관객들과 소통하기도 했다. 잠을 자는 사람은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도 잘도 잠을 잤다. 왜 이 요소를 넣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몽환적인 분위기에 반전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잠이 때로는 재미있으면서도 웃음이 넘치는, 그러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대와 관객석 사이를 가로지르는 또 다른 선이 있었는데, 그 선은 무대와 관객을 이어주면서 무대에서의 기능을 했다. 빨래를 너는 장면에서 사용되었다. 잠에서 깨어나는 아침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공연이 무대에서 관객으로 시선이 가면서, 잠에서 깨는 상태로, 새벽에서 아침으로 가는 그 상태를 ‘선’으로 표현해서 주제를 더 강화시켰다. 

사실 그 선 말고는 공연을 볼 때에는 잠들고 있을 때의 장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과 깬 사이가 아니라.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과 그 옆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구조 상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그 분위기만큼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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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나서 잉크보트 무용단과 관객과의 소통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잉크보트 무용단은 대답을 해주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 여유가, 참 보기 좋았다. 사실 그 모습이 무대에서보다 더 좋았던 것 같다. 무대에서는 무대에서 입혀졌던 캐릭터들이 조금은 작가의 의도대로 쓰였다면, 무대 아래에서는 무용수들, 감독들, 스태프들 본연의 모습이 나왔다. 본연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그 여유로운 웃음에서 뿜어져 나왔다. 뽐내지 않았는데 매력이 자연스럽게 보였다.

다음은 잉크보트와 관객 사이의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선 사이에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1. 바구니 안에서 옷을 꺼내 입고, 물을 담고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무슨 의도인가?

바구니 안은 기억 안을 의미한다. 기억 안에서 꺼낸 것들을 의미한다.


2. ‘선 사이에서’를 보면 일본 문화를 많이 답습한 것 같다.
 
일본의 ‘노’라는 컬쳐를 많이 공부했다. ‘노’라는 컬쳐가 영혼의 기억(꿈)을 표현하는 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배경에 넣었다. 그리고 스태프 중 다나, 신주쿠는 일본 문화를 많이 접해본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의 문화가 많이 담긴 것 같다. 우리의 뮤지션들은 모두 서양 사람들인데, 그래서 서양 뮤지션과 동양 문화를 합치려고 노력했다. 


3. 무대미술, 공간이 특이하다.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는가?

특별한 의미를 생각하고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그날 만나는 상황마다 아이디어를 얻어서 표현해낸다. 예를 들면 마지막에 나오는 새소리는 만나서 회의를 했을 때 났던 새소리를 직접 따서 넣은 것이다. 요약하면, 마음속에 떠오르는 조합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4. ‘선 사이에서’에 따라갈 만한 줄거리가 있는 건지 아니면 보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른 건지?

둘 다이다. 각자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을 것이고 가지고 있는 스토리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4년 전 잠든 상태에 집중하면서 꿈과 현실의 사이, 뜨겁고 차가운 사이에 관심이 생겼다. 그 사이를 따라가면서 줄거리를 파악해도 괜찮을 것 같다. 





참고

잉크보트

신이치는 1998년 창설된 샌프란시스코의 공연그룹 잉크보트의 예술감독이다. 1960년대 일본의 아방가르드한 공연 실험이 그의 미학 및 신체 트레이닝의 핵심을 이룬다. 신이치는 안나 할프린(Dance Maker), 랠프 레몬(Dance Maker)과 함께 훈련과 활동을 계속해서 함께해왔다. 미일우호위원회(US/Japan Friendship commission)를 통해 신이치는 니혼부요(Nihon Buyo), 카구라(Kagura), 아이기도, 샤쿠하치(Shakuhachi, 악기), 노(Noh, 일본 전통 가면극)에 대해 공부했다.


[이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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