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낭만이 무너져도 남는 건 [도서/문학]

내가 몰랐던 ‘젤다 피츠제럴드’ 읽기
글 입력 2023.12.1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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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젤다 피츠제럴드가 그저 정신질환을 앓던, 스콧 피츠제럴드의 배우자인 줄만 알았다.

 

맞긴 한데, 그것밖에 몰랐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읽어 본 적이 없고, 영화나 책 어딘가에서 그의 예술가로서의 모습을 제외한 모습, 그러니까 ‘스콧 피츠제럴드의 아내’로서 그려지는 것만 접했을 뿐이다.

 

대개는 그를 놀기 좋아하고, 산만하고, 스콧 피츠제럴드의 글 집필에 방해가 되던, 그리고 결국엔 정신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여자로 설명할 뿐이었지만 젤다는 재즈 시대의 중심에 있던 작가였고, 무용수이자 화가였다.

 

재즈 시대는 1920년대 미국의 향락과 풍요의 시대였다. 그래서 이 시기에 나왔거나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문학과 영화에도 부유함, 나른함과 여유, 반짝이는 낭만과 흘러넘치는 향락, 그리고 함께 따라오는 퇴폐와 공허가 담겨 있다.

 

그때를 살아 보지 않았음에도, 아니 어쩌면 살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밝음과 어두움이라는 양면을 읽어보는 게 흥미로운데, 특히 재즈 시대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프란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글을 읽을 때마다 머릿속에 그때의 분위기가 그려지는 듯하다.

 

권태로운 여름과 사치의 겨울을 사는 상류층 미국인들, 전쟁의 상처를 잠시나마 잊고자 과장된 반응을 보이는 것 같기도, 아니면 자연스럽게 시대의 흐름에 휩쓸린 것 같기도 한 주인공들의 일상.

 

어딘가는 여전히 가난했지만, 부유한 부류는 넘치게 부유했을 테고,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그 일상을 즐기다가 괴로워하다가를 반복하는 부류의 인물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그린 작품들.

 

스콧 피츠제럴드의 글은 많이 발표되었고, 어떤 작품들은 굉장히 유명하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스콧과 함께 이 시대의 중심에 있던 젤다의 글과 그의 능력들은 묻혔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야 꺼내졌다. 그리고 젤다의 글을 한 번도 읽어 보지 못했던 나는, 타인의 시선들이 합쳐져 그 한 방향으로만 설명된 젤다 말고, 젤다가 이야기하는 진짜 젤다가 궁금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한 순간, 바로 꺼내 들었다.

 

아니, 이런 책이 있었어?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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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다섯 개의 단편소설과 아홉 개의 산문이 실려있다.

 

그리고 이 글은 내가 마치 함께 어떤 공간을 짧게 훑어보는 것 같다가, 경매 현장을 훔쳐보는 것 같다가, 비슷하지만 확실히 다른 몇 명의 여자들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이 젤다를 읽었다는 말들로 흘러가는, 그런 글이다.


*

 

먼저 산문부터 읽었다. 소설보다는 좀 더 젤다의 실생활 속의 것들이 담겨 있을 거라는 생각에, 산문이 좀 더 궁금했다.

 

그리고 첫 문장부터, 내가 그동안 몇 개의 영화와 책등에서 보고 들으며 얄팍하게 상상해 온 젤다의 경쾌한 이미지부터 떠올랐다. 젤다는 확실히 재즈 시대의 중심에 있던 예술가로서 화려한 곳을 경쾌하게 여기저기를 오고 가는 일상을 살았을 테니까. 그리고 그 경쾌함과 함께, 냉소와 무거움도 있었다.


일단 몇 장 읽었는데도 나는 젤다의 이야기하는 방식과 말투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스콧의 작품에 대한 서평인 <친구이자 남편의 최근작>에서 젤다가 작품 속 여주인공을 ‘현실에서 친구 맺고 싶은 사람으로 느껴졌다’고 한 것과 비슷하게, 나는 몇 문장만 읽었을 뿐인데 젤다를 현실에서 만나 보고 싶어졌다. 만난다 한들 친구가 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누가 알겠는가. 서로 자주 보지 않고 보기에도 안 어울리지만 꽤 잘 맞는 친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웃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젤다의 이 장난스러운 글이 마냥 가볍지는 않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과감히 할 말을 다 하는 당당함 덕분이지 않을까.

 

 

어떤 페이지에선 결혼 직후 불가사의하게 사라진 제 옛날 일기의 일부가 보여요. 꽤 편집되어 있지만 편지글들에서도 어쩐지 낯익은 내용이 있고요. 아무래도 피츠제럴드 씨는-스펠링 제대로 쓴 것 맞죠?-표절은 집안에서 시작된다고 믿나 봐요. (118쪽)

 

특히나 질척거리는 부분들에서는 학창 시절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낯선 이름들을 찾아가며 벼락치기로 과제를 하던 때가 떠올라 힘들었어요.(119쪽)

 

 

특히 이 책에 실린 작품들 중 가장 마지막에 있는 <경매—1934년형>에서는 스콧과 함께 모은 물건들 몇 개를 경매에 내놓는다는 설정을 하고 각각의 물건들에 그들의 어떤 시간이 담겨 있는지 이야기하는데, 흥미로운 표정을 하고 지켜보는 사람들 앞에 서서 어색함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유려한 말솜씨로 이야기하는 젤다와 스콧 부부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품목 13. 스크랩북 12권. 우리가 얼마나 근사한지 또는 끔찍한지 또는 평범한지를 말해 주는 것들이죠. 한번 가격을 불러 보세요. 뭐라고요? 아뇨, 그 두 배에도 안 팔아요. 4달러라고 하셨나요? 낙찰! (199쪽)

 

 

이렇게 경쾌하고 흥겹다가도 다른 글에서는 또 다른 느낌이다.

 

젤다는 재미있어하는 사람들 앞에서 큰 목소리로 경쾌하게 이야기하는듯한 느낌은 잠시 집어넣고, 좀 더 차분하게 자신이 바라보는 것, 관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플래퍼 예찬>과 <플래퍼는 어떻게 되었나?>에서는 사람들이 파티광에 푼수 이미지로 가둬버린 ‘플래퍼’라는 부류를 이들의 예술성을 중심으로 다시 설명하며, 그 시대에 분명 중요하게 기능하는 부류로서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유로움과 젊음을 즐기기만 했던 여자들이 아니라, 보통의 청춘 여성의 자아에 ‘플래퍼 자아’라는 게 있었던 여자들이었기에 느껴야 했던 것들, 할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이 플래퍼들이 점점 나이를 먹으며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되는지, 플래퍼 그 자체였던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과 자신이 속한 부류를 설명한다.

 

 
그런데도 플래퍼 문화를 향한 가장 거센 비난은 그것이 이 나라의 청춘을 냉소적으로 만든다는 주장이다. (126쪽)
 
플래퍼! 그녀는 이제 나이 들어간다. 그녀는 자신의 플래퍼 신조는 잊고 오직 자신의 플래퍼 자아만을 의식한다. (134쪽)
 

 

그 외에 <파크 애비뉴의 변화하는 아름다움>에서는 한 장소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창문들, 단아한 신록, 파사드들, 풀밭 등)을, 그리고 이 광경의 변화를 묘사한다.

 

제목을 보면 긍정적인 시선으로 이 장소를 바라보는 것 같은데, 또 글을 읽어보면 이 장소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본주의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요소들이 이곳은 부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느껴지는, ‘파리 풍경 펜화에서 느껴지는 정취’가 보여주는 아침 아홉 시 같은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아름다움도 이야기한다.


나는 마지막의 가상 경매를 혼자 조용히 구경한 후, 다시 앞으로 돌아가 단편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오히려 산문보다 더 젤다만의 경험과 감정이 담겨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주인공들을 통해 결혼과 파혼, 꿈과 가정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꿈을 선택하지 않았던 경험 같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들면 <오리지널 폴리스 걸>에서는 일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도 일과 진짜 자신은 구분하며 지냈던 여성이 결국에는 화려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쇼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점점 잊히고, 그래서 외모에 대한 강박을 느끼는 모습을 화자의 회고록 같은 글을 통해 보여준다.

 

<남부 아가씨>에서는 각각 남부, 북부 출신의 두 여성이 어느 한쪽에서는 중심이 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방인이 되는 것, 한순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 그리고 결혼과 파혼을 경험하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재능 있는 여자>에는 특히 젤다가 발레 무대를 제안받았을 때의 심리가 담겨있는 듯하다. 젤다가 화자를 통해 남편과 아기, 일 둘 중 일에서는 그래도 인정받을 수 있기에 일을 선택한 여성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한 복잡함이 느껴졌다.


나는 몇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읽고 나서 ‘그래서 이 이야기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라는 아리송함을 느꼈을 때가 있다.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확실히 이해하면서 여운을 느끼는 게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젤다의 글은, 읽고 나면 아리송한 게 아니라 읽으면서 아리송했다. 그가 이 장소를, 아니면 이 인물의 선택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느낌 때문인 듯하다. 이 책에 실린 산문 몇 개도 그렇고, 특히 단편소설에서는 이야기를 확실하게 정리하지 않는다거나, 마치 자신만 아는 일기장의 부분만을 옮겨놓은 듯한 불친절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젤다의 글을 읽고 싶은 건, 마치 그 자신 같은 자유로움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치 그 모호함과 불친절함이 마치 그의 삶에서는 너무나 익숙한 요소라서, 그 안에서 그걸 이용하며 즐기는 것 같은 움직임이 느껴진다는 게 좋았다.

 

내면은 자유로웠지만 사실상 딱딱한 현실에 갇혀 살아야 했던 여주인공이, 마지막 장면에서는 시원한 자유로움을 만끽하던 어떤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젤다는 여전한 불안과 아픔으로 마지막을 살다가 떠났지만.


또, 젤다의 글에서는 이야기의 흐름뿐만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나 장면을 묘사하는 것에서도 마치 재즈의 선율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 같은 자유로움이 느껴지는데, 인물의 미묘한 표정을 포착하거나, 감각들이 바뀌고 섞이는 듯한 묘사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재즈 시대의 중심에 있는 일상을 살며 화려함과 공허함을 왔다 갔다 했을 그와 비슷한 느낌일 것 같다.

 

 
거기다 그의 눈에는 다른 소득 계층의 여자를 접한 남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머쓱한 표정이 어렸고, 그의 정중함도 그것을 지우지는 못했다. (46쪽, 남부 아가씨)
 
7월의 해가 나무 꼭대기들을 주황빛 나는 금색으로 벗겨냈고, 빌딩들을 모사한 호리호리한 그림자들을 데워서 작게 졸였다. (68쪽, 재능 있는 여자)
 
도시 위를 높이 맴도는 맑고 투명한 뉴욕의 황혼도 여기서는 실종된 오후를 숨기기 위해 표류하는 듯하다. (137쪽, 파크 애비뉴의 변화하는 아름다움)
 

 

낭만의 중심에는 예술가 젤다도 있었는데, 왜 그의 예술가적 면모는 묻혀 버렸던 걸까?

 

여성의 ‘플래퍼’적 기질은 예술가적 기질보다 더 주목을 받아 소비되고, 글도 온전히 그의 이름으로 발표되지 못하고, 저명한 남성 작가의 영향력도 있었으니, 젤다도 그의 단편소설 속 여성들과 비슷했을 것이다.

 

자유롭게 행동했지만 불안한 정신 건강이 자유의 발목을 잡고, 스콧의 집필을 방해했다고 소문이 나있지만 막상 자신의 능력을 펼쳐 예술성을 인정받는 걸 방해받았던, 문학과 무용과 그림까지도 잘했던 젤다. 마치 빛나다가 무너지곤 했던 낭만에 그의 예술도 같이 묻혀 버리기라도 한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의 글은 남아, 1970년 작가 ‘낸시 밀퍼드’가 젤다의 평전을 발표해 퓰리처상 후보에도 오르면서 젤다와 그의 글이 관심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젤다의 글이 그의 이름으로 공개되고, 소비적인 시선에서 비롯된 오해 또한 젤다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며 바로 잡혔다. 정정하는 것, 오해의 틀 안에서 벗어나 다시 바라보는 것은 이렇게 마땅히 행해져야 할 의미 있는 일이다.

 

젤다의 다른 글도 읽어야 할 것 같다. 아니, 읽고 싶어진다. 지금까지 ‘플래퍼’ 젤다는 충분히 들었으니, 이젠 ‘예술가’ 젤다를 더 알고 싶고, 몇 개의 글을 읽어보았으니 또 다른 몇 개의 글을 더 읽고 싶다.

 

낭만이 화려하게 빛을 발하던 때, 그러다가 어느새 전소된 그때와 닮은 삶을 살던 자신과 닮은 글을 썼을 그의 글에는 젤다 자신과, 자신과 같은 여성들을 변호하는 단단한 목소리가 있고, 주변의 것들을 관찰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예술가의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낭만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것, 그리고 낭만은 결국 무너졌지만 수많은 감정들과 예술과 글이 남는다는 걸 보여준 예술가들 중 한 명이었던 젤다 세이어 피츠제럴드. 몇 개의 글이라도 드디어 읽고 나니 어딘가 시원한 느낌이다.

 

 
이제 집은 다 찼고 아늑해요. 우리에게는 휴대용 하나를 비롯해 축음기가 다섯 대 있지만 라디오는 한 대도 없고, 침대는 열한 개 있지만 뚜껑 달린 책상은 하나도 없어요. 지난 15년간 우리가 글로 어렵게 벌어서 말로 쉽게 써 버린 40만 달러가 남긴 물리적 잔재들. 이것들을 결국 모두 이렇게 간직하게 되는군요. 어쨌거나 우리에게는 이제 이 컬렉션이 우리보다 검약한 친구들의 폴란드 채권과 페루 채권만큼이나 소중해요. (201쪽, 경매—1934년형)
 


[강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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