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햄스터가 우울을 다루는 흔한 방법 [만화]

글 입력 2024.01.2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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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주 흔한 햄이 있다. 원룸 방에 톱밥을 깔고 쳇바퀴에 옷을 널어놓는다는 점만 빼면 우리네 인간과 별다를 바 없는 햄스터다.

 

알람이 울리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고 사회생활용 마스크를 장착하면 누구보다 밝고 성실한 척 노동하는. 그리고 아르바이트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김치찌개를 시켜 먹는 그런 아주 평범하고 흔한 햄. 정신없이 먹어대다 보니 살이 과도하게 쪄버렸다.

 

최근 햄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얼마 못살고 죽을 인생,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 해보자는 마음을 먹은 후로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말만 꺼내도 부모님의 억장이 무너지는” 그림 작가에 도전한다. 힘내자는 친구의 말에도 비관이 담겨있는 듯하다.

 

또 최근 햄은 불경기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었다.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머릿속은 온통 돈뿐이다. 빵 공장에 취직해 새로운 일을 시작했지만, 집에 돌아오면 고된 업무의 찌꺼기 같은 에너지만 남아있을 뿐이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림이든 공부든 시작하지만 결국 끝은 잠 혹은 야식으로 귀결된다.

 

햄이 바라는 건 거창하지 않다. 물론 한 달에 2억 벌기와 같은 단비 같은 망상에 젖을 때도 있지만 정작 햄의 진짜 소원은 적당한 집을 구해 적당히 친구들을 초대해 한적히 사는 것이다. 퀘퀘하고 어두운 햄의 방에서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밝고, 화사하고, 푸릇푸릇한 삶. 하지만 지금의 햄은 빨래걸이가 된 쳇바퀴보다도 더 삐그덕대는 굴레에 빠진 듯하다. 시간이 자신을 죽여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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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의 신작, 잇선 작가의 <흔한햄>은 글을 쓰는 일자를 기준으로 2만 6천여 명이 관심 웹툰으로 등록했다. 매 화마다 3~400개의 댓글 중 항상, 어느 화를 열든 ‘나를 보는 것 같다’ 혹은 자신의 관련 경험담을 풀어쓴 베스트 댓글이 보인다. 천여 명의 공감을 받는 댓글도 있다. 평균적으로 1,000~2,000명이 별점을 매기는 것에서 미루어 보아 본 웹툰의 독자 거의 대부분이 공감한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하겠다. 이는 아직 적극적으로 홍보되지 않은 신작이라는 점과, 마이너한 감성의 컷툰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상당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다시, 여기에 아주 흔한 햄이 있다.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거나 생활비를 걱정하는 것 말고도. ‘미래’라는 단어가 가장 무겁고 숨 막히는 말이 되고 내일을 기대하지 않으면서 슬픔도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햄이 진짜로, 정말로. 흔한 사람인 시대가 되었다.

 

내 주변에도 적지 않은 햄이 있다. 직접 나에게 밝힌 고마운 사람도 있고 대충 눈치로 알아챈 사람도 있고 원하지 않은 방식으로 알게 된 사람도 있다. 덕분에 아주 열심히 우울에 대한 정보들을 물색해왔다. 유튜브에서 ‘우울’을 검색해 나오는 웬만한 의사 채널은 거의 다 시청했고 우울증 극복기, 옆에서 우울을 돕는 방법, 힘이 되었던 말과 행동 등 선배들의 경험담도 많이 읽고 들었다.

 

그러나 도움이 되고자 노력할 때마다 느꼈던 것은 무력함이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내가 지금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불쾌하진 않을지를 고민하다 보니 항상 노력은 늦었고 진심은 조심스러움에 가려져 희끄무레해졌다. 소중한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될 수 없음을 스스로 느낄 때 나는 이렇게나 작고 비루함을 통감했다. 나도 같은 경험이 있어서 더 잘 공감해주고 힘이 되어줄 수 있었다면, 하는 어리석은 바람도 품었었다. 그만큼 우울증은 막막한 것이었다. 비록 당사자에 비할 수는 없더라도, 그럼에도 그것은 끝없는 터널을 터벅터벅 걷는 듯 막막했다.

 

*

 

잘 부른 곡엔 평가가 달리고 명곡에는 사연이 달린다고 한다. 김진호의 <가족사진>이나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라이브 영상에 각자의 부모님을 추억하거나 힘들었던 시절을 견뎌낸 사연을 끼적이듯이 말이다. 그러면 그 사연에 공진하는 누군가는 답글로 응원의 메시지, 공감의 메시지 등을 남겨가며 댓글 창이 점차 모두의 일기장이 된다. 그렇게 SNS 댓글 창은 흔치 않게 자유로운 담론장으로서의 순기능을 수행한다.

 

누군가 자신의 사연을 적고 가고픈 ‘명곡’의 공통점은 공감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같은 아픔을 공유한다는 동질감은 단연 가장 강한 공감이다. 누군가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다면, 함께 이겨내자는 위로 내지는 주변의 성공담을 통한 응원 등을 내밀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가장 아래에는 나만 혼자인 것이 아니라는 묘한 소속감이 은은히 잔존한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아프지 않구나 하는 사실만으로도 외로움이 덜해진다. 나 혼자만 힘든 거라면, 남들은 이런 장애물 따위 모두 아무렇지 않게 뛰어넘는 거라면 정말 내가 비정상 같으니까.

 

그러나 햄은 아주-아주 흔한 햄스터다. 이것은 사실명제이다. 햄을 비롯해 햄의 친구 중에도 우울과 오래 동거한 햄스터가 있다. 달리 말하면, 나도 내 주변의 누구도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뜻이다. 우울증은 흔한 질병이고 대단히 사회적으로 위험한 병이 절대 아니며 당신처럼 힘든 날을 사는 사람이 여기에 더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흔한햄>의 댓글 창에는 왕왕 독자 개인의 이야기가 올라오곤 한다. 같은 증세를 겪었을 때 어떻게 극복했는지, 우울증의 치료에는 어떤 점이 좋은지 경험을 공유한다. 답글에는 절실히 병의 호전을 원하는 독자들의 활발한 간담회가 열리기도 한다. 그런 댓글을 하나씩 읽다 보면 햄스터 한 마리의 일기가 이렇게나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구나 싶다. 당신처럼 힘든 날을 사는 사람, 아니, 사람이 아니라 햄스터가 여기에 있다고 하더라도. 

 

*

 

햄은 아주 흔한 햄스터이고, 우울도 흔한 질병이지만 절대 쉽게 봐서는 안 된다. 증세가 심하다면 반드시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고 그렇게 하면 어떻게든 좋아질 수 있다. 우울은 끝없는 터널을 걷는 것이 아니라 아주 길고 휘어진 터널을 걷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 걸을 때에는 끝이 보이지 않아 막연하지만, 굴곡을 따라 걷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출구가 보일 것이다. 앞으로 햄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다. 그의 우울이 더 깊어질 수도, 얕아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햄이 포기하지 않고 우울을 딛고 일어서는 전개를 기대하고 싶다. 그림 작가에 도전했듯이, 고된 노동 뒤에도 공부를 위해 책상에 앉았듯이. 그런 작은 노력이 쌓여 언젠가는 햄의 만성적인 우울이 차츰 사라지는 앞날을 바라본다. 그렇게 우울을 이겨낸 햄의 모습이 <흔한햄>이라는 제목의 진정한 의미를 채워주기를 기대해 본다.

 

 

[박상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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