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역사를 위한 예술'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까지

폴란드, 천년의 예술展
글 입력 2015.07.2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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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위한 예술'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까지

폴란드, 천년의 예술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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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에게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쇼팽과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이라는 사실이 전부였던 필자에게, 이번 전시기획전은 참 특별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쇼팽과 코페르니쿠스보다는, 오히려 폴란드의 근 현대 예술가들과, 그들의 예술관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시간이었다. 폴란드식 이름이 많이 생소해 하나하나 기억에 담기는 힘들었지만, 작품이 준 인상만큼은 강렬했다.
  
1. 폴란드 예술의 기원, 중세
2. 사르마티안 시대의 예술
3. 억압의 시대에 핀 영혼의 왕국
4. ‘젊은 폴란드’시기의 예술
5. 20세기의 폴란드 예술

 위와 같이 총 5부문으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회에서, 필자는 ‘젊은 폴란드’시기의 예술20세기의 폴란드 예술을 특별히 주목해보고자 한다. 




  20세기로의 전환기를 대표하는 '젊은 폴란드' 시기의 예술은 시와 음악, 신화 등 여러 예술 장르에 관심을 가지며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작품이 창조되었다. 특히나 이 시기는 스스로를 ‘젊고’‘새롭다’고 정의했으며, 애국적 주제뿐만 아니라, 순수한 예술적 가치를 추구한 시기였다. 기존 세대의 화가들이 역사를 담아내는데 치중했다면, 이 시기의 화가들은 기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자연풍경이나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초상화를 자주 그렸다고 한다. 


야체크 말체프스키의 <한 줄의 현 - 자화상,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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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체프스키는 자신의 생애를 자화상 속 다양한 포즈와 의상을 통해 묘사한 화가이다. 이 작품에서 화가자신은 갑옷을 입은 채로 한 줄의 현밖에 남지 않은 바이올린을 들고 있으며, 화가 자신의 양 옆에는 폴란드의 시인, 극작가인 율리우스 수오바츠키의 시, <안헬리(Anhelli)> 속  로맨틱 인물인 천사 엘로에(Eloe)와 순록 목자인 엘레나이(Ellenai)가 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예술을 계속해야 하는 예술가의 소명을 하나 밖에 남지 않은 현을 통해 표현한 작품이다. 예술의 독립성뿐만 아니라, 애국심을 표현한 이 작품은 그가 살았던 19후반~20세기 폴란드의 식민지배 상황을 잘 나타낸다. 당시는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제국군대에 의해 분할된 후 실시된 탄압정치와 경제위기, 이에 대항한 폴란드 민족 문화운동이 있던 시기였다. 
 
   
야체크 말체프스키의 <죽음>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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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체프스키는 또한 ‘죽음’이라는 소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그의 작품들에는 그리스 신화 속 죽음을 의인화한 신인 ‘타나토스’가 자주 등장한다. 죽음의 본능이라 할 수 있는 타나토스를 무섭고 혐오스럽게 묘사하며 파괴성을 부여한 기독교 미술과 달리, 그의 작품 속 타나토스는 인격화되어 인간의 형상을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선이 고와 여성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전체적인 분위기 또한 위안과 평온함을 주고 있다. 이러한 반기독교적인 사조는  당시 모든 자치를 통제한 프로이센 정부에 대항해, 반가톨릭 교회와 반독일화정책을 띤 '문화투쟁'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하였다. 




에드바르드 오쿤의 <우리, 전쟁> (1917~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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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의 날개를 단 뱀을 배경으로 작가와 작가의 아내, 이들의 뒤에 숨어있는 늙은 여인을 그렸다. 뱀들은 전쟁을, 늙은 여인은 기근과 질병, 죽음을 의인화한 것이다. 화려한 색감과 그로테스크한 나비형상, <우리, 전쟁>이라는 간결한 제목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와 독일 양측의 군대 동원에 의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는다. 1918년 가까스로 독립을 했지만, 소련과 독일의 분할통치로 다시 한 번 서부와 동부로 분단이 되었고, 1939년 이후 서부에서는 나치 독일의 살상이, 동부에서는 소비에트화가 이어졌다. <우리, 전쟁>이라는 제목은 이렇듯 작가가 살았던 당시, ‘우리의 주변에 도사리는‘전운을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다가올 전쟁의 참혹함을 암시한 것이라 보인다.



스타니스와프 비스피아인스키의 <실내(창가의 소녀)> (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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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이자 극작가, 무대 디자이너 등 다재다능했던 비스피아인스키의 작품. 시인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연극 <실내 interior>를 위해 직접 디자인한 포스터이다. 당시 공연 안내에 쓰였던 기계적인 인쇄체 대신 직접 쓴 손글씨를 사용하였으며, 시인 친구의 딸을 그린 초상화를 이용하여 포스터에 사적이고 친근한 분위기를 불어넣었다. 현대 폴란드 포스터의 효시라 인정받는 작품이다.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정적연극론(사건으로 가득 찬 비극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비극도 깊은 진실을 나타낼 수 있다는 연극론)을 주장했다, 그의 작품 <실내>는 행복한 가정을 안에, 그리고 거기에 슬픈 소식을 갖고 오는 이웃사람을 밖에 두고 아무것도 지껄이지 않는 실내 인간들의 드라마. 



스타니스와프 비스피아인스키의 <새벽녘의 플란티 공원> (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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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스피아인스키의 자연풍경화 작품이다. 격자형으로 이루어진 겨울나무 사이로 폴란드의 국가적 상징인 바벨성이 희미하게 보인다. 새벽녘의 짙은 안개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크사베리 두니코프스키의 <숨>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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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를 깎아지른듯한 모양이 조금 투박하지만, 말하는 바가 확실히 표현된 조각품이었다. 여자라는 표시는 어디에도 없지만, 투박한 손으로 아이를 감싸는 모습에서 모성애를 느낄 수 있다. 단순한 ‘모자(母子)상‘이 아닌, ‘숨’이라는 표현 그 자체만으로도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 같아 참 좋았다. 




  20세기의 폴란드 예술은 1918년 독립을 기점으로 유럽 아방가르드 사조를 반영한 창의적 시도들이 확산된 시기이다. 당시의 다양한 시각과 열정을 지닌 화가들이 오늘날까지 폴란드 예술을 이끌어오고 있다. 


타데우시 칸토르의 <우산과 투명인간>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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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아방가르드, 특히 피카소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던 작가의 작품이자 필자가 가장 인상깊게 본 작품이다. 칸토르는 구체적인 현실의 사물, 인간의 모습에서 미술적 영감을 얻고자 했다. 박스나 가방, 편지봉투, 코트, 우산과 같은 소모적인 “하위층의 사물”들을 예술의 소재로 쓰되, 본래의 기능을 유지하도록 했다. 이러한 사물들을 캔버스 표면에 직접 붙임으로써 기존의 관습을 비판하는 한편, 사물 자체의 관련성이나 물질성에 주목해 본질적인 면을 드러내었다. 필자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 또한 제목에서 드러나듯, 작품 속 ‘우산‘의 존재는 너무도 분명히 드러나는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간의 형체는 완전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만큼 보는 사람에게 많은 여지를 남긴 작품이다.



 즈빌루트 그쥐바치의 <하늘>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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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의 압력 아래 수립된 노동자당 정권의 폴란드인민공화국(1952~) 시기 만들어진 작품이다. 핏빛 하늘과 삭막한 거리, 얼굴조차 잘 보이지 않게 그려진 사람들의 무리는 공산정권 치하 자유화운동과 노동자 파업, 반정부시기가 계속되던 암울한 정치상황을 담은 듯하다. 



예술을 위한 예술, 폴란드의 포스터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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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후반의 폴란드 예술에서 포스터 장르를 빼놓을 수 없다. 그만큼 이번 전시회의 끝자락인 포스터 들이 남긴 인상은 선명했다. ‘폴란드 포스터파’라는 말이 따로 존재할 만큼 폴란드의 포스터 아트는 전성기를 맞이한다. 냉전 시기 속에서 폴란드는 선전도구로써 포스터를 필요로 했고, 더 우수하고 예술적인 포스터를 만들어내는 것이 무척 중요했다. 이렇게 포스터는 정치적인 목적을 뛰어넘어, 벽보예술의 중심이 되었다. 
  한편 당시 폴란드는 국가적으로 Film Polski라는 독점적인 영화 배급사를 운영했는데 각각의 영화에 맞는, 폴란드 고유의 문화적인 포스터를 공모하기 시작하였다. 상업과 자본에서 자유로웠던 덕분에, 배급사의 특정 영화에 쓰일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포스터를 만드는 데 집중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예술 지향적인 포스터를 창작하는 원천이 되었다. 
  전시장 내 이러한 추상적이면서도 독창적인 포스터들이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중 타이타닉이나 오셀로와 같이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한 작품들 또한 폴란드만의 관점에서 재탄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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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왼)와 타이타닉(오) 포스터





   폴란드, 천년의 예술전은 이렇듯 우리가 평소에는 접하기 힘든, 다양한 작품들을 한 자리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무엇보다도, 온전한 예술의 영역에서 꽃피울 수 있었던 폴란드 근 현대 작품들에게서 새로운 영감을 받은 특별한 시간이었다.



"예술은 선전의 도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술은 단지 평범해지는 것을 두려워할 뿐이다."

-폴란드 화가, 예쥐 노보시엘스키



※사진 및 자료 참고
-newsmin, [세계만화산책] (5) 폴란드 포스터의 세계
-서울문화IN

다양한 문화예술이야기가 있는_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
[심한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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