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에게 존재하는 분명하고도 막연한 'Somewhere'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1.28 20:3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Somewhere : 어딘가에.

명사의 뜻이 이처럼 모호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특정한 것을 가르치지 않을 때 쓰이긴 하지만, 우리가 설명하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뜻할 때도 쓰이지 않는가.

나는 오늘 ‘그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다. 

누구나에게 존재하는 분명하고도 막연한 ‘어딘가’에 대한 이야기다.





somewhere1.jpg


 어느 날 지인의 SNS에서 짧은 영상 하나를 보았다. 


 The Strokes의 ‘I’ll try anything once‘곡의 일부였는데 목소리와 함께 영상이 너무 마음에 들어 어떠한 노래인지 찾아보게 되었다. 알아보니 영상은 영화 의 일부였고, 노래는 The Strokes의 데모곡 ‘You only live once’를 OST로 바꾸면서 나온 곡이었다. 


 음악으로 먼저 접한 이 영화는 내가 이전까지 봐왔던 영화와 색다른 점이 많았다. 인물에 집중하기 보다는 공간에 집중한다거나, 대사에 이야기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행동에 이야기를 입혔다. 이러한 점 때문에 보통의 영화를 생각하고 본다면 영상과 이야기 흐름에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타이틀 에 누구보다도 무섭게 집중했다는 사실이다.



Somewhere06.png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이 영화는 엘르 패닝과 스티븐 도프가 주연으로 출연한다. 작품이 나왔던 2010년에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 영화는 유명 할리우드 배우의 무기력한 삶에 열 한살짜리 딸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영화 첫 부분에서부터 지루한 삶의 모습들이 연속해서 나온다. 운전을 계속하고 끝없는 길을 달리고 또 달린다. 침대에 멍하니 누워 흥미 없어 보이는 공연을 계속해서 본다. 

 

 처음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인지 영화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대사도 거의 없고 한 가지 앵글이 3분 이상 지속된다. 아마 여기서부터 감독이 영상에만 집중하고 싶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점점 빠져 들어 갔다. 아주 조용한 흥분을 가진 채.


Somewhere.jpg

 엄마와 함께 지내던 딸은 어느 날 아빠에게 맡겨졌다. 갑작스런 일에 아빠도 당황했지만 이내 아빠는 딸과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아이스링크 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딸의 모습, 딸이 요리를 하는 모습, 수영을 하며 재밌게 노는 모습, 물 위에 누워 선탠을 하는 모습까지. 아빠가 딸에게 어떠한 감정을 나타냈는지 감정의 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그 무엇도 알려주는 장치는 없다. 대사 또한 없다.


 오직 영상의 흐름과 음악만 존재할 뿐. 대사가 거의 없으니 내가 극 중의 인물이 된 마냥 감정을 이입하기에 훨씬 수월했다. 그리고 ‘나의 어딘가’는 무엇인지 어떠한 곳에 존재하고 있는지 찾을 수 있었다.

 

캡쳐1.jpg

 나는 영화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에서 찾을 수가 있었는데, 음악과 함께 색채가 돋보이는 영상미는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물론 아빠의 배우 생활 이면에서 느낄 수 있었던 동일한 감정이었는데, 나 또한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 한마디의 말보단 수백 가지의 침묵이 더 중요하다는 것. 감독이 내게 전해준 공감이었다. 영화 속 공간의 흐름에서 느낄 수 있었고, 조용한 공백에서는 내가 그들과 함께하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이러한 점들에서 소피아 코폴라의 감각을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감독이 일방적으로 관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닌 관객 스스로 깨닫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는 손에 꼽히기 때문이다. 중심이 되는 이야기와 명확한 결말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 크게 실망할 수도, 지루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여러 번 본 사람으로써 확신하건대 여기서 가지고 갈 수 있는 메시지는 한 가지가 아니라 무한하다고 본다. 나에게 ‘어딘가’는 무엇인지, 지루하다고만 느껴졌던 내 생활 속에서의 관계는 필요한 것인지 불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그 무엇도 소통하지 않는 나만의 고독만이 존재하는 ‘Somewhere’를 찾아야하는지 말이다.

 

Somewhere.2010.BluRay.1080p.DTS.x264-CHD.mkv_snapshot_00.38.15_[2011.01.13_03.39.00].jpg

 나의 ‘Somewhere’는 남자 배우가 석고를 뜨기 위해 석고물을 얼굴을 붓고 가만히 앉아 있는 장면에서 찾았다. 카메라의 앵글 변화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남자의 숨소리만 들리는 장면이었는데,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고 그 속에서 고독과 공허함을 고조시켰다. 


 나는 그 장면에서 고독함을 넘어서 답답함을 느꼈다. 


 처음엔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 견딜 만하지만 감정이 익숙해질 무렵엔 항상 답답함으로 바뀌곤 하였던 내 감정과 닮아있었기 때문일까. 영화 속 배우의 감정이 나의 감정으로 표출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나의 ‘Somewhere’를 만났던 것 같다. 나에겐 익숙한 감정들이 말로 표현하기엔 힘들었는데, 영화 속의 감정과 영상들이 나조차 표현해내기 힘든 그 무언가를 나타내줬기 때문이다. 나에게 ‘Somewhere’는 눈에 보이는 장소가 아니라 마음 속 어딘가에서 꺼내지 못한 감정이었다. 그 어딘가에 있던 나의 감정.


 이 영화에서 나의 ‘Somewhere’를 찾을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저 영상과 노래가 좋아서 봤던 영화에서 내가 늘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의미를 찾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마지막으로 지금 내 글을 읽고 있는 불특정 다수 'anybody’에게 전한다. 기대하고 보면 지루해서 미쳐버릴 이 영화를 기대 없이 봐주길 바란다. 감독이 전하는 바가 무엇일까 궁금해하지 말고 그저 영화가 흘러가는 대로 생각을 맡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쯤 자신에게 존재하는 막연한 그 무언가를 찾아낸 ‘Somebody’가 되어 있길 바라는 바다.

 



서포터즈3기-심수빈님-태그1.png



 

[심수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5.0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