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에게 존재하는 분명하고도 막연한 'Somewhere' [시각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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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where : 어딘가에.
명사의 뜻이 이처럼 모호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특정한 것을 가르치지 않을 때 쓰이긴 하지만, 우리가 설명하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뜻할 때도 쓰이지 않는가.
나는 오늘 ‘그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다.
누구나에게 존재하는 분명하고도 막연한 ‘어딘가’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날 지인의 SNS에서 짧은 영상 하나를 보았다.
The Strokes의 ‘I’ll try anything once‘곡의 일부였는데 목소리와 함께 영상이 너무 마음에 들어 어떠한 노래인지 찾아보게 되었다. 알아보니 영상은 영화 의 일부였고, 노래는 The Strokes의 데모곡 ‘You only live once’를 OST로 바꾸면서 나온 곡이었다.
음악으로 먼저 접한 이 영화는 내가 이전까지 봐왔던 영화와 색다른 점이 많았다. 인물에 집중하기 보다는 공간에 집중한다거나, 대사에 이야기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행동에 이야기를 입혔다. 이러한 점 때문에 보통의 영화를 생각하고 본다면 영상과 이야기 흐름에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타이틀 에 누구보다도 무섭게 집중했다는 사실이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이 영화는 엘르 패닝과 스티븐 도프가 주연으로 출연한다. 작품이 나왔던 2010년에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 영화는 유명 할리우드 배우의 무기력한 삶에 열 한살짜리 딸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영화 첫 부분에서부터 지루한 삶의 모습들이 연속해서 나온다. 운전을 계속하고 끝없는 길을 달리고 또 달린다. 침대에 멍하니 누워 흥미 없어 보이는 공연을 계속해서 본다.
처음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인지 영화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대사도 거의 없고 한 가지 앵글이 3분 이상 지속된다. 아마 여기서부터 감독이 영상에만 집중하고 싶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점점 빠져 들어 갔다. 아주 조용한 흥분을 가진 채.
엄마와 함께 지내던 딸은 어느 날 아빠에게 맡겨졌다. 갑작스런 일에 아빠도 당황했지만 이내 아빠는 딸과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아이스링크 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딸의 모습, 딸이 요리를 하는 모습, 수영을 하며 재밌게 노는 모습, 물 위에 누워 선탠을 하는 모습까지. 아빠가 딸에게 어떠한 감정을 나타냈는지 감정의 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그 무엇도 알려주는 장치는 없다. 대사 또한 없다.
오직 영상의 흐름과 음악만 존재할 뿐. 대사가 거의 없으니 내가 극 중의 인물이 된 마냥 감정을 이입하기에 훨씬 수월했다. 그리고 ‘나의 어딘가’는 무엇인지 어떠한 곳에 존재하고 있는지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영화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에서 찾을 수가 있었는데, 음악과 함께 색채가 돋보이는 영상미는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물론 아빠의 배우 생활 이면에서 느낄 수 있었던 동일한 감정이었는데, 나 또한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 한마디의 말보단 수백 가지의 침묵이 더 중요하다는 것. 감독이 내게 전해준 공감이었다. 영화 속 공간의 흐름에서 느낄 수 있었고, 조용한 공백에서는 내가 그들과 함께하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이러한 점들에서 소피아 코폴라의 감각을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감독이 일방적으로 관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닌 관객 스스로 깨닫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는 손에 꼽히기 때문이다. 중심이 되는 이야기와 명확한 결말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 크게 실망할 수도, 지루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여러 번 본 사람으로써 확신하건대 여기서 가지고 갈 수 있는 메시지는 한 가지가 아니라 무한하다고 본다. 나에게 ‘어딘가’는 무엇인지, 지루하다고만 느껴졌던 내 생활 속에서의 관계는 필요한 것인지 불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그 무엇도 소통하지 않는 나만의 고독만이 존재하는 ‘Somewhere’를 찾아야하는지 말이다.
나의 ‘Somewhere’는 남자 배우가 석고를 뜨기 위해 석고물을 얼굴을 붓고 가만히 앉아 있는 장면에서 찾았다. 카메라의 앵글 변화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남자의 숨소리만 들리는 장면이었는데,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지고 그 속에서 고독과 공허함을 고조시켰다.
나는 그 장면에서 고독함을 넘어서 답답함을 느꼈다.
처음엔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 견딜 만하지만 감정이 익숙해질 무렵엔 항상 답답함으로 바뀌곤 하였던 내 감정과 닮아있었기 때문일까. 영화 속 배우의 감정이 나의 감정으로 표출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나의 ‘Somewhere’를 만났던 것 같다. 나에겐 익숙한 감정들이 말로 표현하기엔 힘들었는데, 영화 속의 감정과 영상들이 나조차 표현해내기 힘든 그 무언가를 나타내줬기 때문이다. 나에게 ‘Somewhere’는 눈에 보이는 장소가 아니라 마음 속 어딘가에서 꺼내지 못한 감정이었다. 그 어딘가에 있던 나의 감정.
이 영화에서 나의 ‘Somewhere’를 찾을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저 영상과 노래가 좋아서 봤던 영화에서 내가 늘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의미를 찾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마지막으로 지금 내 글을 읽고 있는 불특정 다수 'anybody’에게 전한다. 기대하고 보면 지루해서 미쳐버릴 이 영화를 기대 없이 봐주길 바란다. 감독이 전하는 바가 무엇일까 궁금해하지 말고 그저 영화가 흘러가는 대로 생각을 맡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쯤 자신에게 존재하는 막연한 그 무언가를 찾아낸 ‘Somebody’가 되어 있길 바라는 바다.
[심수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