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단편집 : 낙뢰 [문학]

글 입력 2017.06.24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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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은 매달 24일에만 기고됩니다.*



: 낙뢰


 추락은 유일하게 지구의 중력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여섯 살 때 엄마는 11층 아파트에서 나를 안고 뛰어내렸다. 나를 껴안은 엄마의 팔과 내 정수리에 입을 맞추던 엄마의 입술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나는 병원에 있었다. 삼촌은 내 오른손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엄마는 죽었다. 나는 부러진 오른팔을 하고 엄마의 장례식을 보냈다. 장례식이 끝나고 삼촌과 함께 집으로 가던 길에 나는 높은 담벼락위에서 뛰어 내리는 고양이를 보았다. 검은 털의 고양이는 나를 비웃는 것처럼 담에서 뛰어내려 유유히 가로등 사이로 사라졌다. 그때부터 내 꿈은 세상에서 가장 빨리 떨어지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삼촌은 아주 작은 동네 규모의 서커스단을 운영했다. 삼촌의 서커스단원 중에는 번개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가 있었는데, 남자는 서커스단원이 되기 전에 짜장면 배달원을 했다고 했다.

 -언제부터 별명이 번개였어요?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힘도 주기 전에 나와서 병원 간호사들이 나보고 번개라고 그랬다더라.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나는 남자가 모래 다이빙이라고 하는 분야의 단원이라는 것을 알고 삼촌을 졸라 남자의 밑에서 모래 다이빙을 배울 수 있었다. 남자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려 바닥으로 착지했다. 아주 순식간의 동작들이어서 내가 따라 하기에는 뒤따르는 위험요소가 많았지만 나는 기어코 남자의 모든 동작을 단련했다. 오년이 지났을 쯤에는 남자는 더 이상 번개가 아니었다. 십년이 지났을 때 남자는 서커스단을 나갔다.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떠나가야 했다. 멀어지는 남자의 등을 보며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떨어지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다시금 다짐했다.
 
 다이빙대에 서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많은 것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느낄 수 없는 것은 중력이다. 중력은 다이빙대에서 발을 떼고 떨어지는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들리기 전에 발을 떼고 모래로 다이빙한다. 11층에서의 중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름의 중력은 나를 감싼다. 유일하게 중력을 느끼는 이 짧은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진다. 모래에 착지하고 사람들의 박수를 듣고 다른 단원들의 쇼를 보며 나는 천막 안으로 사라진다. 땀을 닦고 있으면 문득 엄마와 함께 떨어지던 날의 느낌이 떠오른다. 바람을 가르던 소리, 휘날리던 옷자락, 그리고 중력. 그 아찔한 쾌감. 눈을 감고 11층을 떠올린다. 엄마의 입맞춤이 정수리부근에서 느껴지면서 온 몸에 전율이 흐른다. 다시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달력에 표시 된 날을 계산해 본다.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떨어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는 이십년의 중력을 거쳐야 했다.
 
 -여러분이 기대하고 기대하시던 그 시간! 세계최초로 264미터에서 다이빙하는 남자입니다!

 마이크를 쥔 남자는 나를 그렇게 소개한다. 나는 오른팔을 들어 기대감과 공포심에 가득 찬 사람들을 보며 인사를 한다. 63빌딩 옥상에 서서 나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양 팔을 벌리고 부는 바람을 느낀다. 번쩍, 조명이 나를 비춘다. 천천히 몸을 기울인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 휘날리는 옷자락. 그리고 중력.
 추락은 유일하게 중력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떨어지는 사람이 되고자 중력을 거스른다. 몸이 중력을 거스르며 낙하한다.
 
 번쩍, 조명이 나를 비춘다.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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