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1분에 담긴 삶의 미학 [문학]

글 입력 2016.12.0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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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겨우 11분을 축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하루 24시간 중 그 11분 때문에(말도 안되는 소리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매일 밤 아내와 사랑을 나눈다고 가정할 때) 결혼을 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아이들의 울음을 참아내고, 늦게 귀가하게 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함께 제네바 호숫가를 거닐고 싶은 수십 수백 명의 다른 여자들을 훔쳐보고, 자신을 위해 값비싼 옷을, 그 여자들을 위해서는 더 비싼 옷을 사고, 채우지 못한 것을 채우기 위해 창녀를 사고, 피부관리, 몸매관리, 체조, 포르노 등 거대한 산업을 먹여살리고 있는 것이다. - p.117



이 책의 제목인 11분은 성행위의 평균 지속시간을 의미한다. 영혼과 육체, 사랑의 문제를 재미있고 간명하게 풀어나가는 소설이다. 코엘료는 오래 전부터 성에 대한 소설을 구상하고 있었지만, 늘 실패로 끝났다고 한다. 그러다가 젊은 시절 창녀였던 한 여성과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이 소설이 구체화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정말 단순명료하게 몇 가지 단어로 표현한다면 창녀, 사랑, 돈, 섹스로 나타낼 수 있다. 어쩌면 진부한 내용이라 예상되지만 노트에 따로 적어둘 정도로 꽤 생각에 잠기게 되는 구절들이 많다. 

이야기는 브라질에 사는 한 소녀, 마리아에 의해 시작된다. 마리아는 어린 시절 매일 같이 등교하는 남자아이를 좋아했다. 그 소년과 한 번도 말을 나눠보지 못했지만 운명적인 만남을 기대했다. 어느 날 그 소년은 마리에게 운명처럼 말을 건넸다. 볼펜을 빌려달라고. 그러나 마리아는 자신의 속내를 들킬까봐 뒷걸음질 치며 도망쳤다. 마리아는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했지만 소년은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 다신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그 순간, 마리아는 어떤 것을 영원히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멀리’라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 세상은 넓고 그녀가 사는 도시는 깨알만큼 작다는 것, 마음에 드는 존재들을 결국에는 늘 떠나고 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p.20



초경을 하는 자신이 죽을 병에 걸렸다고 생각할만큼 그 시절 마리아는 참 어리숙한 소녀였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소녀에게 사랑은 세상 전부였다. 자신의 동네가 세상에 전부였던 그 마리아는 소년으로 인해 감정이 자라나는 것이 얼마나 설레고 또한 고통을 수반하는 것인지 알게 된 것이다. 사랑이 너무 위험하다고 느끼던 마리아는 더 이상 세상물정 모르는 소녀가 아닌 인생의 첫 쓴맛을 경험한 숙녀로 성장하였다.

작물 가게에서 일하던 마리아는 직장을 그만두고 돌연 리우데자네이루로 여행을 떠난다. 눈에 띄는 예쁘장한 외모를 가진 숱한 사람들이 그렇듯, 마리아도 연예인의 꿈을 가지고 화려한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여행을 왔다. 그곳에서 연예인을 할 생각이 없냐며 다가오는 한 스위스인을 만나게 된다. 성인이 되었다 해도 이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사회 초년생의 앞에는 아름다운 꽃길이 아닌 가시덤불 가득한 길이었다. 마리아는 스위스인을 따라 연예인이 되기 위해 스위스로 넘어간다. 하지만 일하게 된 곳은 방송국이 아닌 스위스의 한 클럽이었고, 연예인이 아닌 댄서로 일하게 된다. 댄서로서 탄탄대로의 길이라도 걸을 줄 알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당해고까지 당하게 된다.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법적 도움을 받아 전 클럽의 사장에게 상당수의 돈을 받고 독립하게 된다.



하지만 오늘, 나는 확신한다. 어느 누구도 타인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누가 누구를 잃을 수는 없다는 것을.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지는 것. - p.122



마리아는 돈 때문에 자신의 성을 담보로 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클럽에 드나드는 많은 이들, 자신의 손님 그리고 자신까지도 탐구한다. 사랑과 섹스에 의미를 탐구하는 그녀의 마음을 읽고 있자면 마치 이치를 깨우치려는 성인과도 같다. 그녀가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칭찬받을만한 방법은 아니더라도 그녀는 여러 만남 속에서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자신이 선택한 세계에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무언가를 선택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 삶이라면 마리아의 삶은 아주 훌륭한 편에 속했다.  

마리아는 자신에게 1000스위스 프랑을 주며 하룻밤을 보내자고 제안한 아랍인과 밤을 보내고 이후 베른 가의 한 클럽에 무작정 들어가 그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작은 뒷골목 클럽이 아닌 거의 전 세계의 간부급 인물들이 오고가는 클럽이었다. 이왕 시작한 일이니 이 업계에서 최고가 되기로 하고 자신을 찾는 손님의 장단에 맞출 수 있게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몇 개월이 지난 후 우연히 들른 한 카페에서 한 화가를 만나게 되는데 랄프 하르트라는 화가는 마리아에게서 ‘빛’을 발견했다며 그 빛을 자신의 그림에 담고 싶다고 마리아에게 접근한다. 랄프와 마리아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시간이 흘러 마리아는 클럽에서 처음 일을 할 때 결심한 1년의 할당량을 다 채우게 되었고 그녀는 클럽을 그만두고 다시 브라질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랄프와는 그저 스위스에서의 애틋한 추억으로만 남을 뻔했지만 마리아를 원하고 그녀가 자신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랄프는 그녀를 찾아간다. 그들의 관계의 마지막 순간에 서로가 원하던 낭만을 이루게 된다.

마리아는 넘쳐나는 다양한 사랑 속에서 상처받으면서도 결국 사랑을 택하고 운명에 자신을 거는 여성이었다. 랄프는 소위 말하는 흠 있는 신랑감이었고 마리아는 농장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과 창창한 앞날이 기다리고 있는 독립적인 여성이었음에도 그녀는 또 한번 선택에 기로에서 운명을 택했다. 마리아는 성에 입문하면서 몸과 마음에 대해 탐구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며 이곳에 왜 있는지 묻는다.  선택에 기로에서 거침없이 선택하고 그에 따르는 결과를 받아들이고 또 헤쳐나가는 마리아는 주체적인 여성이다. 매 순간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리아는 망설이거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그녀의 결정력에 그리고 계획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강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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