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참 별 것 아닌 휴식을 ‘만끽’ 하는 법, 낮의 목욕탕과 술 [문학]

글 입력 2016.11.0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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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목욕탕과 술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 양억관 옮김 | 지식여행 | 2016년 07월 25일





 낮잠, 낮술 등 ‘낮-’이 들어가는 단어는 하나같이 한가롭고, 무사태평인 느낌이 있다. 그만큼 현대사회에서 바쁘게 사는 우리에게 ‘낮’이라는 시간대는 정신 없고, 여유 없고, 항상 할 일만 많은 시간대이다.


『 내 옆으로 온탕에 스윽 몸을 밀어 넣는 아저씨의
불룩 튀어나온 배와 섬세하지 못한 얼굴.
아마도 '도요토미 몬나니', 그런 느낌을 주는 이름일 것이다.

눈썹이 짙고 수염도 더부룩하고 코털도 굵을 것 같다.
...
너무 심하다. 이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 꼬락서니도 만만치 않은데 말이다.
죄송합니다. 미타카에 사는 돼지감자 대머리 아저씨랍니다. -185p 』


 그런데 이 책을 쓴 이 남자, 한가로이 ‘그 낮 시간’에 목욕탕에 가서 탕에 같이 앉아있는 남정네의 이름과 성격 따위를 제멋대로 상상하고나 있고, 해가 벌겋게 떠있는 ‘그 낮 시간’ 부터 술집에 들어가 생맥주 한 잔과 안주나 들이키고 있다. 이 책을 쓰고 일본 만화 및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을 쓴 것으로 잘 알려진 구스미 마사유키는 직업 특성 상 출퇴근과 오전, 오후 업무처럼 정해진 것에 구애 받지 않기에 가능한 것이다.

 나는 ‘고독한 미식가’를 제대로 본 적은 없고 드라마판을 짧은 영상으로 잠시 본 것 밖에 없지만, ‘낮의 목욕탕과 술’을 쓴 작가와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을 쓴 작가가 같은 사람이 진정 맞구나라는 것이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고독한 미식가’의 모든 스토리는 ‘한 남자가 혼자 밥을 맛있게 먹는 이야기’, 단 7단어로 요약이 되는 것처럼 ‘낮의 목욕탕과 술’ 또한 ‘한 남자가 낮에 목욕과 낮술을 하는 이야기’로 똑같이 7단어로 요약이 가능하다. 실제로 이 책의 내용은 ‘대낮에 목욕탕을 갔다. 참 좋았다. 그 다음에 주점을 갔다. 참 맛있었다.’ 가 끝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보면서 계속 킬킬대면서 볼 수 있었던 이유는 10곳의 목욕탕과 10곳의 주점의 개성을 살리는 작가의 설명과 진짜 참 별 것 없어 보이는 시간을 별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시선과 생각, 그리고 특유의 관록 때문이다.


『 감은 눈에 고갱의 대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가 떠오른다.

뿌부부붕 뿌뿌부붕, 눈을 감은 채 탕 안에서 방귀를 뀔지도 모른다.
하루의 거품, 그것이 방귀다.
방귀조차 지금은 청정하다.

역시 일본인에게 목욕이란 종교까지는 아닐지라도
그 비슷한 정신세계를 향한 여정과도 같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139p. 』


 목욕탕과 주점을 설명하는 글 자체도 작가 특유의 말투와 시선 때문에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그 안에 은연중에 녹아있는 여유로움이 제일 인상 깊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 너무나도 정신 없이 살고 있기에, 당장이라도 책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만큼 여유를 만끽하는 작가의 방법이 너무 능숙하다는 것이 느껴지는 동시에 부러워진다. 도전 정신과 열정이 한 풀 꺾인 중년의 관록에 의한 여유로움이고, 고작해야 대낮에 목욕하고 낮술 마시는 것뿐이지만, 그 별 것 아닌 휴식을 한 번 할 때 말 그대로 ‘만끽’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무슨 무슨 힐링이니 무슨 무슨 명상이니 그런 거창한 휴식도 좋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에게 이런 별 것 아닌 휴식이 필요한 것 아닐까.

 나에게도 작가와는 정반대인 별 것 아닌 휴식은 따로 있다. 새벽에 마냥 걷는 것. 무슨 무슨 힐링, 무슨 무슨 테라피 같은 거창한 것 따윈 없고 그냥 졸리고 피곤하고 이제 그만 해야겠다 싶을 때까지 혼자 생각하면서, 하루를 정리하면서 걷는 것이 다이다. ‘업무’보다는 ‘작업’을 하는 나에게 새벽이라는 시간대는 남들보다 친숙하기에, 그리고 새벽이라는 시간대는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잠들어 있고 정말 말 그대로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기에 내 나름대로의 최고의 휴식을 만끽하기에는 최고다.

 항상 하는 것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지금보다도 더 그 시간을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 최고 X 최고, 그게 바로 낮의 목욕탕과 술이다.

지금 바로 일을 제쳐두고 가장 좋아하는,
혹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목욕탕에 가자.
그리고 그 근처에서 시원하게 한 잔 마셔버리지, 뭐.

암, 그렇고 말고.
이히히히. -7p 』


 표현이 거창하지만 모두는 각자의 휴식을 취할 권리가 있다. 그게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던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해가 벌겋게 떠있는 대낮에 목욕탕을 가거나 술을 마시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귀하디 귀한 정말 별 것 아닌 나름대로의 휴식을 최대한 만끽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전마띠아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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